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3 17:40:32 출처:cri
편집:林凤海

[중한 수교 30년 특별 기획] 중국과 한국의 30년을 지켜보다-공공외교의 이야기

사회자(여): 안녕하세요. 임봉해입니다.

사회자(남): 안녕하십니까. 김민국입니다.

여: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92년 8월 24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조어대 국빈관에서 첸치천 중국외교부장과 이상옥 한국 외무장관이 외교관계 수립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남: 네. 그로써 중국과 한국은 43년간 서로 단절되었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두 나라 외교관계의 새로운 한 폐지를 열었습니다.

여: 중한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양국관계가 30년 동안 빠른 발전을 가져와 국제관계의 모범이 되기까지 공공외교의 힘이 큽니다.

남: 공공외교는 한 나라가 문화교류와 정보 프로젝트 등 형식을 통해 해외 대중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해외 대중들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자국의 국가 이미지와 국제 영향력을 향상하며 나아가서 자국의 국익을 증진하는 외교방식을 말하죠.

여: 전통적인 의미에서 공공외교의 주된 과업은 매스미디어를 통한 일방적인 국가의 홍보로 인정되었지만 NGO와 온라인의 흥기에 따라 공공외교는 쌍방향 대화를 강조하고 대중을 의미의 공동창조자와 정보의 공동전달자로 보는, 소프트 실력의 중요한 수단으로 부상했습니다.

남: 공공외교의 개념은 1960년대에 출현했지만 공공외교의 행위는 오래 전부터 있었고 공공외교의 범위도 아주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 네. 오늘은 수교 전부터 양국간 관계를 지켜보고 관계 발전에 주력한 김한규 한국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과 쉬바오캉 중국 인민일보 기자로부터 중국과 한국의 공공외교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남: 언론도 공공외교의 일환이고 협회 역시 공공외교의 기관이죠.

여: 그렇습니다. 김한규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 21세기 교류협회는 2000년에 설립된 한국의 공공외교기관으로 양국간 각 분야의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양국의 우호증진과 발전에 기여하는 데 취지를 두고 있습니다.

남: 쉬바오캉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1974년과 1989년 두 번에 걸쳐 인민일보 평양 특파원으로 있었고 중국과 한국 수교 후에는 1993년과 2008년 두 번에 걸쳐 인민일보 서울 특파원으로 있었는데요 북과 남에 파견된 시간은 도합 16년에 달합니다.

여: 중한 양국의 언론은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수교 전부터 양국의 상호 이해와 교류,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남: 네. 제가 알기로 중국과 한국이 수교하기 전인 1992년 8월 21일 서울에서 세계언론인 대회가 있었는데 오늘의 중국중앙방송총국 조선어 방송이죠 당시의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 방송부를 망라해 인민일보와 신화사 등 언론사 기자 7명으로 구성된 중국 언론인 대표단이 홍콩을 경유해 서울을 방문했고 서울에서 양국의 수교 소식을 접했습니다.

여: 언론뿐만 아니라 체육도 공공외교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한규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한국 21세기 한중교류협회 김한규 회장)

김한규 회장: (음향) (질문: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

"1990년 9월 22일부터 10월 10일까지 북경에서 개최된 제11회 아시안 경기대회 관계로 북경 아시안 경기대회 위원회 초청으로 한중 수교 전이었지만 1990년 7월에 북경 아시안 게임 한국측 지원단장으로 북경을 방문한 것이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 중한 양국 수교 전에 양국의 체육 교류가 많이 진행되었죠. 서울에서 개최된 86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에 중국이 대표단을 대 규모 파견했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는 한국이 대 규모 대표단을 파견했습니다. 그 때 쉬바오캉 기자가 마침 베이징 아시안게임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함께 들어보시죠.

(사진설명: 중한 언론인포럼에서 발언 중인 쉬바오캉 기자)

쉬바오캉 기자: (음향)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은 중국이 개최한 첫 대규모 국제 체육경기대회이자 중국 개방의 중대한 사건입니다. 조선과 한국이 각기 대 규모 체육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반도의 남과 북이 베이징에 모여 다년간의 단절을 깼습니다. 조선과 한국은 체육무대에서 함께 경기를 치렀고 중국은 이에 아세안게임이라는 플랫폼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내가 조선, 한국과 인연을 맺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 때 나는 인민일보 기자로 조선과 한국의 경기종목을 취재했습니다. 취재를 통해 나는 쌍방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습니다."

여: 이런 스포츠 교류가 양국 수교의 받침돌의 하나가 되어 양국 수교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죠.

여: 중한관계발전이 세계발전의 흐름에 부합하기 때문에 양국관계는 수교 후 아주 빠른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김한규 회장은 지금도 수교의 첫 발자국을 이렇게 돌이켜 봅니다.

