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황제릉의 일각)
제3회 도시의 출현
어두운 밤이 바야흐로 가고 새 날이 밝아오는 때, 조각달이 차가운 서쪽 하늘에 걸려 있는 이른 새벽, 동쪽 하늘에 어스름하게 밝은 빛이 스며 나올 즈음 황제는 고요한 대지를 바라보며 훈(埙)을 불었다. 질로 구워 만든 저울추 모양의 악기인 훈이 내는 은은한 낮은 소리는 멀리 울려 퍼졌다.
그 때는 탁록산 자락에 새로운 터전을 잡은 뒤였다. 황제는 반토굴 형식의 초가집을 지을 때 반드시 나란히 줄지어 짓고 집 앞에 수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도로를 내라고 지시했다.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삶의 터전을 바라보던 황제의 눈앞에 한 사람이 자신의 집 둘레에 토담을 쌓는 것이 보였다. 고요한 여명을 뚫고 나무 방망이로 흙을 다지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담을 쌓으면 문 앞의 도로가 좁아 질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 황제는 급한 걸음으로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초(草)야, 왜 문 앞에 담을 쌓는 것이냐?”
“뛰놀기를 좋아하는 저의 아들이 놀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그러면 강가에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 산의 아들이 강에 빠져 죽었습니다.”
초의 대답에 황제는 놀랐다.
“뭐? 산도 죽었는데 산의 아들이 또 죽었다구? 그럼 산의 아내는 어떡하냐?”
“담을 쌓으면 애도 나가지 않고 밤에 산짐승도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 안전할 듯싶습니다.”
초의 말에 황제가 말했다.
“너의 집 주변에 담을 쌓지 말아라.우리 담을 크게 쌓자. 적들이 쳐들어오면 담의 문을 닫으면 될 터이니 말이다.”
그 때 붉은 태양이 둥실 떠올라 대지를 환하게 비추고 황제도 온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는 곰 가죽으로 만든 윗옷을 벗어 들고 집으로 들어가 식탁에 앉았다. 아내 서릉씨가 챙겨주는 식사를 하면서도 황제는 여전히 골똘하게 뭔가 생각하고 있었다. 서릉씨가 걱정스레 물었다.
“뭘 생각하세요? 많이 드세요, 그래야 저녁까지 버티죠.”
그 때는 식량이 귀중한 때라 사람들은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니만 먹고 점심은 건너 뛰었다. 이른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저녁 식사까지 버티기 힘들 것 같다고 서릉씨가 황제를 걱정한 것이다.
“우리 마을에 담을 쌓아야 되겠는데 어디 가서 흙을 가져올지 생각하는 중이오.”
황제의 말에 서릉씨의 얼굴에도 시름이 어렸다.
“그렇게 긴 담을 쌓으려면 많은 흙이 필요할 텐데 그러면 곡식을 어디에 심겠어요?”
골똘히 생각하던 황제가 갑자기 머리를 탁 치며 밝은 얼굴로 말했다.
“현장에서 흙을 취해서 담을 쌓고 그 흙을 취한 구덩이는 그대로 두면 두 겹의 방어선을 만든 셈이니 더욱 안전하지 않겠소?”
“비가 와서 그 구덩이에 물이 차면 산짐승과 적군을 더 잘 막을 수 있겠어요.”
“당신이 더 주도면밀하군. 흙을 파낸 구덩이를 물길과 연결시켜야겠소. 그러면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비가 내려 넘치는 물은 강물에 흘러들 터이니 말이오.”
그날부터 황제는 부락의 청장년들을 데리고 담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중국 최초의 성곽도시 탁록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과 해자가 있는 이런 도시는 그 후의 5천년 동안 중국 도시의 건축모델이 되었으며 중국문명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00년대의 중화민국 때에 이르러서야 이런 성곽도시의 건설이 중지되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