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5 13:39:01 출처:cri
편집:林凤海

[중한 수교 30년 특별 기획] 중국과 한국의 30년을 지켜보다-언론의 이야기

사회자(여): 안녕하십니까. 임봉해입니다.

사회자(남): 안녕하세요. 김민국입니다.

여: 오는 8월 24일은 중국과 한국이 수교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워낙 지리, 역사, 문화적으로 가까웠던 이웃 나라였기에 수교 이후 양국 관계는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죠. 양국은 1992년 수교 당시 구축한 ‘선린 우호관계’에서 급기야 1998년 ‘협력 동반자 관계’, 2003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그리고 2008년에 이르러서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전면 격상됐습니다.

남: 그렇습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중한   양국은 2015년 12월 중한 자유무역협정(FTA)를 발효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양국간 연간 교역 규모는 불과 30년 만에 50배 가까이 늘어난 3000억 달러(약 393조원)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이는 한미, 한일, 한국과 유럽의 무역을 합친   양에 근접합니다. 그리고 중한 양국의 상호 투자 규모도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인적 교류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 연 1000만명에 달했습니다.

여: 전 세계 그 어느 양국간 관계 발전에서도 볼 수 없는 사례인데요, 오늘은 김민국 기자도 그렇지만요, 현장에서 양국 관계 발전사를 직접 지켜보신 본 방송국 서울 특파원 두 분을 모시고 그들의   특파원 시절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남: 사실 중앙방송총국은 수교한 뒤 한국에 가장 일찍 주재 기자를 파견한 관영 언론 중의 하나였죠. 중앙방송총국 전신인 중국국제방송은 1996년 3월 서울에 지국을 설립했습니다. 그때부터 조선어 방송도 주재 기자를 파견하게 되었구요.

여: 김민국 씨도 서울 지국 특파원으로 파견 근무 다녀오셨죠.

남: 그렇습니다. 언론인으로서 너무나 소중한 기회이자 행운이었습니다. 서울 지국에는 장원천 선배님이 초대 주재 기자로 파견됐고, 그 뒤로 박명국, 김태근, 김동광, 김금철, 그리고 저와, 안광호, 김금철 기자 순으로 파견됐습니다.

여: 오늘은 이 가운데 두 분을 특별히 스튜디오에 모시고 특파원 시절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볼까 합니다. 먼저 우리 청취자 분들께서   많이 그리워 하셨던 목소리의 주인공입니다. 김태근 기자님 모셨습니다.

김태근 기자: 인사말씀

남: 계속해 김금철 기자님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김금철 기자: 인사말씀   

남: 한국에서 근무하시면서 양국간 발전변화의 모습을 직접 지켜보고 또 언론인의   입장에서 많은 좋은 기사와 방송을 통해 양국간 교류에 긍정적 에너지를 주입하셨죠.

여: 어느덧 양국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   순간에 함께 왔네요, 두 분의 특파원 시절 이야기를 통해 양국 발전 여정을 돌이켜 볼까 합니다.

김금철 기자님은 아직 현직이라 요즘도 방송을 통해 매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요. 김태근 기자님은 요즘 어떻게   보내십니까?

김태근 기자: 퇴직 후 한국 가서 중국언론 편집기자로 초빙되어 일 할 때는 퇴직이라는 생각   없이 그냥 특파기자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바삐 돌아 쳤는데 코로나로 귀국 한 후로는 우리 국제 방송사이트를 섭렵하고 톡톡 튀는 후배님들의   방송을 듣고 보며 함께 했던 그립던 그 시절 추억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남: 김태근 기자는 2002년 3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제3임 특파원으로 활약하셨습니다. 그때가 마침 양국 관계가 가장 활발할 때가 아니었나요?

김태근 기자: 네, 말씀대로 내가 3기 특파원으로 서울에서 일할 때는 중한 수교도 10주년이 되는 때라 양국   관계도 그렇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정부와 민간인의 내왕도 그렇고 한창 무르익고 성숙일로를 달릴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 그렇네요. 2002년에 파견됐으니 그때가   마침 양국 수교 10주년 즈음이었군요. 특파원들은 해외에서 주로 어떤 기사들을 다루나요?

