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강태공)
최초의 모략가 강태공
예의로 현인을 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주문왕(周文王) 희창(姬昌)은 몸소 강태공(姜太公)을 영접하러 갔고 몸소 강태공의 가마를 잡고 8백보를 걸어서 산을 내렸다. 그로부터 정치와 군사의 걸출한 모략가 강태공은 8백 년간 존속한 주 왕조를 보좌하기 시작했다.
목야전쟁(牧野之戰)에서 강태공은 판사처럼 주왕(紂王)의 10대 죄목을 조목조목 밝히면서 주왕을 꾸짖었다. 그로써 상(商)나라 군대는 대패하고 주왕은 자신이 향락을 누리던 호화궁전 녹대(鹿臺)의 불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강태공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군사가이자 모략가이다. 유가(儒家)와 도가(道家), 법가(法家), 병가(兵家), 종횡가(縱橫家)가로부터 모두 종사(宗師)로 인정 받는 강태공은 백가(百家)의 종사라고도 불린다.
중국 최초의 모략가 강태공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하산
아늑한 산중에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흘렀다. 시냇물은 산 봉우리를 안고 계곡을 흐르다가 바위를 만나면 폭포로 변해 자욱한 물보라를 만들기도 했다. 하남(河南) 급(汲)현의 서북쪽을 흐르는 이 시냇물은 위수(渭水)의 지천인 번계(磻溪)이다.
이 번계의 물가에서 백발에 홍안을 한 노옹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낚싯대는 길고 낚싯줄은 짧은데 곧은 낚싯바늘이 물 위에 떠 있었다. 갈구리 모양이 아닌 곧은 낚싯바늘로 낚시를 한다는 것도 기이했지만 청산을 마주 하고 녹수를 뒤에 둔 그의 모습은 더욱 감탄을 자아냈다.
그 때 노옹의 사색은 멀고 높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는 염황(炎黃)의 자손이다. 우(禹) 임금을 도와 물을 다스린 백익(伯益)의 36대 자손이란 말이지. 하지만 가문이 몰락하는 바람에 빈자가 되어 조가(朝歌)성에서 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 해 조가성에 가뭄이 들어 전국적으로 재계하고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면서 도살과 음주를 금했다. 병법을 연구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를 탐구하는 내가 언제 관가의 고지서를 본단 말인가. 그 날 소를 잡아 팔다가 법을 어겨 소와 양을 모두 빼앗기고 하는 수 없어 맹진(孟津)에 가서 술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운수가 나쁘고 백성들이 생활고에 허덕여 술을 사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 바람에 아내도 집을 나가 버리고 생계가 막막하게 되었다. 성품이 어질고 노인을 존경하는 희창(姬昌)을 생각하고 고향인 급현으로 돌아와 양로식량을 받으며 번계에 은둔해 저서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
“그 날 시냇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우연하게 사냥을 나온 희창을 만났다. 희창은 ‘유리(羑里)에서 이별한지 5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선생의 가르침대로 상 나라의 세력을 약화시켜 여러 융(戎)족을 멸하고 수밀(須密)과 여(黎) 나라, 간(刊) 나라를 합병했습니다. 지금은 상 나라를 멸한 대계를 논할 때라 선생의 모략이 필요합니다. 오늘 사냥을 빌미로 특별히 선생을 모시러 왔습니다’라고 말했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지. ‘그 때 유리에서 만났을 때 주군(周君)을 보좌하지 못한 것은 상 나라를 멸할 시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주군을 따라 산을 내려 큰 일을 도모할 때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출신이 미천하고 무공도 세우지 못한 나를 사람들이 믿어주겠습니까?’ 그랬더니 희창은 ‘저는 선생을 태사(太師)로 모시겠습니다. 모든 군사를 선생께서 지휘하게 되는데 누가 감히 불복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지. 그래서 나는 ‘바로 주군께서 저 자아(子牙)를 중용하려 하시니 사람들이 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겠습니다. 