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1 16:09:24 출처:cri
편집:金东光

분서갱유(焚書坑儒)

◎글자풀이: 불사를 분(焚fén), 글 서(書shū), 구덩이 갱(坑kēng), 선비 유(儒rú).

◎뜻풀이: ①분서갱유. ②진시황이 학자들의 정치비평을 금하기 위하여 시서육경을 불태우고 유학자 460여명을 생매장한 일.③학문,사상을 탄압당하는 일.

◎출전: 한(漢) 사마천(司馬遷) 『사기•진시황본기(史記•秦始皇本紀)』

◎유래: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군현제(郡縣制)를 실행했다. 기원전 213년에 박사제인(博士齊人) 순우월(淳于越)이 이 제도를 반대하면서 옛 제도에 따라 황실의 자제들을 책봉할 것을 주장했다.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두 조대의 보위가 천여년간 이어져 온 원인은 조정에서 책봉한 황실 자제들과 공신들이 각지 제후들의 보좌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천하를 얻으셨으나 황실의 자제들은 분봉을 받지 않았으니 유사시에는 누가 구원하러 온단 말입니까? 옛 것을 본 받지 않고 오래 갈수 있는 일이란 없는 법이옵니다. 방금 여러 대신들이 폐하를 칭송한 목적은 황제의 허물을 덮어 감추기 위해서입니다.” 진시황이 이 말을 듣고 몹시 노했다. 

   승상(丞相) 이사(李斯)가 나서서 이를 반박했다. “황제(黃帝)를 비롯한 오제(五帝)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서로 중복되는 점이 없었고 하(夏), 상(商), 주(周) 세 조대의 제도 역시 낡은 것을 고수하지 않았기에 나라가 안정되고 강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부러 이전 조대와 다르게 하려 한것이 아니고 시대가 다름에 따라 다른 방식을 취할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작금에 폐하께서 만대에 길이 빛날 위업을 이루었으니 어찌 예전의 방법을 답습한단 말입니까? 지금 천하는 태평하고 법령이 통일되었으니 백성들은 응당 생업에 잘 종사하고 유생들도 법령과 제도를 잘 배우고 이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허나 일부 유생들은 지금의 것이 아니라 옛것만을 배우고 작당을 하여 백성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려 혼란만 조성합니다. 만약 이를 금하지 않는다면 황제폐하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질 것입니다. 소신은 폐하께서 이런 법령을 선포하기를 청하옵니다. 진나라 역사서외의 모든 서책들을 태워 없앨것이며 박사(博士)가 관리하고 있는 “시(詩)”, “서(書)”와 제자백가의 저서들은 관리들이 전부 한곳에 모아 역시 태워 버려야 합니다. 함께 모여 “시”와 “서”를 논하면 사형에 처하며 옛것을 인용하여 현 시국을 반대하는 자는 그 일족을 멸합니다. 관리들이 알고도 이를 고발하지 않으면 같은 죄로 다스립니다. 법령이 반포된 후 30일내에 이런 서책을 태우지 아니 한 자는 경형(黥刑)에 처하고 4년동안 노역에 종사하도록 합니다. 의약, 식목 등과 관련된 책은 태우지 않아도 됩니다.”

   진시황이 이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법령을 정하라고 명했다. 얼마후 분서(焚書)를 행하라는 법령이 내려 왔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상 유명한 진시황 분서사건이다. 

   당시 진시황은 장생불로의 선약을 찾고 있었으나 많은 재력을 허비하고도 찾지 못했다. 그후 그는 방사인 후생(侯生)과 노생(盧生) 두 사람의 거짓말을 믿고 이들에게 장생불로약을 찾아올 것을 명했다. 이 두사람은 선약을 찾을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이렇게 원망을 했다. “시황제는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잔폭한 성정이다. 제후가문에서 태어나 천하를 삼키고 제멋대로이며 고금에 자신과 비할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 그는 형벌을 즐겨 사용하고 사람을 죽여 자신의 위망을 높이려 한다. 모두들 죄를 받기를 무서워하고 관직을 보전하기에 급급하며 충언을 하는 자가 없다. 진나라 법령은 한 사람이 두가지 이상의 기술을 보유해서는 안되고 그 기예가 효험이 없으면 죽이기가 일쑤이다. 지금 조정에서 천문을 관측하는 30여명은 원래 훌륭한 선비들이나 황제의 뜻을 거스를가 두려워 아첨만 하고 황제의 잘못을 직언하는 자는 없다.”

   두 사람은 결국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진시황이 이를 알고는 노하여 말했다. “노생 등은 짐이 매우 신임했고 또 많은 재물을 하사했다. 헌데 이들이 유가(儒家)의 이치를 들어 나의 흉을 보고 또 도망까지 쳤다. 내가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지금 함양(咸陽)의 많은 유생들 중 요언을 퍼뜨리고 백성들을 현혹하는 자들이 많다고 하니 정말로 괘씸할지고.”

   진시황이 어사(御史)에게 모든 유생들의 언행을 감찰하고 심문하도록 했으며 유생들끼리 서로 고발하도록 했다. 그는 법령을 위반한 460여명의 유생들을 전부 함양에 생매장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진시황갱유(坑儒)사건이다. 

   후에 사람들은 이 두가지 일을 묶어 “분서갱유”라는 성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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