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7 10:12:48 출처:cri
편집:李仙玉

[주문왕 편-2] 하옥 그리고 <주역>


제2회 하옥 그리고 <주역>

나라가 망하려면 요괴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상(商)나라의 번영을 이룩한 무정(武丁) 왕이 가고 백 년 여가 지나자 상 나라에 폭군 주왕(紂王)이 나타났다. 젊고 힘이 장사인 주왕은 남아 도는 에너지를 나라를 다스리는데 쓴 것이 아니라 황음무도에 쏟았다. 그는 주지육림을 만들어 놓고 매일 후궁의 미녀들과 그 속에서 즐겼다.

그 때 구후(九侯)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어서 주왕의 후궁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밤낮으로 음란을 찾는 주왕이 싫어서 주왕을 피하기 위해 항상 반지를 착용했다. 당시 후궁이 반지를 착용하면 합방이 불가함을 말했다. 그 날도 주왕은 구후의 딸이 또 반지를 착용한 것을 보고 대로해서 구후와 딸의 목숨을 빼앗았다.

악후(顎侯)가 참다 못해 구후를 비호했다.

“이런 일을 어이 구후에게 책임을 묻는단 말입니까? 구후는 무고하다고 사료됩니다.”

“그의 딸이 죄를 범했는데 그가 어떻게 죄가 없단 말이냐? 구후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느니라.”

“우리는 희창을 배워야 합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의 죄만 물어야지 처자식은 무관합니다. 하물며 부모는 더욱 그러합니다.”

악후가 희창을 거론하자 주왕은 더욱 화가 났다. 나날이 성망이 높아지는 희창은 주왕의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주왕은 악후를 하옥시키고 앞으로는 누구든지 희창의 이름을 거론하면 즉시 목을 벨 것이라는 어명도 내렸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희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만 저었다. 하지만 주왕의 마음을 읽은 간신 숭후(崇侯)가 첩자를 통해 희창이 악후를 동정한다는 것을 알고 주왕을 찾아가서 희창을 모함했다.

“대역무도한 희창이 무도한 폭군이라고 대왕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희창을 벌할 빌미가 없어서 속을 앓던 주왕은 그 말을 듣자 이제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즉시 명령을 내렸다.

“희창을 유리(羑里)의 감방에 하옥시키라!”

유리 감옥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 감옥으로 오늘날 하남(河南)성 탕음(湯陰)현에 위치해 있다.

무고하게 투옥된 희창은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면서 긴긴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니라 팔괘연구에 몰두했다. 원래부터 신화에 나오는 복희씨(伏羲氏)의 선천팔괘(先天八卦)에 조예가 깊었던 희창은 팔괘가 바로 선인들의 지혜의 산물이고 상고시대의 현인들이 위로 하늘을 보고 아래로 지리를 연구하며 멀리 내다 보고 앞일을 예측하면서 중국의 음양(陰陽)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런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많은 연구를 하려고 작심했다. 마음이 정해지자 희창은 선천팔괘연구에 몰입해 후천(後天)팔괘를 만들었으며 팔괘로부터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8가지 기본물질을 이끌어내고 그로부터 무궁무진한 사물을 추단했다. 그 후 사람들은 인류 수학역사상의 이진법이 팔괘에서 가장 일찍 탄생했음을 증명했다.

희창은 8개의 경괘(經卦)를 서로 중첩, 배열시켜 64개의 중괘(重卦)를 구성함으로써 음양기화(陰陽氣化)의 원리를 포함한, 음과 양이 서로 사라지고 자라나며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희창이 펴낸 <역경(易經)>에 나오는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天行健),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스스로 강건하여 쉬지 않으며(君子以自强不息) 땅이 두터운 것처럼(地勢坤) 군자는 덕을 두텁게 쌓은 후 만물을 포용하라(君子以厚德載物)”는 정신은 오늘날도 중국인들의 영혼에 깊이 스며들었다.

주왕은 희창을 하옥시킨 후 그 일을 잊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숭후가 보고했다.

“희창의 장남 백읍고가 공물을 진상하러 와서 대왕을 뵙고자 합니다.”

그제서야 주왕은 유리의 감방에 갇혀 있는 희창을 기억하고 물었다.

“희창이 감방에서 지낸 지 몇 년이 되는데 뭘 하고 있느냐?”

“옥중에서 복희씨의 팔괘를 연구하고 있는데 사람의 화복(禍福)과 음양(陰陽)을 알며 사람의 생사(生死)도 예측한다 들었습니다. ”

그 말에 주왕은 대로해서 말했다.

“백읍고에게 능지형을 내리고 그 고기로 떡을 만들어 희창에게 가져다 주라. 생사를 예측한다는 그가 아들의 고기를 알아보는지 보게 말이다.”

희창이 옥중에서 우주와 삶의 이치를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고 곧 이어 숭후가 와서 주왕의 어지를 전했다.

“대왕께서 고기 떡을 하사했으니 맛을 보라.”

그 고기 떡을 한 입 맛 보는 순간 희창은 갑자기 구역질이 나서 한 모금도 삼킬 수가 없었다. 그러자 숭후가 말했다.

“대왕께서 내리신 진미이다. 더 맛을 보라! 먹지 않으면 대왕에 항명하는 것이다.”

희창은 억지로 참고 떡을 다 먹었다. 그러자 숭후는 흉물스러운 웃음을 띄고 말했다.

“성인도 아들의 고기를 먹는가? 네가 금방 먹은 것이 백읍고인줄 모르는가? 성인은 무슨? 뭐 생사를 예측한다고? 말뿐이로군.”

아들이 죽은 것을 안 희창은 놀람과 슬픔으로 먹었던 떡을 깡그리 토해내고 담즙과 심혈도 모두 토해낸 다음 그 앞에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기산 기슭 주원(周原)의 여러 현인들이 희창을 구하기 위해 산의생을 시켜 주왕에게 공물을 진상하게 했다. 주왕은 산의생이 진상한 미녀와 보물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크게 기뻤다. 이 때 숭후가 와서 보고했다.

“희창이 백읍고의 고기로 만든 떡을 다 먹었습니다.”

“희창이 성인이라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찌 아들의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이냐? 이런 폐인을 가두어둔들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그를 풀어주어라.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과인에게 많은 공물을 진상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거라!”

주왕은 희창이 7년이나 감방에 갇혀 있었으니 아무리 야망이 있다 한들 거의 다 소진되었을 것이고 또 곧 죽을 나이이니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주왕은 희창을 다시 주원으로 돌려보내면 민심을 다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왕이 희창의 아들을 죽인 것으로 인해 제후국들의 두령들이 불만을 표시했기 때문이었다.

희창은 살아서 주원으로 돌아갔다. 

그 해 희창은 90살의 고령이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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