김태근 기자: 내가 특파원으로 활약하던 때는 한국에 차 넘치는 것이 굵직굵직한 뉴스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두 기의 대통령의 집권을 목격하고 자본주의 민주의 꽃이라는 대선도 발로 뛰며 직접 취재하고 한일 월드컵, 부산아시안게임, 대구 유니버시아드 등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들이 줄을 잇고, 사회 사건사고 기사들, 이를테면 대구지하철 참사라던지 한국을 중국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좋은 기사를 위해 눈코 뜰 사이가 없던 나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중한간 교류도 전 방위적으로 활발이 진행되고 한국 영화 드라마 예술 공연이 중국 팬들의 환영을 받고 한국전자제품, 화장품들이 중국인들 특히 젊은 팬들의 열망의 대상의 되고 그런가 하면 저렴한 중국 농산품들이 한국인들의 식탁을 풍성하고 해주고 하이얼 등 중국 전자 제품이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고…서로가 중요한 무역대상국, 무역 파트너로 성장하는 발전의 나날들이었죠! 그야말로 중한 수교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방면의 교류로 공동 발전하는 윈윈의 좋은 효과를 이룩하는… 이웃나라에서 질투할 정도로 뜨거운 나날이 아니었나 싶네요.

남: 그때가 양국간 우호협력에서 가장 달콤했던 '허니문' 시절이 아니었나 싶네요. 김금철 기자는 서울 특파원으로 유일하게 두 번 파견되셨잖아요. 첫번째 임기가 2006년~2009년 사이였죠?

(사진설명: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현장)

김금철 기자: 그렇습니다.  2006년 여름에 갔다가 2009년 봄에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2년 9개 월 정도 한국에 체류하면서 한국의 이모저모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애썼고 또 나름대로 적지 않은 사건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런 기사들은 저희 방송과 중국 여러 뉴스 사이트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 돌이켜보면 처음 특파원으로 부임한 3년간 양국 정상 간 교류가 참 활발하게 진행되었더군요.

남: 2006년 노무현 한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석 달 후 2008년 8월, 당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여: 특히 그 당시 중한 관계에 또 한차례 업그레이드가 있었습니다. 바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전면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는데요. 그만큼 양국간의 모든 면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는 얘기가 되겠는데요. 엄청 바쁘셨겠어요?

김금철 기자: 이 기간 저희 한국 지국 기자들은 중한 양국 관계 발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들을 여러 번 접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2008년 당시 후진타오 주석의   한국 방문이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이 폐막하자마자 그 이튿날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날이 8월 26일이였습니다. 이처럼 중국 정부는 한국을 아주 중요시합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잘 치른 터라 한국에 도착한 후 주석은 유난히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중국 속담에 "人逢喜事精神爽"사람이 기쁜 일을 만나면 정신이 상쾌해진다는 말이 있지요. 후 주석이 공항에 도착해 직접 내외신 기자들을 만났는데 인터뷰 내내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후 주석은 자신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개척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후 주석은 또한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적극 지지해 준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시했습니다.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지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스포츠 관련 취재를   많이 했습니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기지인 태릉선수촌에도 여러 번 갔었고 마라톤의 전설 황영조 씨를 비롯한 스포츠 유명인물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우리가 만난 한국인들은   모두 베이징 하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미리 축원했습니다. 한국 선수단은 이해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 순위 7위를 해서 세계 스포츠 강국의 지위를 지켰습니다. 한국이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서 한국선수들이 빨리 경기 환경에 적응해서 메달을 많이 땄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또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이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자 한국 언론들은 중국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세계 최강국의 하나임을 잘 증명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하계올림픽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가 크게 변화하고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한편 2008년에 또 인상에 남는 것은 중국 쓰촨 원촨 대지진에 대한 한국인들의 깊은 동정심이였습니다. 5월에 중국에 특대 지진이 나자 한국정부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모금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일례로 저의 지인이 당시 제주도 한 중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쳤는데 이 분의 말에 따르면 이 학교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행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원촨 지진 재해 복구에 힘쓰는 중국인들을 물심 양면으로 지원했습니다. 저희 기자들도 여기서 감동을 받고 관련 기사를 많이 작성했고 더욱 중요하게는 중국과 한국은 민간 차원에서도 감정적으로 연대성이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3년 가까이 한국에서 기자로 있으면서 이 나라의 훌륭한 면들을 많이 보고 이해하도록 노력했고 또   이를 기사로 작성해 중국에 알렸습니다. 이 기간 한국 생활은 저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여: 김금철 기자의 2008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간 느낌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으로 전 국민이 들떠있었고 또 원촨 대지진으로 모두가 가슴 아파했죠. 한국의 모금행사 스토리는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네요. 김민국 씨는 한국 주재 기자기간 어떤 뉴스를 다루는 것이 가장 힘들었나요?

남: 여러 유형의 기사들을 다뤘었지만 그 중에서 아무래도 돌발 사건 사고와 중대한 정치 뉴스가 아니었나 싶어요. 돌발 사태는 예기할 수 없는 지라 여러 가지 사전 준비나 시간적으로 미처 대응하기 어려웠죠. 제가 주재한 기간에 중한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구축에 따른 후속적인 제도마련과 안정적인 실천 단계였죠. 그리고 남북은 유감스럽지만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 사태로 양자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시기였습니다. 한국 국내로는 제18대 대통령으로 한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구요. 개인적으로 가장 소중한 기억은 대구에서 치러진 제13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사나이로 꼽히는 우사인 볼트가 가까이에서 번개 세레머니를 하던 장면이었습니다. 아쉽게도 100m 경기에서는 부정 출발로 실격 처리됐지만 이어진 남자 200m와 400m 계주에서 우승하며 대회 2관왕에 올랐죠.

