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주공단의 무덤 일각)
예악의 창시자 주공 단
희단(姬旦)이라고도 하는 주공 단(周公旦)이 제정한 예악(禮樂)은 아주 풍부해 왕실과 귀족의 다양한 의례에서 서로 다른 무악(舞樂)을 사용했으며 무악의 규모와 인원수는 관리의 서열과 일치했다. 예의를 숭상하는 이런 예법은 심원한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을 예의지국으로 부상하게 했다.
손님이 오면 입안에서 씹던 것을 뱉고 손님을 맞이하러 나온 주공에게 천하의 민심이 쏠렸다는 의미의 “주공포토(周公吐哺), 천하귀심(天下歸心)”은 조조(曹操)의 시이며 이 시에서 말하는 주공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주공 단이다. 조조는 주공 단의 예의에 매료되어 두터운 팬심을 가진 그의 팬이 된 것이다.
주공 단은 주문왕(周文王)을 도와 주 나라를 발전시키고 주무왕(周武王)을 보좌해서 상(商) 나라를 멸했으며 주성왕(周成王)을 도와 주 왕조의 근간을 다졌다. 그럼에도 주공 단 최고의 공적은 예악제도의 제정이다. 주공 단은 중국 예의(禮儀) 문명의 창시자이다.
중국 예악의 창시자 주공 단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어진 섭정왕
주왕(紂王)이 분신하고 상(商) 나라가 멸망했으며 포로로 잡힌 상 나라 사람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무왕(武王)이 강태공(姜太公)에게 물었다.
“이렇게 많은 포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좋아하면 다 예뻐 보이지만 그 반대면 전혀 예쁘게 보이지 않기 마련입니다. 마을의 울타리와 담을 모두 남겨둘 필요가 없습니다. ”
“네? 모두 죽여야 합니까? ”
무왕은 마음이 약해졌다. 그 때 소공(召公)이 입을 열었다.
“죄가 있는 자는 죽이고 죄가 없는 자는 남겨둡시다.”
무왕은 머리를 돌려 넷째 동생은 주공 단을 쳐다보았다. 주공 단이 말했다.
“이들이 원래의 집에서 살고 원래의 땅을 부치도록 합시다. 우리는 상 나라 사람들을 잘 대해주어 그들 중의 명망이 높은 사람들이 주 왕조를 지지하게 해야 합니다. ”
그 말에 무왕이 이상해서 되물었다.
“상 나라 토벌 대군이 우두산(牛頭山)에 이르렀을 때 광풍에 군기가 부러지고 바위가 굴러내려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 때 자네는 천지가 노하는 것은 우리에게 폭군을 벌하고 상 나라를 멸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몸소 군기를 높이 들고 앞장서서 나가지 않았나. 그 때 자네와 상부(尙夫)께서 같은 생각으로 함께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켰기에 토벌대군이 계속 전진할 수 있었고 끝내 상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았는가. 이제 상 나라가 멸망하고 우리에게 더는 강적이 없는데 오히려 상 나라 사람들을 잘 대해주라고? 그 이유가 무엇인가?”
“주왕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반드시 상 나라 사람들을 잘 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 상 나라의 귀족들을 석방하고 상용(商容)의 생가와 필간(筆干)의 무덤을 수선하며 녹대(鹿臺)의 재물을 나누어주고 창고를 열어 상 나라 사람들을 구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우리는 주왕과 정반대되는 어진 군주임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주공 단의 그 말에 무왕은 탄복해서 이번에는 상부인 강태공의 말을 따르지 않고 넷째 동생인 주공 단의 말을 들었다.
주 왕조 건국 후 무왕은 주공 단을 노(魯) 나라 제후로 봉했지만 그에게 상경(上卿)직을 내리고 호경(鎬京)에 남겨 자신을 보좌하게 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자 무왕이 위독하게 되었다. 임종에 앞서 무왕이 동생 주공 단을 불렀다.
“천하가 금방 정해졌는데 태자는 나이가 어리니 형종제급(兄終弟及)이 좋겠네. 아우, 자네가 보위를 이어 받게.”
주공 단은 무왕의 제언을 단호하게 거절하며 무왕 대신 자신을 죽게 해달라고 재계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무왕은 끝내 붕어했다. 주공 단은 무왕의 제언대로 자신이 보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어린 태자 송(誦)을 보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바로 사서에 일컫는 주성왕(周成王)이다. 그리고 주공 단은 섭정을 통해 어린 왕을 보좌하며 주 왕조의 정권을 다져나갔다.