(사진설명: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화보 발간식에서 발언 중인 김한규 회장 - 사진출처: 차이나 뉴스)

김한규 회장: (음향) 

"1992년 8월 24일에 한중 수교가 되었는데 북경시 초청으로 북경을 방문하고 북경 시청을 방문했습니다. 8월 24일, 9시 시청에서 우리 대표단을 맞이해서 한국 국기를 게양했는데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입니다. 정말로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일임입니다."

남: 양국 수교 당일에 베이징시를 방문하고 베이징시 인민정부에서 중국 국기와 함께 한국 국기를 게양했으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여: 양국간의 인적내왕 역시 공공외교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데요 김한규 회장은 수교 전부터 중국을 방문했고 수교 후에는 더 많이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들어보시죠.

김한규 회장: (음향) 

"하도 많이 다녀서 컴퓨터가 아니라서 기억하지 못합니다. 수 백 번 다녔는데 다닐 때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서 몇 백 번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업가가 아닌 민간인으로서 양국간의 교류협력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것은 한국에서는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가장 인상이 남는 곳은 북경입니다. 북경은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똑 같은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처음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보면 중국의 과거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계기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근래에 와서 감명 깊은 것은 중국의 34개 성을 다 공식적으로 방문하고 한 군데를 못 갔는데 그것은 티벳입니다. 그것도 2019년 8월에 중국 외교부의 특별한 배려로 티베트를 방문해서 가장 인상이 깊었습니다."

남: 쉬바오캉 기자도 한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제13회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취재  중인 쉬바오캉 기자)

쉬바오캉 기자: (음향) 

"중한 수교 30년 동안 한국이 나에게 남긴 가장 인상 깊고 가장 재미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중 세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제한된 자원과 무한한 창의력입니다. 한국은 자원이 제한적이고 국토가 넓지 않으며 기점이 높지 않은 나라이지만 분투를 거쳐 세계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고 발전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취재하면서 내가 받은 인상은 바로 제한된 자원과 무한한 창의력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의 유명한 철강기업인 포항제철의 좌우명이자 한국 발전경험의 구현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포항제철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많은데 그 발전의 공통된 비결이 바로 과학기술 우선시와 무한한 창의력입니다. 둘째, 한국의 발전도 순풍에 돛단배가 아니었습니다. 1997년 IMF로 인해 한국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고 외채 규모는 8천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런 위급한 시각에 한국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나라를 위해 금 모으기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수십만의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황금을 내놓았는데요 “국가의 흥망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이런 책임감은 나라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민족의 응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셋째, 한국에서는 집집마다 공자를 알고 공자의 충효례 사상은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한국에는 현재 88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230여 개의 향교가 있습니다. 한국은 학생들의 윤리교육을 중시하고 800여 년간 이어져 온 향교교육을 초ㆍ중교 윤리교육의 보충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이 따라 배울 바입니다."

여: 이렇게 양국 국민들의 이해와 우의가 두터워질수록 양국관계도 더 좋게 더 빨리 발전하게 되고 이 것이 바로 공공외교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몇 가지 데이터를 보면 이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과 한국의 도시는 각각 205개이고 상대국에 상주하는 인구수는 각 수십만 명, 매 주 항공편 수는 1200여편에 달하며 인적 교류의 규모가 수교초반의 연 13만명으로부터 연 천만 명을 돌파하는데 20여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남: 중국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이고 한국은 중국인들에 세 번째로 가장 많이 찾는 나라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런 눈부신 성과의 바탕에는 정부차원은 물론이고 중한공공외교포럼과 중한인문학포럼, 중한미래포럼 등 공공외교 영역의 노력이 깔려 있습니다.

여: 그렇습니다. 양국에는 또 양국간의 교류와 협력에 취지를 둔 다양한 외교공공기관들이 있는데요 그 중 하나인 한국 21세기 한중교류협회의 활약상에 대해 김한규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제11차 한중 고위언론인 포럼에 참석해 기념 촬영 중인 김한규 회장)

김한규 회장: (음향) 

"(21세기 한중교류협회는) 한국과 중국의 공공외교 대표기관으로 서울서 창립되었으며 그 이후에 2000년 12월 29일 중국인민외교학회와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지난 22년간 양국의 국익을 위해 5대 포럼과 간담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인민외교학회와 매년 한중고위지도자 포럼을 개최하고 있는데 2001년부터 해마다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중 여성 지도자 포럼은 인민외교학회와 16차 개최했고 한중 차세대 정치 지도자, 국회 의원들, 한국 국회의 30,40대의 젊은 국회의원과 간담회 역시 인민외교학회와 개최하고 있습니다.

