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3 11:37:23 출처:cri
편집:朱正善

거로족의 역사

거로족은 중국 남방 귀주성에 살고 있는 민족이다. ‘중국통계연감-2021’에 따르면 중국 경내의 거로족 인구는 67만여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들은 고대 요인(僚人)의 후예로 알려지고 있으며 본 민족의 언어인 한어-티베트어계의 거로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현재는 거로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거로족 인구수가 6000명미만으로 거로족 총 인구의 1.1%에 불과하다. 대부분 거로족은 한어를 주로 구사하고 또 일부는 현지의 묘족어와 부이족 언어를 사용한다. 거로족은 본 민족의 문자가 없으며 한문을 통용한다. 거로족은 여러 갈래가 있고 호칭도 각이하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각지의 거로족 대표와의 협상을 통해 1956년에 이들을 거로족으로 통칭했다.

학술계는 거로족이 고대 요인에서 기원했다고 한결같이 인정한다. 거로족의 주택과 복식, 음식, 장례식 등 풍습이 고대 요인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 그 주요 근거다.

고대 요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 서남지역에 살았다. 한나라 때 장기군(牂牁郡)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 곳에는 여러 부락이 있었는데 그 중 야랑(夜郎)이 가장 강했다. 기원 3세기부터 5세기까지 장기군에서 사천에 이주한 요인이 봉건국가의 호적에 편입돼 봉건왕조에 납세하기 시작했다. 기원 5세기 경, 이들은 금속으로 창과 방패, 작은 부삽을 주조했으며 베로 천을 짜기도 했다. 7세기 이후 사천 요인들의 상품교환이 날로 빈번해졌고 대량의 토지를 차지한 일부 요인 영주가 수천 세대의 농가를 거느리기도 했다.

송나라 때에는 요인에서 발전한 여러 거로족 지역간의 경제발전이 불균형적이었다. 호남일대에 거주한 거로족은 산지의 숲을 불사르고 그 곳에 곡식을 심는 전통적인 도경화종(刀耕火种)의 방식으로 조와 쌀, 콩을 생산했고  수렵으로 포획한 짐승들로 식량 부족을 메웠다. 반면 평원지역에 생활한 거로족은 논벼를 심었으며 단위당 생산량도 높았고 수공산업도 상당한 정도의 발전을 가져왔다. 주사(朱砂)채굴 기술을 장악한 이들은 여러가지 특색제품을 생산했는데 그 중 은으로 만든 주기인 ‘은비둘기’가 비교적 유명하다. 이러한 것들은 당시 거로족의 사회생산력 수준이 일정한 발전을 가져왔음을 빙증한다.

원나라와 명나라 때에는 중앙 왕조가 토사를 임명하는 방식으로 거로족 지역를 다스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거로족 특유의 사회정치제도인 마두제(马头制)도 보류하고 있다. 이는 랑대청(郎岱厅) 지역의 거로족이 본 민족의 토관을 마두라고 부른데서 유래됐다. 마두는 순행을 나갈 때 가마에 탔으며 의장대가 나팔을 불며 길을 내어 위풍이 당당했다. 마두의 후예는 거로족 내부에서 여전히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지금도 랑대청 지역이었던 귀주성 류즈(六枝)특구에는 ‘마두거로’가 존재한다. 중앙왕조는 또 거로족 지역에 위(卫), 소(所), 툰(屯), 보(堡) 등 군사기구를 세웠으며 명나라 말부터는 토사를 폐지하고 임기제 관리인 유관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토귀류’(改土归流 )는 청나라 옹정 연간에 거로족 지역에 전면 보급됐다.

역대 봉건왕조의 잔혹한 통치에 반항하기 위해 고대 거로족 선민을 포함한 요인들은 수차 단합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기원 7세기 중반,   사천 서부의 요인들이 번중한 노역에 항거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고 9세기 중반에는 사천일대의 거로족이 봉건관리의 약탈에 저항해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16세기 중반에 거로족은 중국의 동남연해 지역을 침략한 일본군과 투쟁을 벌렸고 19세기 중반에는 묘족, 한족 인민들과 함께 청나라 왕조에 반항했다.

1949년 전 거로족 지역은 토지겸병 현상이 심각해 대부분 토지가 외족지주의 수중에 장악되었다. 1935년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공농홍군이 대장정시 거로족 거주지역을 지나며 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1943년 10월 부의족과 거로족 인민들이 함께 국민당 통치에 반항해 나서고 1948년에는 지주의 집에 쳐들어가 4000킬로그램에 달하는 알곡을 빼앗기도 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며 거로족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됐고 1956년에는 쭌이(遵义)현 핑정(平正)향과 런화이(仁怀)현 안량(安良)향에 2개의 거로족 민족향을 세웠다. 그리고 1986년에는 거로족이 집거한 우촨(务川) 과 다오전(道真)현에 우촨거로족묘족자치현과 다오전거로족묘족자치현을 세웠으며 그 뒤 거로족 집거지역에 20여개 민족향을 세웠다.

지금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 및 정부기구에는 모두 거로족의 인민대표와 간부가 있다. 우촨 거로족묘족자치현  역대 인대주임과 현장은 모두 거로족이 맡았으며 현급, 부현급 간부중 거로족 간부가 동급 간부의 50% 이상에 달한다. 거로족의 기술간부 대오도 점차 장대해져 거로족지역의 경제사회발전에서 날로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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