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3 17:24:23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2년 6월 23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6월의 네번 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임봉해(MC)입니다.

6월 23일은 양력 올해의 174일째 되는 날입니다. 올 한해가 마감할 때까지 191일 남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날에 많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고 또 많은 저명한 인물이 출생했거나 사망했습니다.

‘역사속의 오늘’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719년 6월 22일, 중국 고대 네 미인의 한 사람인 당현종의 귀비 양옥환이 출생했습니다.

1900년 6월 22일, 세상에 유명한 중국 감숙성 돈황막고굴 장경동이 발견되었습니다.

1910년 6월 22일 만국박람회에서 중국 전시품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84년 6월 22일 등소평이 홍콩 상공계의 베이징방문단과 홍콩 유명인사 종사원을 각기 만난 자리에서 홍콩에서 실시하는 일국양제는 50년동안 변함이 없다고 표했습니다.

1994년 6월 22일, 일본은 중국침략전쟁 기간 일본이 중국 청장년들을 강제 징집하여 일본에서 노무자로 충당하게 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처음 승인했습니다.

2010년 6월 22일, 중국 문화부는 ‘온라인 게임 관리 잠정실행 방법’을 선포하고 온라인 운영기업이 온라인 게임 사용호의 유효한 신분증 실명 등록을 실시하며 사용호의 등록 정보를 보존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6월 22일은 중국 어린이 자선활동의 날입니다.

가난구제와 선행을 즐기는 중화민족의 전통적인 미덕을 선양하고 중국 공익사업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2002년 6월 22일 중국 어린이와 소년 기금회는 창조적으로 ‘중국 어린이와 소년 자선활동의 날’ 대형 사회공익활동을 출범했습니다. 이 활동은 사회자원을 통합하고 애심의 힘을 응집하여 ‘춘뢰계획’ 즉 ‘봄날의 꽃봉오리 계획’과 ‘안전, 건강 계획의 깊이있는 추진을 진행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간주]

이 시간에는 ‘승려를 따라 찾은 옛 이야기’ 이런 제목으로 “바닷길에 서있는 천년의 등대 신라초新羅礁”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닷길에 서있는 천년의 등대 신라초新羅礁

산에는 ‘나무꾼과 선녀’의 설화가 있다. 옛날 옛적에 나무꾼이 사슴의 보은으로 선녀와 부부를 맺게 되었다고 하는 천상 연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보타산普陀山의 산길에는 나무꾼이 없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십중팔구 승려가 아니면 신도였다. 또 설화에 나오는 사슴이 없었고 선녀는 더구나 없었다. 흙과 풀, 나무의 냄새 그리고 청정한 햇빛이 있었다. 어디선가 물처럼 흘러나오는 불교음악은 마치 구름 위에서 들리는 천상의 소리인 듯 했다.

정말이지 산과 바다, 인간이 땅위에 하나로 어우러진 세외도원의 그림이었다.

보타산은 다름 아닌 관음觀音의 도장이다. 또 관음보살의 연기緣起 설화가 있었다. 배로 해동에 모셔가려던 관음상이 보타산 부근의 암초에 걸려 갈 수 없게 되어 관음원觀音院을 짓고 머물게 되었다는 불연佛緣의 이야기이다.

보타산普陀山은 보타산과 낙가산洛伽山의 준말이며 범문梵文 포타락카(Potalaka)의 음역이다. 관음보살의 주처住處와 설법 도장을 뜻한다. 절강성浙江省 녕파寧波의 동쪽 바다에 있는 섬이다.

불경에서 말하는 보타산은 원래 인도의 남쪽 바다에 있었다. 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동양東洋의 자죽림紫竹林에 가서 관음보살에게 불법을 구했다”고 전하며, 이 때문에 관음보살의 주처는 동양에 있다고 말한다. 선재동자는 범문으로는 수다나(Sudhana)이며 불도를 이룬 ‘구도보살’을 말한다. 출생할 때 재물財物이 아주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라고 전한다.

기왕 말이 났으니 망정이지 다들 보타산에 도착한 후 관음보살에 앞서 선참으로 이 선재동자를 입에 올리지 않나 싶다.

선착장에 들어서는 배마다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음력설 같은 명절에는 보타산에 아예 발을 내디딜 틈도 없다고 한다. 관음보살에게 서원誓願을 올리면 감응이 없지 않다고 소문을 놓은 도장이니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보타산은 시초에 관음보살의 도장이 아니었다. 한漢나라 때 이 산은 인적이 드물었고 아주 황량했다. 도인 매복梅福이 산속에 암자를 짓고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인 매복의 성씨를 따고 또 봉우리 잠岑을 보태어 매잠산梅岑山이라고 불렸다.