국무원 신문판공실과는 한중고위언론인 포럼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양국국민간의 이해증진을 위해 언론이 아주 중요합니다. 올해 언론포럼은 금년 11월에 제 14차 개최 예정입니다. 여성지도자 포럼은 16차까지는 중국인민외교학회와 했고 작년부터 제17차와 제18차는 송경령기금회와 공동 개최했습니다. 금년에도 개최 예정입니다.

그 외 각 지방 정부와 인적 교류, 경제교류를 통해 양국교류 증진을 위해 노력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공공외교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 모든 관계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정상인데요 이런 소통과 교류를 통해 갈등해소에 임하는 것도 공공외교의 한 가지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 그렇습니다. 쉬바오캉 기자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한국 고려삼 재배농원 취재 중인 쉬바오캉 기자)

쉬바오캉 기자: (음향) 

"중한관계의 빠른 발전에 따라 중한관계발전은 주된 흐름을 보이지만 일부 불협화음도 들려옵니다. 이런 부정적인 정서와 문제들은 중한관계의 건강한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에 2008년 중국우호협회는 중국우호협회 중한언론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중국 기자들과 한국 기자들간 소통의 플랫폼으로 중한언론위원회는 주중 한국 기자단과 늘 ‘조화의 목소리’라는 이름의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 우리는 상기 문제에 관해 교류하고 연구 토론함으로써 적지 않은 문제가 설명되고 소통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2005년 중한간에 나타난 단오절 분쟁은 큰 영향을 일으켰습니다. 그에 나는 직접 한국 강릉군에 가서 한국의 단오절에 관해 상세하게 취재했습니다. 취재를 통해 한국의 단오절(제)과 중국의 단오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후에 설명과 의혹해석을 통해 이 문제의 사실이 밝혀지고 분쟁이 점차적으로 완화되었습니다."

여: 지난 30년 동안 중한 양국간에는 이런 저런 문제도 있었지만 많은 분야에서 세인이 주목하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양국관계는 국제관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남: 네. 중국과 한국이 수교 30년 동안 세계가 괄목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은 것에 대해 쉬바오캉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쉬바오캉 기자: (음향) 

"산과 물이 잇닿아 있는 중한 양국은 장기간 교류의 전통도 가지고 있고 현실적인 상생의 근거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문화의 이익 등으로 인해 양국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좋은 이웃과 좋은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역사는 인간이 창조하고 인간이 쓰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이 손 잡고 걸어온 30년의 여정은 아주 귀중하고 강한 생명력을 가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비법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수교 초심을 잃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것, 이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밝은 길입니다. 둘째, 호혜협력으로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것, 이는 상생하는 발전의 길입니다. 셋째, 교란을 제거하고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 이는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추진하는 안보의 길입니다."

여: 수교 30년을 맞이하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 30년, 나아가서 더 긴 내일을 전망하면 기회도 있고 도전도 있는데요 그 기회를 이용해 더 좋은 발전을 이룩하고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김한규 회장은 “양국관계가 지난 30년 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은 있었지만 순탄하게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고 하면서 양국관계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2010년 4월 27일, 제7차 중한 여성지도자포럼에 참석해 기념 촬영 중인 김한규 회장)

김한규 회장: (음향) 

"공공외교의 활성화입니다. 공공외교는 특히 한중간에 아주 중요합니다. 지방정부간 교류와 민간교류의 활성화입니다. 앞으로 지방정부간 교류와 민간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서 양국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제협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문화와 인적 교류의 확대와 인문교류의 활성화입니다. 국민들간의 우호증진은 양국관계발전에 아주 중요합니다. 따라서 국민들간의 우호증진을 통해 문화인적 교류의 확대에 기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세대인 청소년들간의 교류입니다. 한국의 유학생들이 중국에 가 있고 중국 유학생들도 한국에 와있는데 청년들간의 소통과 왕래 확대를 위해서 적극적인 양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남: 네. 쉬바오캉 기자는 어떻게 전망하는지 들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중국 북대하에서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쉬바오캉 기자)

쉬바오캉: (음향) 중한관계가 삼십이립의 해를 맞이하는 이 역사적인 시각에 중국과 한국은 양국 국민에 책임지는 시각에서, 전략적 협력의 시각에서, 호혜상생을 심화하는 폭에서, 아시아와 세계평화와 발전을 추진하는 시각에서 공동으로 새로운 냉전에 맞서고 외적인 교란을 제거하면서 함께 양국관계를 더 높은 수준에로 끌어올려 양국 국민과 세계 인민들을 위해 복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여: 중국과 한국의 공공외교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모두가 노력해 향후 중한 양국 관계가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을 이루기를 기대합니다.

남: 네. 중한 수교 30년 특별 기획 <중국과 한국의 30년을 지켜보다> 공공외교편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남, 여: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셔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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