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창힐의 석상)
제3회 다양한 조자법
총명한 창힐은 모친이 손으로 칼날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지사(指事)라는 새로운 조자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칼 도(刀)에 한 점을 더 그어 칼날 인(刃)자를 만들고 나무 목(木)자에 한 획을 더 해서 근본을 나타내는 본(本)자와 끝을 나타내는 말(末)자를 만들었다. 이 지사법에 근거해 창힐은 윗 상(上)자와 아래 하(下), 석 삼(三) 등 글자를 만들어냈다. 지사법에 의해 만든 글자가 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한적이었고 이런 글자는 단순한 상형문자가 아니라 추상적인 부분도 가지고 있었다.
황혼이 지자 온 하늘에 붉은 놀이 가득했다. 바위에 올라 앉아 하늘을 덮은 노을의 무궁한 변화를 바라보는 창힐의 생각도 붉은 노을처럼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우리 화족의 언어에서 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말이 너무 많다. 황혼의 붉은 놀도 하(霞)이고 익으면 붉어지는 새우도 하(蝦)이며 옥에 나 있는 붉은 티도 하(瑕)이니 말이다. 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이런 말은 모두 처음에는 붉은 색이 아니다가 후에 붉은 색으로 변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분류가 가능할까? ”
“한 글자를 만들고 그 글자에 다른 것을 추가해서 소리와 의미를 보여주면 독특한 글자를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 창힐은 흥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들 사이를 서성거렸다. “나무 목(木)자를 활용해 나무에 관한 다른 글자들을 만들어보자. ” 이렇게 마음을 먹은 창힐은 며칠 내에 복숭아 도(桃)자와 배 리(梨), 조롱나무 작(柞), 소나무 송(松)자 등 나무에 관한 많은 글자를 만들어 냈다.
창힐은 최초에 상형법으로 글자를 만들다가 후에는 지사법으로 만들었으며 그 뒤에는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합쳐 독특한 합체자(合體字)를 만드는 형성(形聲) 조자법을 발명했다. 통계에 의하면 이런 형성법에 의해 만든 한자는 전반 한자에서 80%이상을 차지한다.
좀 전에 창힐이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만들어낸 노을 하(霞)자와 새우 하(蝦), 허물 하(瑕) 등 글자들에서 공통적으로 음을 나타내는 하(叚)의 원래 의미는 빌린다는 것이었다. 구름도 원래는 붉은 색이 아니었는데 잠시 태양의 빛을 빌어 붉어졌고 새우도 원래는 다른 색이었는데 온도를 받아 붉어졌기 때문에 빌 하(叚)자를 공통 표음자로 사용한 것이다.
창힐은 많은 글자를 만들어 냈고 사유방식도 단순한 형상사유로부터 추상적인 사유로 발전했으나 그의 추구는 무한하였다. 하나를 알면 열을 배우고자 하는 창힐이 어느 날 높은 곳에 올라서서 눈으로는 저 멀리 경치를 구경했으나 머리 속에는 온통 글자뿐이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어 오는 것이 보였다. 창힐은 그 두 사람이 누구이고 어디로 뭘 하러 가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그 두 사람을 글자로 어떻게 나타낼지 하는 문제에만 골몰했다. 남자가 앞에서 걷고 그 뒤를 여자가 따르는 것을 골똘히 지켜보던 창힐이 갑자기 휘파람을 불었다.
창힐이 또 새로운 조자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는 두 개의 사람 인(人)자를 합쳐서 좇을 종(從)자를 만들어 냈다. 한 표음자와 한 표의자를 합쳐 한 글자를 만들 수 있는데 왜 두 개의 표의자를 가지고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내지 못한단 말인가? 하는 것이 창힐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붉은 태양이 잔디를 비추자 잔디는 온통 황금색으로 눈부셨다. 금가루를 뿌린 듯한 잔디를 바라보며 창힐은 이것 역시 태양에 의한 잠시적인 현상이고 곧 황혼이 도래할 것임을 알았다. 그러자 그의 머리 속에는 태양이 풀 속으로 사라지는 글자인 모(莫)자로 저물어가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두 개 이상의 독체자(獨體字)로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낸 창힐의 이 조자법을 후세 사람들은 회의(會意)법이라 귀납했다. 이런 조자법에 의하 창힐은 좋은 호(好)자와 집 가(家), 뾰족할 첨(尖) 밝을 고(杲) 처음 초(初) 등 많은 글자를 만들어 냈다.
후에 사람들은 창힐이 글자를 만들어 낸 과정으로부터 상형(象形)법과 지사(指事)법, 형성(形聲)법, 회의(會意)법 등 한자 창조의 네 가지 방법을 귀납했다. 그리고 이 중 제일 먼저 만들어진 독체자인 상형문자와 지사문자를 문(文)이라 부르고 합체자인 형성문자와 회의문자를 자(字)라 불렀다. 여기서 자(字)의 본의는 방에서 아들이 잉태됨을 말한다. 즉 형성문자와 회의문자는 상형문자와 지사문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글자의 선후 순서를 따지지 않고 문(文)과 자(字)를 나누지도 않고 통틀어서 문자(文字)라고 부른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