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4 15:58:21 출처:cri
편집:林凤海

[중한 수교 30년 특별 기획] 삼십이립에 이르기까지(상편)

중한 수교 30년 특별 기획

<삼십이립을 딛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미래로>

상편

<삼십이립에 이르기까지>

 (음향 1, 중한 수교 사설, 더빙 필요)

“중화인민공화국정부와 대한민국정부는 양국 국민들의 근본이익과 소망으로부터 출발해 1992년 8월 24일부터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중한 양국관계의 큰 사건이며 양국관계의 발전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이는 1992년 8월 25일 중국 <인민일보>에 발표된 중한 수교 축하 사설의 한 단락이다. 30년 전의 오늘 중국과 한국은 수교를 통해 43년간 서로 단절되었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양국 관계 발전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중국과 한국은 2천년이 넘는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보유하며 예로부터 문화와 민심 상통의 전통을 자랑해왔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몇 십 년 동안 역사적인 원인으로 양국관계는 단절과 비정상 상태에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몇 십 년은 2천년의 유구한 교류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이에 중한 양국은 1990년대 국제정세의 새로운 변화에 맞추어 상이한 사회제도와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딛고 양국간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는 양국과 양국 국민의 이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조선반도, 나아가서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도 유리하다. 

중한 양국간의 정상적인 교류가 단절되었던 그 동안에도 양국의 민간 내왕은 종래로 끊어지지 않았으며 그런 민간교류를 바탕으로 양국 수교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체육교류가 바로 민간 교류의 한 대표이다. 김한규 한국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은 체육교류의 참여자의 한 사람으로 수교 전에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김한규 회장의 말이다.

(사진출처: 차이나뉴스) 

(음향 2, 김한규 회장 음성)

"1990년 9월 22일부터 10월 10일까지 북경에서 개최된 제11회 아시안 경기대회 관계로 북경 아시안 경기대회 위원회 초청으로 한중 수교 전이었지만 1990년 7월에 북경 아시안 게임 한국측 지원단장으로 한국 대표단 단장으로 대표단을 이끌고 북경을 방문한 것이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한 양국간 체육 교류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서울에서 개최된 86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에 중국이 대표단을 대 규모 파견했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는 한국이 대 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 그 때 중한수교 축하 사설을 작성한 쉬바오캉 인민일보 기자가 그 현장을 취재했다.

쉬바오캉 기자는 이렇게 추억을 되살린다.

(음향 3, 쉬바오캉 기자 음성, 더빙 필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은 중국이 개최한 첫 대규모 국제 체육경기대회이자 중국 개방의 중대한 사건입니다. 조선과 한국이 각기 대 규모 체육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반도의 남과 북이 베이징에 모여 다년간의 단절을 깼습니다. 조선과 한국은 체육무대에서 함께 경기를 치렀고 중국은 이에 아세안게임이라는 플랫폼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내가 조선, 한국과 인연을 맺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 때 나는 인민일보 기자로 조선과 한국의 경기종목을 취재했습니다. 취재를 통해 나는 쌍방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습니다. ”

중국과 한국이 수교한 후 지난 30년간 양국 정부와 사회 각계의 노력으로 양국은 정치와 안보, 사회, 문화,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모두 빠르고 지속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양자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역내와 국제문제에서도 양국은 훌륭한 협력을 진행했다. 중한 수교는 획기적인 사건이며 양국관계는 국제관계의 모범이 되었다.

양국간 관계는 1992년 수교 당시의 ‘우호협력관계’를 시작으로 1998년의 ‘21세기 협력적 동반자 관계’, 2003년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거쳐 2008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전면 격상되었으며 지금까지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양국은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을 포함하여 고위급 전략채널을 가동하고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기제를 구축해 소통을 진행해왔으며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우호도시 및 자매결연을 맺는 등 다양한 교류협력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수교 전부터 진행되어온 민간교류는 수교에 힘입어 더욱 활성화되었다.

