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6 10:32:25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2년 6월 16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6월의 세번 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임봉해(MC)입니다.

616일은 양력 올해의 167일째 되는 날입니다. 올 한해가 마감할 때까지 198일 남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날에 많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고 또 많은 저명한 인물이 출생했거나 사망했습니다.

‘역사속의 오늘’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82616, 중국에서 처음으로 박사논문 심사회를 가졌습니다.

1992616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국무원은 제3산업의 발전을 다그치기로 결정했습니다.

3산업의 발전을 다그치는 목표는 10년 좌우의 시간을 들여 중국 국정에 부합한 사회주의 통일시장 체계, 도농 사회화한 종합봉사체계, 사회보장 체계를 점차적으로 건설하는데 두었습니다.

1994616, 백서 ‘중국 지식재산권보호상황’이 발표되었습니다.

2012616, 신주9호 우주선이 발사되었습니다. 신주9호 우주선은 베이징시간으로 이날 183721초에 점화되어 183724분에 하늘에 날아올랐습니다. 도킹 과정에서 우주인은 손으로 회합 도킹을 실현하여 회합 도킹 기술을 전면 검증했습니다.

2022616일부터 19일까지 ‘일곱 별의 한 줄 연결’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곱 별의 한 줄 연결’은 금성과 목성, 수성, 화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한 줄에 연결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의 구체적인 방위는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분포하며 순서는 수성, 금성, 천왕성, 화성, 목성, 해왕성, 토성입니다. 수성과 태양은 서로 가깝게 접근하기 때문에 육안으로 가려보기 힘듭니다. 천왕성과 해왕성 역시 육안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망원경을 이용해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616일은 국제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입니다.

아프리카 51개 나라에서 생활하고 있는 3억명 어린이가 당하고 있는 기근, 전쟁, 가난, 질병 등 재난을 사람들이 요해하게 하기 위해 1991613, 유엔 어린이기금회는 이해의 616일을 ‘국제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로 정한다고 선포했습니다.

616일을 ‘국제 아프리카 어린이의 날’로 정한 것은 또 세계를 놀랜 소웨토 어린이참살 15주년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1976616, 남아프리카 요한네스부르그시 교구 흑인직버지인 소웨토구의 수천명 학생들이 시위를 했습니다. 당국은 대량의 경찰을 파견하여 시위를 진압했습니다. 이 때문에 1천명이 숨지거나 다쳤으며 100여명이 체포되었습니다.

616일은 비뇨 건강의 날입니다.

오래 앉아있거나 오줌을 참으며 물을 적게 마시고 밤을 지새는 등 불량한 생활습관은 쉽사리 비뇨기 감염, 만성 전열선염 등 비뇨 질병을 유발하게 됩니다. 비뇨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중시를 불러일으키고 비뇨 건강 관련 지식을 보급하기 위해 2014년 중국 공정원 원사, 중국 비뇨외과 학과 선두자 곽응록 교수가 발기하고 중국건강촉진교육협회, 중국건강교육센터, 비뇨영역 의학전문가 등 부문과 인사들의 공동창의로 해마다 16일을 비뇨 건강의 날로 정했습니다.

[간주]

이 시간에는 ‘승려를 따라 찾은 옛 이야기’ 이런 제목으로 “수중의 사찰에서 울리는 천년의 옛 종소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중의 사찰에서 울리는 천년의 옛 종소리

택시 기사는 우리 일행을 저수지 입구에 내려놓고 돌아갔다. 입구에는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는데, 일부 사람은 그대로 들어가고 일부 사람은 입장권을 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저수지 둘레가 모두 풍경구라고 한다. 저수지 역시 ‘세외도원世外桃園’의 일경一景으로, 나라 태종太宗 이세민世民이 동정東征을 할 때 다녀갔던 옛 호수라고 해서 당왕호唐王湖라고 불리고 있었다. 둑에 잠깐 머물겠다고 고집하는 유람객은 실은 돈 몇 푼을 아끼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었다.

당왕호는 연운항雲港의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 상거한 숙성宿城에 위치한다. 숙성은 이세민이 이 고장에 묵을 때 군사들이 단 하루 밤에 성과 해자를 만들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비록 당왕호 주변이 훗날 ‘세외도원’이라는 풍경구로 되었지만, 그때의 이세민은 이 멋진 경치를 구경할 여유가 별로 없은 듯하다. 당왕호의 남쪽 끝머리에 있는 산은 보가산保駕山이라고 불리는데, 이름 그대로 어가를 지킨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세민이 이곳에서 연개소문淵蓋蘇文의 군사에 의해 포위되었다가 장령 설인귀薛仁貴가 어가를 구해 곤경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해서 ‘보가保駕’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 것. 산마루에는 또 이세민이 잠깐 몸을 숨겼다고 전하는 당왕동唐王洞과 궁중의 옥새를 감췄다고 하는 옥새동玉璽洞이 있으며 또 그가 말의 고삐를 비끌어 맨 나무라고 전하는 전마송拴馬松이 있다.