여: 당시 중국 육상의 간판 류샹 선수도 참가하지 않았나요?

남: 네, 맞습니다. 류샹은 그 대회 남자 110m 허들 결승전에서 아쉽게도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여: 김태근 기자님이 특파원 시절 그런 힘든 사건사고 현장을 여러 번 겪었잖아요.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기사는 어떤 것이었나요?

김태근 기자: 네, 서로의 관계가 뜨겁던 나날이라 정부 민간 사이의 내왕이 빈번하고 하루에 한국 공항에 착륙 이륙하는 중국 민항기도 10여편씩 되었는데 그 중   중국 민항기 조난사고를 여러분들도 기억하시죠? 그것이 내가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특파원 업무에도 아직 익숙치 못한 상황인데 엄청난 사고 기사에 대한 우리 방송 본부의 주문은 물론 국내 여러 언론사들에서 리포터로 요구해 오는 등 초긴장 상태에서 숨 바삐 분주히 뛰고 땀 흘리던 그 시절의 기자로서의 보람도 느끼고 후회도 남습니다.

남: 어떤 부분이 아쉬운 점으로 남았나요?

김태근 기자: 이를테면 국내에서는 전혀 해보지 않던 사건 사고 기사를 우리의 시각으로 기사를 작성하여 국내에 보내고 리포터로 전국민들에게 중국기자의 시각으로 좀더 확실한 뉴스를 전해야 하는 데…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

여: 김태근 기자는 방송 기자들만이 가능한 현장 취재, 이를테면 청취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데 참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걸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다년간 청취자의 벗 프로그램을 담당해서 더욱 애착이 가는 건가요? 청취자와의 교류행사도 조직했었죠.

김태근 기자: 특파원 시절, 한국의 열성 청취자들을 서울지사로 초대하여 좌담회를 가지고 녹음보도로 국내 본사에 보내고(이는 방송기자들만이 가능한 현장취재), 중국 항공사의 협찬을 받고   모범청취자들의 본사 방문을 조직하고 …

남: 우리 특파원들이 쓴 기사들은 본 방송뿐만 아니라 중국내 타방송사나 언론 매체에도 널리 이용되었죠. 

김태근 기자: 중국 여러 언론사에서 퍼가고 독자와 청취자들의 환영을 받은 기사로는 내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쭉 내려오며 한국 청와대 경호팀 무술사범으로 일해온 분을 취재한 기사를 (우리 방송에서는 나가지 않았음)중문으로 본사에 보냈는데 해방군보(인터넷 신문) 법제일보 신화사 등 여러 굵직굵직한 매체들에서 전재(转载)하여 독자들의 취미를 불러 일으키던 일,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되어 본과대학 졸업생들이 다시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업을 한다는 등의 작지만 사회현상을 보여 준 기사들은 중국의 여러 신문사들에서 많이 퍼간 기사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기사들의 사회 현상이 지금 중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잖나 싶기도 하네요.

여: 김금철 기자는 처음 서울 특파원으로 다녀 온 10년 후 다시 한국 특파원으로 부임되었죠. 

김금철 기자: 2017년부터 2021년 사이 다시 한번 다녀왔습니다.

남: 가장 최근에 한국 서울 지국 특파원으로 다녀오신 분입니다. 사실 첫 번째 부임 시기 못지않게 바쁘게 보내셨다면서요. 그리고 중요한 취재까지 배치되었죠.