주군은 상 나라 무정(武丁)’왕이 노예 부설(傅說)을 재상으로 등용한 스토리를 아시는지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희창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이렇게 말했다. ‘무정 왕이 낮잠을 자다가 하늘을 나는 곰을 보는 꿈을 꾸고 나서 선인의 가르침으로 공사장에서 부설을 찾았지요. 무정 왕이 꿈을 꾸는데 저라고 꿈을 꾸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오늘 돌아가면 저녁에 바로 하늘을 나는 곰을 보는 꿈을 꾸고 산의생(散宜生)에게 해몽을 하라고 하면 결론이 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 꿈의 길조에 따라 세상 밖의 이인을 찾기 위해 산에 오를 것이고 그 때 선생을 태사로 모시면 누가 감히 불복하겠습니까?’…”
강태공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는데 숲이 설레고 떠들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창이 온 것임을 안 강태공은 급히 몸을 돌려 시냇물을 마주하고 낚시에 집중하는 척 했다. 이 때 희창이 급히 가마를 세우고 선물을 초가집에 들이게 한 다음 조용히 강태공의 뒤에 와 섰다. 강태공이 발자국 소리를 듣고 급히 일어나 몸을 돌리고 읍하며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광림하신 줄 모르고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희창이 급히 강태공을 부축하며 밝은 얼굴로 말했다.
“선군께서 성인이 주 나라에 이르면 주 나라가 흥성하리라 예언하셨습니다. 선생께서 바로 그 성인이시지요?”
“저의 성은 강(姜)씨이고 이름은 상(尙), 자는 자아(子牙), 호는 비웅(飛熊)이며 산중의 한가한 사람입니다. 어찌 성인인척 하겠습니까?”
그 말에 산의생이 높은 목소리로 희창을 향해 말했다.
“감축드립니다! 이 분의 호가 비웅이니 바로 하늘을 나는 곰이 주군의 꿈에 나타난 길조와 맞습니다. 오늘 주군께서 자아를 만난 것은 탕(湯)왕이 이윤(伊尹)을 만나고 무정 왕이 부설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이로써 주 나라는 번성일로를 달릴 것입니다.”
희창의 부축으로 초가집에 들어선 강태공은 집안에 가득한 선물을 보고 입을 열었다.
“과찬이십니다. 제 나이 올해 일흔 하고도 둘, 고령이라 아마도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희창이 곧 말을 이었다.
“뜻만 있으면 나이는 관계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문무를 겸한 귀재이십니다. 오늘 특별히 모시러 왔으니 사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군의 지우지은(知遇之恩)을 받았으니 이 몸 어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 하지 않겠습니까?”
강태공이 수락한 것을 보자 희창은 기쁜 심정으로 가마에 올라 산을 내리자고 말했으나 강태공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산의생이 입을 열었다.
“선생께서 가마에 오르지 않으면 천리마를 타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희창이 산의생의 제언을 단 마디로 잘랐다.
“안 될 말이네. 선생께서 가마에 오르셔야 내가 안심하고 말을 탈 수 있네.”
강태공은 하는 수 없이 가마에 올랐다. 그런데 희창은 말을 탄 것이 아니라 몸소 손으로 강태공이 탄 가마를 잡고 걸어서 산을 내리는 것이었다.
후에 사람들은 희창이 예의를 지켜 몸소 가마를 잡고 걸어서 산을 내렸는데 그 발자국이 8백보에 달했기에 후에 강태공이 주 나라 왕실을 보좌해서 주 왕조가 8백 년 동안 존속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물론 사람들의 추론이지만 주문왕 희창이 현인을 찾아 몸소 산에 올라 강태공을 중용한 것은 사실이며 군주와 신하간의 이 이 미담은 지난 3천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주 나라의 군주 희창이 강태공을 정중하게 예우하자 주 나라에서 강태공에게 불복하는 사람이 없었다. 희창이 강태공을 태사로 모시고 강태공이 편지 한 통으로 숭(崇) 나라 숭흑호(崇黑虎)의 책동을 이끌어 내고 주왕의 총신 숭후(崇侯)를 주살했으며 숭성(崇城)을 탈취하자 강태공의 성망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