후에 산서(山西)의 당(唐) 나라에서 난이 일어나 주공 단이 몸소 출정해 난을 평정했다. 하지만 조정에 돌아오니 태사(太史) 윤일(尹佚)이 성왕이 어린 동생 숙우(叔虞)와 소꿉놀이를 하다가 오동 나뭇잎을 규(珪)로 삼아 숙우에게 주며 당 나라 땅을 내린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주공 단은 이 일이 태사에 의해 기록된 것을 알고 작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급히 입궐해 축하했다. 성왕이 말했다.
“숙우하고 장난으로 말한 것이니 왕숙께서는 괘념치 마시오.”
그 말에 주공 단이 정색했다.
“천자에게는 장난이 없습니다. 천자는 반드시 말한 대로 행해야 합니다. 기왕 숙우에게 당 나라 땅을 준다고 하셨으니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
성왕은 그제서야 천자가 되면 어린이들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고 장난도 칠 수 없으며 심지어 소꿉놀이도 진지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성왕은 하는 수 없이 당 나라 땅을 숙우에게 주었고 따라서 숙우는 당숙우가 되었다.
한편, 성왕의 셋째 숙부 관숙(管叔)은 관(管)의 땅을 받았는데 주공 단이 섭정하는 것을 질투해 “주공 단이 어린 성왕의 보위를 빼앗으려 한다”는 요언을 퍼뜨렸다. 부친과 형이 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한 것을 직접 보아온 주공 단은 자신의 명성이 더럽혀지는 것은 개의치 않으나 주 나라가 왕족의 내란으로 무너질 것을 우려해 큰 압력을 받으며 여전히 어린 성왕을 보좌했다.
셋째인 관숙은 둘째 형이 붕어하고 동생인 자신이 그 보위를 물려받지 못하자 딴 마음을 품었다. 그는 암암리에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과 결탁하고 자신의 다섯 째 동생인 채숙(蔡叔)과 손 잡고 난을 일으켰다. 그 소식을 들은 동해의 여러 제후국들이 분분히 주 조정에 반대해 나섰다. 갓 건국한 주 왕조가 거센 바람에 흔들렸다. 제(齊) 나라 제후로 봉해진 강태공이 전갈을 보내왔다.
“애초에 무경을 남겨두지 말아야 했고 더욱이 그를 제후로 봉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제 이런 난이 유발됐으니 절대 약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난을 일으킨 두목들은 왕족이든 상 나라 사람이든 동이(東夷)든 모두 목숨을 거두어 후환을 제거해야 합니다.”
주공 단은 마음이 무거웠으나 강태공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강태공이 천하의 군사 귀재임을 알고 있던 주공 단은 이 때가 바로 그의 군사적 재능을 활용할 때라고 판단해 성왕에게 말했다.
“빨리 제 나라 제후에게 특권을 하사하십시오. 그러면 그가 조정의 절반 강산을 지킬 것입니다.”
주 나라의 천자(天子)로부터 토벌특권을 하사 받은 강태공은 자신의 군사적 재능을 남김 없이 발휘해 동쪽 제후국들의 굴복을 받아냈다. 강태공은 주 왕조에 항거하려는 동쪽 제후국들의 후환을 제거해 주 나라의 안정에 큰 기여를 했으며 이와 동시에 제 나라 자체도 많이 강대해졌다.
이와 동시에 주공 단도 몸소 군대를 거느리고 동정(東征)해 반군 평정에 나섰다. 주공 단은 3년 간의 치열한 전쟁을 거쳐 동정의 승리를 거두어 관숙과 무경에게 사형을 내리고 채숙에게는 유배형을 내렸다. 이번에도 주공 단은 차마 모든 상 나라 사람과 이(夷)인들을 멸하지 못했다. 그는 “반군의 두령은 다 제거했고 협박에 의해 그들을 따른 사람들의 목숨까지 빼앗는 것은 그들에게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주공 단은 이런 결정을 내렸다.
“반란에 참가하지 않은 상 나라 사람들을 경기(京畿)에 집중시키고 강숙(康叔)에게 위(衛)의 땅을 내림으로써 외곽에서 상 나라 사람들을 감시하게 한다. 주왕의 서출 형인 미사(微子)에게 송(宋)의 땅을 내려 상 나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다. 동이의 부락은 교화를 시켜 동해국(東海國)을 세우게 한다. ”
이로써 주 왕조의 세력범위는 남방에까지 확대되었다. 하지만 주공 단은 여전히 어진 품성으로 상 나라와 동이의 인종을 멸하지 않았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