오대五代 후의 양梁나라 정명(貞明, 915~921) 연간 초기까지 매잠산은 별로 이름 없는 외로운 섬에 지나지 않았다.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몇몇이 살고 있었을 따름이었다고 한다. 훗날 유명세를 타게 된 건 영험하다고 전하는 사찰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매잠산의 이 최초의 사찰에는 일본 승려가 등장하고 있다. 남송南宋 때의 문헌 《불조통기佛祖統紀》(1269)의 기술에 따르면 당唐나라 때인 859년, 일본의 승려 에가쿠慧鍔가 오대산五臺山에서 관음상을 일본에 가져가려고 매잠산을 경유하게 되었다. 도중에 배는 매잠산 부근에서 암초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이에 에가쿠는 “만일 보살님이 해동에 아직 인연이 무르익지 않으셨다면 이 산에 모시도록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신기하게도 이 말이 끝나자 배가 즉각 물에 떠서 움직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에가쿠 일행은 관음상을 해상의 바위에 모시고 봉안식을 했다.

이때부터 여러 문헌의 기술은 약간씩 다르지만, 관음상은 약 916년경 조음동潮音洞 부근에 지은 사찰에 공양되었다고 전한다. 이 사찰은 고사古事의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아 ‘불긍거관음원不肯去觀音院’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송宋나라 원풍元豊 3년(1080), 신종神宗이 사절단을 한반도에 보내는데 배가 갑자기 풍랑을 만났다. 이때 상서로운 금빛이 매잠산의 조음동으로부터 일어났으며 잇따라 배가 평안하게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기이한 소문을 들은 신종은 매잠산의 사찰에 액자 ‘보타寶陀’를 하사하는데, 나중에 이와 비슷한 음의 ‘보타普陀’라는 산 이름이 정식으로 매잠산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각설하고, 송나라의 사절로 고려에 다녀갔던 서긍徐兢이 남긴 책 《고려도경高麗圖經》(1124)은 다른 판본의 관음 설화를 전하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보타섬에는… 영험한 관음상이 있다. 옛날 신라 상인이 오대산에서 불상을 새겨갖고 귀국하려다가 바다에 암초가 나타나서 갈 수 없었다. 이에 불상을… 보타원전普陀院殿에 봉안한 후 선박의 왕래가 가능해졌다.”

누가 배의 주인이었든지 막론하고 관음상을 실은 배가 부딪친 암초는 ‘신라초新羅礁’라고 전한다. 명나라 만력(萬曆, 1573~1620) 연간에 저술된 《보타산지普陀山志》가 일본 승려 에가쿠와 보타산에 얽힌 고사를 기록하면서 이와 같이 전하고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신라초는 신우神牛 항구의 바다에 있으며 보타산의 제일 서쪽 끝에 위치한다.

보타산 서쪽의 바다에는 정말로 큰 삿갓처럼 생긴 암초가 물위에 솟아있는데, 현지 사람들은 항비초缸飛礁라고 부른다. ‘항아리가 날아갈 듯한 암초’라는 의미로, 갈매기가 앉아서 쉬었다가 날아가는 암초라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천여 년 전 신라의 상선은 보타산의 이 신라초를 지나 지금의 녕파寧波인 명주明州에 들어갔다. 절강성 동부 연해에서 해동의 한반도와 일본 등으로 통한 해상 항로는 이때 벌써 형성되어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선박들은 바다에서 큰 파도나 무서운 해적을 만나면 해상의 등대 같은 보타산을 찾았다. 이에 따라 보타산은 안전한 도피지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선박이 부두에 이른 후이면 선원船員과 탑승객들은 보타산에 올라 사찰에 참배를 하고 관음보살의 영력靈力에 서원을 올리거나 감사를 표했다.

이 바닷길은 훗날 ‘동아시아의 해상 실크로드’라고 불렸다. 신라초는 바로 이 해상 ‘실크로드’를 견증하는 살아있는 지명이다.

신라초는 물론 반도의 신라국과 한데 연결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그때 신라인들은 대륙 연해 일대에서 거주하면서 ‘신라’ 이름자의 지명을 많은 곳에 남기고 있었다. 해상 요충지에 위치한 절강 동부 연해에는 더구나 신라인들이 운집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신라’라는 이름을 곳곳에 찍어놓고 있다. 당․송唐․宋 시기 보타산 남쪽 일대의 황암黃岩에 신라방新羅坊, 신라교新羅橋가 있었고 상산象山에 신라오(新羅嶴, 신라촌)가 있었으며 임해臨海에 신라초, 신라서(新羅嶼, 신라섬), 신라산新羅山이 있었다. 와중에 신라초나 신라섬은 항로의 표지로 되고 있었고 신라방, 신라촌은 거주지, 신라산은 시신을 묻는 자연적인 장지葬地로 되고 있었다. 또 일부 지명은 신라초처럼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반도로 건너뛰게 된다. 보타산에 일본의 승려 혜악보다 장장 백오십년을 앞질러 신라의 승려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는 ‘신라’의 지명처럼 보타산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관음상이 아닌 사찰을 통째로 배에 실어가면서 보타산에 족적을 또렷하게 찍고 있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洛山寺는 보타산의 ‘불긍거관음원’과 비슷한 구조인데, 의상(義湘, 625~702) 대사가 낙산 동쪽의 바닷가 굴속에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보고 지었다고 하는 사찰이다. 의상 대사는 신라의 왕족 출신으로 불교 화엄종을 처음으로 한반도에 도입한 고승이다. 이때 의상 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난 관음굴은 지금의 홍련암紅蓮庵으로 바닷물이 굴속으로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보타산 ‘불긍거관음원’의 앞에 있는 조음동을 그대로 닮은 듯하다.

