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로운 어머니는 손에 바늘을 들고 먼길 떠나갈 아들 위해 옷을 짓네. 떠나기 전 촘촘히 뜨는 것은 귀가 길 늦어질까 걱정해서라네. 작은 풀과 같은 아들의 효심, 어이 봄날 햇볕같은 어머니의 사랑 보답하랴?"
습근평 주석이 읊은 이 시는 1200여년전 중국 당나라의 저명한 시인 맹교(孟郊)의 작품이다. 이 시를 지을 당시 시인은 이미 50세의 지천명의 나이었지만 집을 떠나기 전 손수 옷을 지어준 어머니를 항상 잊지 못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집 떠난 나그네의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작품이 아닐수 없다.
중국에는 "몽양지본,필자모교시"(蒙養之本,必自母敎始)라는 말이 있다. 즉 한 인간의 최초의 가장 훌륭한 교육은 어머니로부터 받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어머니의 양육의 정을 아주 중시해왔다.
습근평 주석은 어머니에 대한 깊은 정을 안고 이 시를 읊었다.
습근평 주석 집무실에는 습근평 주석과 부인이 어머니 제심(齊心)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습근평 주석
1. 정충보국(精忠報國)
악비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습근평 주석이 대여섯살 나던 해 어머니 제심 여사는 그를 등에 업고 서점에 가 그림책을 사주었다. 그림책의 주인공이 바로 악비였다. 어머니는 나어린 습근평에게 충성을 다해 국가에 보답한 악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악비는 12세기 북송연간의 대장군이다. 젊은 시절, 외세의 침입으로 백성들이 저참한 살륙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악비는 치솟는 분노를 금하지 못하고 참군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연로한 어머니와 의지가지 없게 될 처자식들의 처우가 걱정돼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 때 대의가 바른 악비의 어머니 요(姚)씨가 악비의 참군을 적극 지지하며 그의 등에 충성을 다하여 국가에 보답하라는 의미의 '정충보국'(精忠報國) 네글자를 새겨주었다. 어머니의 교시를 받든 악비는 친인들과 작별한 뒤 전선으로 향한다. 습근평 주석의 어머니 제심 여사는 악비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어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도리를 일깨워주었다.
악비의 이야기는 한 알의 씨앗마냥 습근평 주석의 마음에 뿌리를 내려 그의 평생의 추구가 되었다.
2: 어머니의 마음
양가하(梁家河) 에서의 청년시절 습근평
습근평 주석의 어머니 제심 여사가 친히 만든 반짇고리 주머니
15~16세때 습근평은 베이징에서 800킬로미터 떨어진 섬서성 양가하에 하향(下響)했다. 당시 어머니 제심 여사는 아들을 위해 손수 반짇고리 주머니를 만들고 그 위에 "어머니의 마음'이란 글자를 수놓았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담은 이 반짇고리는 양가하에서 습근평의 7년 생활을 동반했다. 당시 째지게 가난한 양가하에서 청년 습근평은 농민들과 함께 먹고 자고 일하면서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베이징에 돌아오기 전 습근평은 이 반짇고리를 이웃 지인인 장위방(張爲龐)에게 선물하며 "비록 이 곳을 떠나지만 마음은 여기에 항상 남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3. '매사에 최선을 다하세요'
"사업도 잘하고 배움에도 게을리 하지 말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세요"
이는 습근평의 부친인 습중훈(習仲勛) 선생이 부인 제심여사에게 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제심 여사는 평생 그 말대로 자식들을 키워왔다. 2001년 춘절, 복건성 성장을 역임한 습근평이 일때문에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제심 여사는 아들과 통화하면서 "맡은바 사업을 잘 하는 것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최대의 효도"라고 말했다.
다년간 습근평 주석은 어머니의 부탁과 교시를 항상 명기하고 밤에 낮을 이어 근면하게 사업에 몰두하며 ' 나는 나를 잊고 인민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서약을 지켜왔다. 이는 어머니에 대한 그의 '최대의 효도"이자 모자간 깊은 정의 투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