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0 17:19:28 출처:cri
편집:金东光

거족경중(擧足輕重)


◎글자풀이: 들 거(jǔ), 발 족(足 ),가벼울 경(輕 qīng), 무거울 중(重 zhòng).

◎뜻풀이: ①일거수일투족이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다. ②지위가 중요한것을 가리킴.

◎출처: 남조(南朝)•송나라(宋) 범엽(曄) 저『후한서•두융전(後漢書•竇融傳)』

 ◎유래: 서한(西漢)때 두융(竇融)의 가문은 대대로 하서(河西)에 관리로 있었다. 왕망(王莽)이 정권을 잡았을 때 두융을 파수(波水)장군으로 임명했고 그후 두융은 봉기군 수령 류현(劉玄)에게 귀순해 거록태수(巨鹿太守) 직을 맡았다. 류현의 봉기군이 와해된 후 두융은 주천(酒泉), 돈황(敦煌) 등 5개 군의 두령들과 연합해 하서지역에 할거하면서 하서5군(五郡) 대장군으로 있었다. 하서지역은 민풍이 질박했고 게다가 두융이 어진 정치를 펼치니 경내의 관리와 백성들이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고 국고가 튼실해졌으며 양곡이 넘쳐났다. 따라서 군사력이 막강해졌고 타지역의 백성들이 하서를 많이 찾았다.

한나라(漢) 광무제(光武帝) 류수(劉秀)가 나라를 세운 후 두융은 한나라에 귀순할 마음이 있어 장사(長史) 류균(劉鈞)을 광무제에게 사신으로 파견하여 자신의 뜻을 밝혔고 진귀한 말을 선물로 바쳤다. 광무제가 크게 기뻐하며 두융을 양주목(凉州牧)으로 책봉하고 황금 2백근을 하사했으며 조서를 써서 류균에게 보냈다.

이 조서에서 류수는 하서 5군을 다스려 이룬 두융의 치적을 높이 치하하고 만나고 싶은 절절한 마음을 보여주었으며 당시의 정치와 군사정세를 세세히 분석했다. 그중에서 류수는 한나라와 두융의 관리지역 사이에 익주(益州)의 공손술(公孫述)과 천수(天水)의 외효()의 세력이 있음을 강조하고 이들이 천하통일에 큰 위협으로 된다고 지적했다. 광무제는 이런 정세에서 두융의 선택이 전반 국면에서 관건적인 역할을 하게 되며 두융의 일거수일투족이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수 있음을 강조했다.

거족경중이라는 성어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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