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서시의 석상)
제3회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다
부차는 서시를 품에 안고 벌써 깊이 잠들었다. 서시는 자신의 어깨를 감싼 부차의 큰 손을 살며시 옮겨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아 곁에 있는 이 남자를 조용해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부차의 짙은 눈썹만 보면 위풍 당당해 보이고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보면 또 마음 속으로부터 부드러움이 드러난다. 이 남자는 월나라의 철천지원수이다. 하지만 이 남자가 따스한 손길로 서시의 손을 잡고 산책하거나 긴 팔로 서시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달구경을 할 때면 또 그토록 따스하고 배려심이 넘쳐 서시는 이 남자를 사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서시는 다시 자리에 누워 부차의 팔을 베고 부차의 몸에서 풍기는 남자의 냄새를 맡았다. 서시의 마음은 부차에 취했지만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머리 속은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찼다…
입궐하던 그 날이 생각난다. 범려가 나와 정단을 데리고 오 왕을 만나 “미천한 신하인 구천이 대왕의 큰 은혜에 감지덕지하여 월나라를 다 뒤져 노래와 춤에 능한 절색의 두 미녀를 찾았습니다. 대왕께서 그녀들을 하녀로라도 부리시라고 제가 월 왕의 명으로 오늘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 오 왕이 나를 처음 보던 그 눈길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오 왕은 하늘에서 내린 선녀를 본 듯 나한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정신이 몽롱해서 “처음이다. 처음이야. 세상이 이런 요물이 있다니”라고 중얼거렸다.
오 왕의 눈길이 나의 얼굴에 꽂혀 떨어지지 않자 나는 마치 토끼를 품은 듯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마 얼굴도 붉어졌으리라. 오 왕이 혼잣말로“복사꽃이 예쁘다 한들 미인의 춘색만큼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겠는가”라고 말한 걸 봐서.
직언을 아끼지 않는 충성스러운 신하 오자서(伍子胥)가 무릎을 꿇고 울며 말했다. “소신이 듣건대, 하(夏)나라는 매희(妹喜)로 인해 멸망하고 은(殷)나라는 달기(妲己) 때문에 망했으며 서주(西周)는 포사(褒姒)로 인해 쇠락했다 들었습니다. 미녀는 망국의 화근입니다. 대왕께서는 절대 미녀를 받으시면 안 됩니다!”그러자 오 왕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색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오. 누가 미녀를 싫어하겠소? 상국, 상국은 설마 추녀를 좋아하시오? 상국 저택의 희첩도 예쁘더구만. 하지만 상국은 종래로 나에게 미녀를 상납한 적이 없소. 구천은 이런 절색의 미녀를 얻었음에도 자신에게 남기지 않고 과인에게 보냈으니 이는 그가 과인에게 충성한다는 증거요! 상국, 걱정 마시오!”
오자서는 과연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그는 또 이렇게 간언했다. “며칠 전에 구천이 거대한 녹나무를 진상한 걸 보고 소신은 그가 고양이가 쥐를 생각하듯 나쁜 심보를 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과거 하 나라 걸(桀) 왕은 영대(靈臺)를 축조하고 은 나라 주(紂)왕은 녹대(鹿臺)를 지어 국고를 소진함으로 결국 나라가 멸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구천이 녹나무 목재를 진상해 대왕께서 고소대(姑蘇臺)를 짓게 하고 오늘 또 미녀를 상납한 것은 그야말로 흑심을 가짐이 분명하니 대왕께서는 절대 이 꾀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하지만 오 왕은 끝까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몇 년간 부차는 나만 총애해 궁에만 있으면 하루도 나를 떠난 적이 없다. 그 바람에 정단이 마음의 병을 얻어 죽기에 이르렀고 나는 미안한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더욱 나를 불안하게 한 것은 부차가 나를 위해 거금을 쓰고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이다. 300장(丈, 1장은 3.3m임) 높이에 84장 너비의 고소대에 올라서서 저 멀리 바라보면 아름다운 경치가 한 눈에 안겨온다. 부차는 또 아홉 굽이의 회랑을 지어 관왜궁(館娃宮)을 연결하고 관왜궁의 앞에 큰 항아리를 깔고 그 위에 두터운 목판을 덮어 향리랑(响履廊)을 만들었다. 이런 공사로 인해 국고가 거덜나고 많은 백성들이 죽었다. 이런 축조물들은 모두 백성의 백골로 축조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 향리랑을 걸을 때마다 늘 “이는 오나라가 대대적으로 토목공사를 해서 국력과 국고를 소진하게 하려는 문종 대부의 네 번째 계책이다. 세 번째 계책과 네 번째 계책이 서로 어울려 잘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부차는 내 치마에 방울을 달고 나무신발을 신게 한 다음 그와 함께 향리랑을 산책하면서 나의 나무신발이 나무바닥을 밟을 때마다 울리는 소리가 내 몸에 달린 방울소리와 화음을 이루는 것을 듣기 좋아한다. 미색에 빠져 얼빠진 오 왕을 볼 때면 나는 “이는 세 번째 계책이다. 나는 너무 능력자야, 오 왕은 과연 내가 없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부차는 매일 고소대에서 가무를 감상한다. 내가 채색의 구름 같은 긴 옷소매를 날리면서 물 찬 제비처럼 춤을 추면 부차는 홀딱 반해서 박수를 치거나 몸소 검무를 추며 흥을 돋운다. 그는 이렇게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나와 함께 지내면서 고소대를 집으로 삼고 다시는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슬픔에 빠진다. 내가 매일 오 왕을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은 월나라를 위해서지만 나를 위해서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부차와 사랑에 빠진 듯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 있는 음식도 많이 먹으면 질리고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도 오래 보면 싫증이 난다. 서시가 남다른 능력이 없이 단순히 부용 같은 미모와 옥 같은 살결만 가졌더라면 부차가 13년을 하루 같이 서시 한 사람에게만 빠졌을까? 옛 시에도 “아름다운 자태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면(以色事他人) 좋은 시절 얼마나 갈 수 있으리오(能得畿時好)?”라고 했다. 서시는 양지옥(羊脂玉)과 같은 기질과 수묵화 같은 여백을 가졌기에 비범한 천진난만과 함축적인 완약(婉弱)으로 13년간 부차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으며 오 왕이 자아를 잃게 만들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