중한 양국의 지난 30년간 거둔 세인의 주목을 받는 성과를 대변하는 숫자를 보자. 양국의 인적 교류 규모는 1992년에 연 13만명에 불과했는데 2014년에 벌써 연 천만 명을 돌파했고, 양국 간의 주간 왕복 항공편은 코로나 19사태 이전에 1200여편 이상에 달했으며, 중국의 재한 유학생은 약 6만명, 한국의 재중 유학생은 6.7만명에 달했고, 양국의 무역 규모는 1992년의 63억 달러로부터 2021년의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간주)

중한 양국관계의 활성화에 따라 양국 국민들은 더 빈번하게 오가며 더 많은 인연을 맺고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갔다. 현재 중국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국이고 한국도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국으로 부상했다. 최고로 2016년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800만명을 넘고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500만명에 달했다는 통계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양국 국민들은 상대방 국가를 방문해서 상대방 국민들과 접촉하면서 이해와 우의를 증진했다.

김진곤 주중한국문화원 원장은 자신이 본 변화하는 중국을 이렇게 말한다.

(음향 4, 김진곤 원장 음성)

“2003년도에 왔을 때는 북경에 오지 않고 중경에 와서 성도, 아미산, 낙산대불을 보고 중경에서 유람선을 타고 삼협댐을 지나 관광하는 코스로 상해까지 갔습니다. 그때는 북경은 보지 못하고 상해를 보고 엄청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도시가 이렇게 크고 이렇게 고층빌딩이 많았습니다. 동방명주를 보고 평소에 생각했던 중국과 상해의 모습이 완전히 상상하고 달랐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 중국에 왔고 2016년에 들어갔다가 2020년에 다시 왔는데 제일 큰 변화는 북경의 공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2016년에 들어갈 때만 해도 스모그가 아주 심각해서 다시 오면서도 또 스모그를 어떻게 극복할지 하고 걱정했는데 막상 와보니 스모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좀 있으면 생길 것이라 생각해도 안 생기고 지금까지도 계속 스모그가 생기지 않아서 아, 이제 북경은 완전히 스모크가 사라졌구나 생각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북경에 공기가 좋아졌다는 것, 너무 좋습니다. 두 번째 가장 큰 변화는 공유경제입니다. 내 차를 가지지 않고 앱으로 차를 부르면 3분이내에 탁 대기합니다, 개인 차가 필요 없을 정도로 공유경제가 발달해서 너무 편리합니다, 집에서 문화원으로 올 때 대사관을 오갈 때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달립니다. 그러면 차는 막히고 그러면 짜증이 나는데 자전거를 타면 짜증이 안 납니다. 그리고 중국은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고 북경은 서울과 달리 평지입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없어서 자전거 타는데 힘이 들지 않습니다. 진짜 북경을 느끼려면 자전거를 타야 북경을 즐길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진곤 원장이 중국통이라면 쉬바오캉 인민일보 기자는 한국을 잘 아는 언론인이다. 쉬바오캉 기자는 자신이 본 한국을 이렇게 말한다.

(음향 5, 쉬바오캉 기자 음성, 더빙 필요)

“중한 수교 30년 동안 한국이 나에게 남긴 가장 인상 깊고 가장 재미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중 세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제한된 자원과 무한한 창의력입니다. 한국은 자원이 제한적이고 국토가 넓지 않으며 기점이 높지 않은 나라이지만 분투를 거쳐 세계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고 발전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취재하면서 내가 받은 인상은 바로 제한된 자원과 무한한 창의력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1997년 IMF로 인해 한국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고 외채 규모는 8천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런 위급한 시각에 한국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나라를 위해 금 모으기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수십만의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황금을 내놓았는데요 “국가의 흥망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이런 책임감은 나라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민족의 응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셋째, 한국에서는 집집마다 공자를 알고 공자의 충효례 사상은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한국에는 현재 88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230여 개의 향교가 있습니다. 향교는 해마다 초ㆍ중교의 겨울방학과 여름방학 때만 개강하며 교재는 한문으로 쓴 ‘사자소학’이고 중심 내용은 충, 효, 인, 애 등 도덕적 규범과 행위의 준칙입니다. 한국은 학생들의 윤리교육을 중시하고 800여 년간 이어져 온 향교교육을 초ㆍ중교 윤리교육의 보충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이 따라 배울 바입니다. ”

수천 년 동안 교류하는 과정에 중국과 한국의 문화는 서로 어울리고 함께 발전하면서 유사한 점도 있고 서로 다른 점도 있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같은 유교문화권,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과 한국 문화의 유사한 점과 다른 점에 대해 김진곤 주중한국문화원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음향 6, 김진곤 원장 음성)