산 어구의 돌계단은 양쪽의 가파른 벼랑 사이를 힘들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한 가닥의 하늘이라는 의미의 이 ‘일선천一線天’은 산허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산의 여기저기에 널린 거대한 바위들은 마치 조물주가 떡 반죽을 하듯 제멋대로 짓이긴 듯 했다.

그러나 해발 52m의 보가산을 명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아무래도 궁색할 듯 했다. 이세민이 난중난세에 국보의 ‘옥새’를 묻어놓지 않았더라면 자칫 패쪽 하나 걸데 없는 조촐한 야산이기 때문이다.

이세민은 숙성의 다른 곳에도 그의 귀한 몸의 그림자를 비껴놓고 있었다. 당왕호의 동쪽에는 제왕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의 만수산萬壽山이 있다. 부근의 산에는 또 그때 군마를 가둔 골짜기라는 의미의 함마구檻馬溝, 이세민을 쫓아왔던 연개소문의 이름자를 딴 소문항蘇門項 등 지명이 있다.

사실상 ‘세외도원’의 숙성에는 일찍부터 인적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한나라 때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신선’의 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대륙 초기의 사찰인 법기사法起寺는 바로 당왕호의 기슭에 나타나고 있었다. 법기사는 “불법의 기원”이라는 의미에서 취한 이름으로, 이웃한 연운항 공망산孔望山의 마애석불과 더불어 불교가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경로를 견증하고 있다.

서토의 부처가 오지의 낙양에 ‘백마를 타고’ 왔다면 동쪽의 연운항에는 ‘배를 타고’ 왔던 것이다.

숙성은 삼면이 산에 둘리고 바다를 끼고 있어서 선박이 닻을 내리고 급양을 보충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또 경치가 좋은 ‘세외도원’은 선원들이 숙박하는 거주지로 뛰어난다. 동정할 때 해륙 경로를 모두 이용했던 이세민이 이 고장에 나타나는 게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그때 적들에게 쫓겼던 이세민이 법기사에 들려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발원發願을 했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그로부터 2백년 후 법기사에는 신라인이 나타나 향불을 피워 올렸던 것이다.

대륙에 나타난 신라인들은 처음에는 주로 정부 중심의 교섭 때문이었으나 차츰 민간교류가 늘어나면서 계층이 다양해졌다. 와중에는 유학생과 구법승이 있었고 해상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아랍 상인과 교역하는 한편 대륙과 신라, 일본을 내왕하며 국제무역에 종사하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당시 중국의 해안 일대에는 남쪽으로는 복건성福建省의 천주泉州, 북쪽으로는 산동성山東省의 등주登州까지 많은 신라인들이 촌락을 이뤄 살고 있었다.

숙성은 신라의 선대가 대륙을 오고갈 때 경유하는 고장이었다. 이에 따라 신라인들이 숙성에 끼리끼리 찾아 들었다. 신라인들이 한데 모여 살면서 당왕호 기슭에는 신라촌이 나타났다. 그들은 혹자 운수업에 종사했고 혹자 농업에 종사했으며 혹자 식염 생산에 종사했다. 일부는 아예 해주(海州, 연운항의 옛 이름)에 입적했고 현지인과 통혼했다.

고려 후기의 사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신라 시대부터 반도의 사람들은 김을 식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나라의 의서 《본초강목本草綱目도 신라인들이 깊은 바다에서 김을 채취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솔직히 그런 흔적은 숙성에서 꼬물치도 찾을 수 없었다. 필경은 이세민처럼 황제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신라인들은 현지에 지명 하나 남기지 않고 있었다. 호수 기슭에는 돌하르방이 신라촌 옛터를 묵묵히 서있을 뿐이었다. 제주도민을 수호한다고 하는 이 석신石神 10여 년 전부터 바다를 건너와서 마을 옛터를 지키고 있었다.

해신海神 장보고張保皐는 이 신라촌에서 그의 출세의 첫 걸음을 뗐다. 장보고는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경 한반도 끝머리의 청해진淸海鎭을 무대로 동중국해를 누볐던 ‘무역의 왕’이다. 당왕호 부근의 장가루張家樓는 그가 최초에 수하의 뱃사람들과 함께 거주했던 곳이라고 전한다.

장보고의 뛰어난 통솔능력은 당왕호에서 벌써 나타난다. 신라촌 옛터의 안내판에는 그가 이곳에 신라소를 세웠다고 적혀있다. 신라소新羅所는 당나라의 통제 아래에서 신라마을의 신라인들을 자치적으로 관리하던 자치기관이었다. 본래 구당勾當 신라소라고 했는데 장으로 압아押衙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촌보村保와 판두板頭를 두었다.