김금철 기자: 2018년에 조미 정상회담 취재차로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에 갔었습니다. 조선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가 한국 대통령의 알선으로 세 번 정상회담을 가지고 서로 만나 반도평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비록 하노이에서 합의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조미간의 적극적인 상호 교류는 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고 동북아 안보 정세의 안정에도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도 한국과 조선, 조선과 미국의 관계 개선 노력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일례로 당시 조선 최고 지도자는 전용열차를 타고 중국 경내를 거쳐 하노이에 가서 미국 지도자를 만나 세계 여론의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주재하는 외신 기자들은 남북 교류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당시 2018년 2월 열린 한국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조선 정부가 교류를 재개했습니다. 조선선수단과 응원단, 공연단이 한국에 오면서 반도 남북 교류가 세인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평창올림픽을 취재하면서 감명 깊은 장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은 한국과 조선이 단일팀을 무어 출전했는데 남북의 관중들이 경기장에 함께 모여 자기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짙은 화합의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이는 또한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을 이끌었던 하나의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남북의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또한 평양에서 여러 번 회담을 가지면서 이산가족상봉 행사 재개를 비롯해 남북교류가 활성화되었는데 당시 수많은 한국인들은 이를 아주 반겼습니다. 일례로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담할 때 조선측이 평양에서 연회 음식으로 냉면을 가지고 왔는데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서울에 있는 평양냉면 식당들이 특수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서울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날 평양냉면을 즐기면서 남북 교류의 이슈들을 담론했습니다. 진심 어린 교류와 화해의 분위기는 언제나 환영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정부차원에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두 번 중국을 방문했고 한정 부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는 경제무역과 민간 교류 활성화로 이어졌습니다. 중한 양국 무역액은 3000억 달러를 넘겨 경제적으로 고도로 융합되었고 문화, 교육, 관광 등 분야의 교류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주재하면서 중국에 우호적인 수많은 한국인들을 만났고 또 이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하지요. 중국과 한국은 민간 차원에서 우의를 더욱 증진할 잠재력이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 어느덧 양국 수교 3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양국관계의 모든 발전 과정이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지 만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기회와 도전이 병존하는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 그렇습니다. 언론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두 분은 중한 양국의 미래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태근 기자: 한낱 방송기자로 퇴직한 사람으로서는 좀 거창한 물음인 것 같은데요. 언론인으로서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특파원들도 양국의 우호 발전에 유익한 좀더 긍정적인 기사들을 많이 다루어 국민들의 안목도 넓혀주고 언론의 계도적 역할도 충분히 해야 하지 않을 까 싶네요. 내가 퇴직 후에도 인민일보 (해외판)한국어판 기자로 10년간 일해 오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한국 사회에 더 밀착하고 하며 느낀 점이라면 한국과 중국은 이렇게 가까운 이웃인데 서로간 이해가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는 특파기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방송인들이 "세계에 중국을 알리고 세계에 세계를 알리"는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김금철 기자: 올해 한국의 새 정부가 탄생하면서 양국 관계 재 설정 등 이슈에 대해 여론의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저는 양국관계가 지금보다 퇴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30년을 통해 이제 양국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사이가 되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양국은 상호 보완성이 강합니다. 서로 고도로 융합된 경제관계를 하루 아침에 단절할 수는 없지요. 관계가 소원하게 되는 것은 양국의 국익에 도움이 안됩니다.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중한 양국은 응당 상대방이 추구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견이 생기면 재빨리 소통하면서 오해를 풀고 오판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만나고 교류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정부 차원의 교류 메커니즘이 활성화되어서 소통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양국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양국 국민간의 감정 등 이슈를 다룰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여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역지사지해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 그렇습니다. 언론은 결국 양국 관계의 메신저와 같죠, 양국민들이 서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가장 직접적인 플랫폼이 바로 우리 미디어가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양국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중국에 "국가간 관계 발전은 국민들의 우호 증진에 달려 있다(國之交在於民相親)”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양국민의 서로에 대한 이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언론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양국민들의 교류에 앞서 우리 양국 언론간 이해와 협력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여: 맞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중국과 한국의 언론이 앞장서 더욱 활발한 교류와 협력으로 양국 우호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중한 수교 30주년을 맞아 본 방송국 서울 특파원으로 부임하셨던 기자 두 분, 아니 김민국 기자까지 세 분과 함께 특파원 시절 기억에 남는 행사, 에피소드를 통해 양국 교류의 30년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남: 방송 말미에 중한 수교 30주년을 맞아 두 분의 덕담 한마디씩 들어보겠습니다.

김금철 기자: 영원히 이웃으로 살다 보면 간혹 가다 모순과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입니다. 서로 자주 만나 허심탄회하게 상대방의 생각을 들어보고 이해를 증진해야 할 것입니다. 당연히 상대방의 좋은 점은 치하하고 또 배워야 하겠지요.  양국 정부와 국민간에 이러한 상호 존중과 배려심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래 중한 관계에 낙관합니다.

김태근 기자: "이웃이 사촌"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국방, 외교 등 민감하고 거창한 문제를 해당 전문가들이 말씀할 일이고 다만 평생을 조선반도를 대상으로 일해온 언론인으로서 한마디 한다면 서로의 이념을 떠나서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가까운 이웃끼리 서로 많이 내왕하고 이해하고 다방면적인 교류를 하고 윈윈 발전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 언제나 그래왔듯이 김태근 기자님은 같은 말도 매우 구수하게 풀어내는 재주가 대단하군요. 두 분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여: 지금까지 중한 수교 30년 특별프로그램 <중한 관계 30년을 지켜보다> 본 방송국 서울 특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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