“중국에 있으면서 중국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강연을 하기도 하고 한국 가서는 한국인들에게 중국을 소개하는 강연을 합니다. 제가 하는 가장 큰 주제는 화이부동의 한중문화입니다. 화이부동은 논어에 공자가 한 말, 군자는 조화롭게 지내지만 똑 같지가 않고 소인은 동이부화, 소인은 똑 같은 행동으로 하면서도 화애롭게 지내지 못하다는 내용입니다. 왜 한중문화를 화이부동이라고 진단하냐면, 화는 비슷하다, 유사하다는 의미입니다. 한중문화는 처음 보면 큰 차이가 없는 문화처럼 보여 화라 할 수 있지만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다릅니다. 그래서 한중문화에 대한 진단을 화이부동이라 했습니다. 진단이 있으면 처방이 있어야 합니다. 처방은 서로 한중간에 비슷하고 같은 문화가 있으면 자꾸 ‘우리 서로 같은 문화가 있다. 한국인도 한자를 알고 중국인도 바둑을 두고 한국도 바둑을 둔다. 중국에도 서예가 있고 한국에도 서예가 있다.’는 같은 점을 내세워야 합니다. 명칭이 다를 뿐 중국에도 차문화가 있고 한국에도 차문화가 있습니다. 같은 것은 계속 서로 내세워서 우리가 문화를 같이 하는 이웃이라는 것을 자꾸 강조해야 되고. 조금 민감하고 조금 다르고 이견이 있는 것은 서로 수면에 떠오르게 할수록 불편해지니 이것은 가급적이면 내려놓자, 이 것이 중국에서 말하는 구동존이입니다. 같은 것은 자꾸 추구하고 다른 것은 내려놓는 이 것이 중국외교의 한 가지 지혜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한중간에도 같은 것은 계속 내세우고 다른 것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 됩니다. 한국에서든 중국에서든 제가 하는 강연에 가장 핵심주제는 화이부동과 구동존이입니다. ”

상호 이해의 증진은 더 활발한 교류를 이끌어 내고 활발한 교류는 문화와 민심의 진일보 상통,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추진하며 중국과 한국은 서로 돕고 손 잡고 함께 30년의 한 길을 걸어왔다.

김금철 중국중앙방송총국 서울 특파원은 한국에서 중한 간의 깊은 우정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음향 7, 김금철 기자 음성)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지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스포츠 관련 취재를 많이 했습니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기지인 태릉선수촌에도 여러 번 갔었고 마라톤의 전설 황영조 씨를 비롯한 스포츠 유명인물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우리가 만난 한국인들은 모두 베이징 하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미리 축원했습니다. 한국 선수단은 이해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 순위 7위를 해서 세계 스포츠 강국의 지위를 지켰습니다. 한국이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서 한국선수들이 빨리 경기 환경에 적응해서 메달을 많이 땄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또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이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자 한국 언론들은 중국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세계 최강국의 하나임을 잘 증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편 2008년에 또 인상에 남는 것은 중국 쓰촨 원촨 대지진에 대한 한국인들의 깊은 동정심이었습니다. 5월에 중국에 특대 지진이 나자 한국정부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모금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일례로 저의 지인이 당시 제주도 한 중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쳤는데 이 분의 말에 따르면 이 학교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행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원촨 지진 재해 복구에 힘쓰는 중국인들을 물심 양면으로 지원했습니다. 저희 기자들도 여기서 감동을 받고 관련 기사를 많이 작성했고 더욱 중요하게는 중국과 한국은 민간 차원에서도 감정적으로 연대성이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1992년 수교해서부터 올해까지30년 동안 중한 양국 국민들은 서로 도우면서 양국 관계도 발전시키고 각자의 발전도 이룩해왔다. 쉬바오캉 기자의 말처럼 “오늘날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고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것은 중한관계의 발전과 갈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2022년 올해 양국관계의 이립의 해를 맞이하는 중국과 한국, 30년간의 발전을 거쳐 중한 관계는 초반의 밀월을 거쳐 성숙기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중한 수교 30년은 향후 30년, 나아가서 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양국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다.

(간주)

중한 수교 30년 특별 기획 <삼십이립을 딛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미래로>의 상편 <삼십이립에 이르기까지>는 여기서 마치고 이어 하편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미래를 향해>가 이어집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