그때 장보고가 식탁에 반도의 토종음식인 김을 올렸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사찰의 향불 연기는 마을에 감돌고 있었으며 그의 저택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고찰 법기사는 바로 신라촌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찰은 이역 땅에서 생활하던 신라인들이 힘든 몸과 마음을 기대던 곳이었다. 신라인들의 촌락과 신라사新羅寺는 늘 그림자처럼 가지런히 나타난다. 복건성 천주의 신라촌에 신라사가 있었고, 산동성 일조日照의 신라촌에 신라사가 있었다. 나중에 무역에서 큰 이익을 얻은 장보고는 신라인들이 많이 이주한 산동성 문등현文登縣에 신라인들이 법화원法華院을 세우려 하자 이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천년 후 “배를 타고 온” 법기사의 부처는 폭탄에 의해 훼손되는 법난法難을 당한다. 1930년대 말 일본군의 폭격기가 다른 곳을 폭격한 후 남은 폭탄을 전부 이곳에 던졌던 것이다.

예전에 사찰 옛터에는 담의 흔적과 건물 유적 그리고 기와조각 따위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고 한다. 돌로 만든 사자와 의자, 연꽃을 새긴 난간 등도 적지 않았다. 1960년대 초 당왕호에 땜을 건설하면서 옛터는 수중으로 사라진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마을의 옛 촌민센터에 ‘법기사 유적지의 유물전시관’이 있었다. 촌민센터는 현재 암자 모양으로 꾸며진 상태로, 여승 한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여승은 ‘법기사’의 복원을 발원하고 있었는데, 그 연기緣起 때문에 건물 안팎에 사찰의 유물을 적지 않게 소장하고 있었다.

정작 사찰 문어귀를 지키고 있던 돌사자는 ‘법기사’에 있었다. 뒷이야기이지만, 이 신설한 ‘법기사’는 당왕호 동쪽의 산 너머 ‘숙성풍경구’에 나타나고 있었다. ‘법기사’는 2006년부터 거액을 들여 재건, 현재는 거의 완공되어 그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제 날 “회해淮海의 으뜸가는 사찰”이라고 불리던 위용을 재현하고 있는 듯 했다. 회해는 옛날 강소성江蘇省과 산동성山東省, 하남성河南省, 안휘성安徽省의 인접지역을 이르던 지명이다.

그러나 이런 유물들은 모두 숙성 법기사의 제일가는 보물이 아니었다. 사찰의 3대 가보는 실은 사찰의 역사를 대변하는 한나라 때의 기와와 불경 《패엽경貝葉經 그리고 유구국球國의 관리가 증송한 구리향로라고 법기사의 각범覺凡 법사가 말하는 것이었다.

각범 법사의 말에 따르면 한나라 때의 기와는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잃어졌고 《패엽경》은 산동의 제남濟南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구리향로는 연운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법기사에 보관된 것은 일부 석조물과 불사佛事에 쓰이던 그릇뿐이었다. 그나마 온전한 유물은 거의 없었는데, 돌사자도 다리에 보기 흉한 ‘상처’가 있었다.

어쩌면 ‘법기사’는 속절없는 세월에 잠기고 현지에는 이름만 달랑 남긴 셈이다.

법기사는 대륙 초기의 사찰인데다가 또 해상 항로의 요로의 시발점이자 육로의 종착역인 숙성에 위치했기 때문에 다녀가는 승려와 신도들이 줄을 지었다. 숙성 현지에서는 향을 태운다는 의미의 지명 ‘소향하燒香河’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널리 불리고 있었다. 한때는 서역의 고승도 이곳에 와서 경전을 번역하고 포교布敎를 했다고 전한다.

어쨌거나 각범 법사가 기억에 담고 있는 승려는 일본의 고승 엔닌(圓仁, 794~864) 대사였다. 그가 당나라에 유학할 때 법기사에 족적을 남겼던 것. 이게 별다른 인연으로 되었는지 몰라도 엔닌 대사는 나중에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중국 구법순례를 완성한다.

각범 법사는 일본에 동명의 고찰 ‘법기사’가 있다고 하면서 대륙의 이 ‘법기사’와 이어진 천년의 불연佛緣에 감탄을 연발했다.

, 산기슭의 당왕호에서 신라인들을 잠에서 깨우던 사찰의 종소리가 천년 기억의 수면을 헤가르며 떠오를 듯 합니다

‘승려를 따라 찾은 옛 이야기’ 이런 제목으로 “수중의 사찰에서 울리는 천년의 옛 종소리”를 말씀드렸습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계속하여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해마다 5 19일은 ‘중국 관광의 날’입니다. 이날은 ‘천대산 일기’가 시작된 날이라고 해서 생긴 명절인데요, ‘천대산의 일기’는 어느 책에서 나오는 글이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5 19일 ‘중국 관광의 날’은 ‘천대산 일기’가 시작된 날이라고 하는데요, 이 ‘천대산 일기’는 어느 책에서 나오는 글이겠습니까.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임봉해(MC),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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