2022-03-23 09:20:00 출처:cri
편집:韩京花

어원커족의 역사

어원커족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민족이다. 주로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중국 내몽고자치구, 흑룡강성에 살고 있으며 몽골공화국에도 일부 분포되어 있다.

어원커란 어원커족의 민족 자칭으로 ‘삼림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러시아에서는 어원커족을 예벤키인이라고 부른다.

어원커족의 언어는 알타이어계 통구수 어족 북어(北語)갈래에 속하며 평소 생활에서 다수가 본 민족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본 민족 문자는 없다. 그들은 대부분 몽고문자를 사용하며 농민들은 한문을 널리 사용한다.‘중국통계연감-2021’에 따르면 중국 경내의 어원커족 인구는 3만4천여명이다.

삼림 속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진 어원커족은 삼림 속의 수렵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그들 중 일부는 삼림을 벗어나 초원과 하곡 평원지대에 이주했고 일부는 여전히 삼림 속에 남아 생활하게 되었다. ‘어원커’란 지칭은 그들의 역사와 생활이 삼림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 동안 어원커족이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지역에 따라 어원커족을 ‘솔론’, ‘통구수’, ‘스루’(使廘)라고 불렀다.

‘솔론’이란 지칭은 ‘청태종실록’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다. 상당한 기간 동안 ‘솔론’은 어원커족에 대한 호칭이었을 뿐만아니라 다우르족과 오르죤족에 대한 호칭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에 다우르족과 오르죤족이 점차 ‘솔론’과 분리되면서 ‘솔론’만이 어원커족을 대표하게 됐다. 20세기 50년대 초반 ‘솔론’은 주로 지금의 어원커기와 아룽기, 자란투시, 몰리다와기, 오르죤기 등 지에 거주하는 어원커인에 대한 통칭으로 정착했으며 그들이 어원커족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퉁구스’는 주로 천기에 살고 있는 어원커족에 대한 지칭이다. 그 외 어원커기의 시니강 유역에도 ‘퉁구스’로 불리는 어원커인들이 살고 있다.

‘스루’어원커는 내몽고자치구의 건허시 아오루구야 어원커 민족향에 살고 있는 어원커인들에 대한 지칭이다. 역사적으로 이들을 ‘스루부’ ‘아오쿠티’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여러 지역에 살고 있는 어원커족이 서로 다르게 불리기는 했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을 ‘어원커족’이라고 통칭했으며 이들은 하나의 어원커족임이 틀림없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중국은 어원커족 인민들의 소망에 따라 1958년에 ‘솔론’과 ‘퉁구스’, ‘아오쿠티’란 지칭을 어원커족으로 통일했다.

어원커족의 기원에 대한 자료는 아주 적고 학술계에서도 그 기원에 대해 서로 견해가 다르다. 1983년 내몽고인민출판사가 출판한 ‘어원커족 약사’는 일찍 기원전 2000년의 청동기와 석기 병용시대부터 어원커족 선민들이 외바이칼호와 바이칼호 연안지역에 살았다고 기재했다.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셀렝가강 연안에서 인체의 골격이 발견되었고 의상에 조가비로 만든 수십개의 반짝이는 고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 고리가 발굴된 곳이 어원커족의 구슬꿰미와 샤먼 무당의 가사에 박힌 조가비 고리와 똑같아 동석기 병용시대 어원커족의 조상들이 이미 바이칼 호수 일대에 생활했음을 입증할 수 있다.

그 외 망자의 몸에서 발견한 백옥으로 만든 큰 고리도 17세기에서 18세기 어원커인들의 의상에 달린 고리와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로부터도 어원커족 선민들이 이때 이미 바이칼호 일대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어원커족의 전설은 그들의 고향을 레나강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들은 레나강이 아주 드넓어 딱따구리도 날아 지나지 못한다고 여겼으며 레나강 일대가 바로 지금의 바이칼호로 8갈래의 큰 강이 바이칼호에 흘러 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어원커인들의 고향이 흑룡강 상류의 실카강일대다.

북위 때의 실위(室韋), 특히 북실위와 발실위(鉢室韋), 그리고 당나라의 국부(鞠部)는 모두 어원커족과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중원 왕조와도 왕래를 유지했다. 사서는 북실위, 발실위가 “수렵에 주로 종사하고 날짐승의 고기를 먹었으며 가죽을 걸치고 얼음을 깨 물고기를 잡았다”고 기재했다. 이런 생활방식과 버섯나무껍질을 지붕에 올리고 스키보드를 사용하고 풍장을 행한 등 풍속은 모두 어원커족의 초기 생활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당나라 때에는 바이칼지역에 유릉도독부를 세워 국부 등 지역을 관리했다. 요나라 때에는 그 강역이 북으로 외흥안령, 서북으로 바이칼호 지역에까지 이르렀고 실위 대왕부와 절도사를 설립해 이 지역 민중들을 관리하고 어원커족 선민들을 자신의 통치에 두었다. 원나라 때에는 바이칼호 동부와 흑룡강 유역에서 생활한 어원커족, 오르죤족, 몽골족을 ‘삼림의 백성’으로 통칭했으며 이들은 당시 원시적인 어렵 경제시대에 처해있었다. 1207년 칭기즈칸은 장남 술적(述赤)을 파견해 ‘삼림의 백성’을 정벌했으며 1235년에는 어거데이한이 흑룡강성 상유지역에서 이들을 통괄했다.

명나라 문서에는 어원커족인들을 ‘북산의 야인’ 또는 ‘야인여진’으로 기재하기도 했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의 어원커족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어원커족 인구 중 가장 많은 솔론부이다. 다우르족과 잡거한 이들은 흑룡강 중류 북안지대에 적지 않은 마을을 세웠다. 두번째는 솔론별부로 15개 씨족이 망라되며 내부 단합이 강한 민족이라는 ‘카무니칸’으로 불리기도 했다. 세번째는 사록부로 12개 씨족이 포함된다. 1633년부터 1634년까지 청나라 만족 통치자들이 명나라를 대신해 ‘솔론부’를 통치하기 시작했고 1635년에는 바이칼호 일대의  ‘카무니칸’을 정복하고 1639년부터 1640년에는 마지막으로 바이칼호 동부의 솔론부 지역을 통일했다. 청나라는 어원커족을 씨족 단위로 ‘좌’(佐)로 편성해 좌령 등 관직을 선발했고 해마다 청나라에 담피 가죽을 공물로 바쳤다. 17세기 중엽 이후에 청나라는 제정러시아의 침략을 피해 어원커족을 대흥안령 지역의 눈강 유역에 이주시켰다. 1732년 청나라는 부터하(布特哈)지역에서 어원커족 병사 1600명을 선발해 후룬베르 초원지역에 이주시켜 변방을 지키도록 했다. 이들이 바로 그 후 어원커족자치기 어원커족의 선민들이다.

17세기 중엽, 제정러시아는 중국의 흑룡강 유역에 쳐들어와 학살과 약탈을 대거 감행해 어원커족 등 각 민족 인민들의 큰 분개와 강한 저항을 받았다. 1664년 어원커족은 현지 몽골족과 함께 제정러시아 침략자들을 물리쳤다.

1931년 ‘9.18’사변 후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의 동북지역을 점령 한 후 어원커족은 또 한번 외세에 맞서 싸웠다. 1957년 중국은 이 민족의 명칭을 어원커족으로 통일하고 1958년 8월1일 어원커족 자치기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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