관음 신앙의 두 사찰이 대륙과 한반도에 쌍둥이처럼 나란히 출현하는 것은 결코 우연하지 않다. 미상불 의상 대사는 당나라에서 구법할 때 보타산의 사찰을 순례하고 보타산의 지형과 비슷한 곳을 한반도의 동해안에서 찾아 그곳에 사찰 건물을 지었던 것이다.

의상 대사를 비롯한 반도의 구법승들의 대륙 유학, 보타산의 그림자가 비낀 낙산사 그리고 보타산과 그 주변에 남긴 신라인들의 흔적은 은연중 보타산과 이은 신라인들의 불연佛緣을 암시하고 있다.

정말이지 ‘불긍거관음원’은 신라인들 때문에 생겼다는데 한결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옛날 선단船團이 보타산에 이른 후 신라인들은 섬에 올라 사찰에 가서 향불을 피웠다. 신라 선박이 머문 부두를 ‘고려도두高麗道頭’라고 불렀다고 한다. ‘도두道頭’는 옛날 배에 오르는 곳을 이르던 말로 부두라는 의미를 가진다. 에가쿠 일행이 뭍에 올라 머문 곳도 바로 이 ‘고려도두’였다고 전한다.

‘고려도두’는 보제사普齊寺의 옛길과 한데 연접된다고 남송 때의 문헌이 밝히고 있다. 보제사는 그 무렵에 본전本殿을 세운 보타산의 최대의 사찰이다. 일각에서는 또 고려에서 매년 공물을 바치러 송나라에 올 때 반드시 이 부두를 거쳐야 했으며 그래서 고려라는 관명冠名을 이 부두에 붙여 ‘고려도두’라고 불렸다고 주장한다.

하여튼 이 ‘고려도두’는 현재 전부 육지로 변했으며 유적조차 없다. 지난 천여 년 동안 수위가 많이 내려갔고 또 사람들이 바다를 메우고 밭을 만든 결과이다.

여타를 막론하고 보타산에서 일행이 제일 놀랜 곳은 보제사의 앞에 있는 해인지海印池였다. 해인海印은 모든 법을 비춰보는 것이 마치 바다에 만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는 말로, 우주의 일체를 깨달아서 아는 부처의 지혜를 가리킨다. 해인지는 원래 신도들이 방생하던 곳이었는데 훗날 연꽃을 심었다고 해서 ‘연화지蓮花池’라고 불리고 있었다.

마치 ‘해인’의 의미를 하늘 아래에 그림으로 현시하는 듯 했다. 못에 잠긴 울긋불긋한 단풍잎이 비단물결처럼 바람 따라 물 따라 하느작이고 있었다. 실은 착시현상이었다. 이 단풍잎은 신도들이 방생한 금붕어이었다. 물고기가 하도 많아서 못가의 단풍잎이 수북이 떨어진 듯한 양상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너’와 함께 못가에서 금붕어와 더불어 노니는데 한겨울의 못에서 홀연히 하얀 연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환영幻影이 떠오른다.

보타산의 앞바다에 연꽃처럼 떠있는 낙가산이 시야에 뛰어들 듯 달려오고 있었다. 옛날부터 낙가산을 ‘와불臥佛’이라고 부른다고 하더니 말 그른데 없었다. 낙가산은 흡사 물위에 누워있는 부처의 형상으로 머리와 목, 가슴, 배, 발 등 모양이 아주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간주]

네, ‘신라’ 이름의 암초는 바로 천년의 ’해상 불국佛國’으로 통하는 그 바닷길에 침몰되지 않는 등대처럼 서있었습니다.

'승려를 따라 찾은 옛 이야기’ 이런 제목으로 “바닷길에 서있는 천년의 등대 신라초新羅礁”를 말씀드렸습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계속하여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해마다 5월 19일은 ‘중국 관광의 날’입니다. 이날은 ‘천대산 일기’가 시작된 날이라고 해서 생긴 명절인데요, ‘천대산의 일기’는 어느 책에서 나오는 글이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5월 19일 ‘중국 관광의 날’은 ‘천대산 일기’가 시작된 날이라고 하는데요, 이 ‘천대산 일기’는 어느 책에서 나오는 글이겠습니까.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임봉해(MC),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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