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1 16:22:44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유방 편: 제4회 죽어서 혼백이 고향으로 가다

(사진설명: 유방의 동상)

유방은 태자의 신변에 상산사호(商山四皓)가 있는 것을 보고 태자의 날개가 이미 굳어 그를 교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 속으로 척희의 내일을 걱정했다.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는 척희를 보고 유방이 말했다.

슬퍼하지 마시오. 아마도 운명인가 보오. 과거에 누군가 여치의 팔자가 아주 좋다고 말했소. 아마도 그녀는 황후가 될 운명도 가지고 있고 태후(太后)의 운명도 가지고 있는가 보오. 후에 여치를 더욱 공경하게 대하고 조심하면 될 것이오. 그만 하고 우리 기분 전환을 합시다. ()나라 춤을 추시오. 내가 초나라 노래를 부를 테니.”

유방은 말을 마치자 <홍곡가(鵠歌)> 즉흥적으로 지어 불렀다.

고니새 높이 날아 한 번에 천 리를 가고(鴻鵠高飛,, 一擧千里)

날개 짓을 하여 사해를 쏜살같이 나는구나(羽翮已就, 橫絶四海)

사해를 쏜살같이 나니 어찌하리오(橫絶四海, 當可奈何)

화살이 있다 해도 어찌 쏠 수 있으리오(雖有矰繳, 尙安所施)

격앙된 노랫소리는 슬프게 울렸고 유방은 연이어 여러 번 반복해 노래를 불렀다.

긴 옷소매를 날리며 춤을 추는 척희는 춤을 출수록 슬픔이 차올라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그 바람에 유방의 마음도 슬픔으로 차올라 차마 더는 척희의 슬픈 모습을 볼 수 없어 자리를 떠나버렸다. 유방은 마음 속으로 척희에게 너무 미안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소망 하나 들어주지 못하는 내가 무슨 황제인가!”

마음에도 피가 흐르고 상처에서도 피가 흘러 그날 밤 유방은 발열과 오한을 반복하며 헛소리까지 했다. 여후가 급히 명의를 찾아 와 의사가 유방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새롭게 싸맸다. 그러자 유방이 정신을 차리고 의사에게 물었다.

이 상처가 아물 수 있소?”

아물 수 있습니다.”

의사의 대답에 유방은 아물 수 있다는 그 말 밑에 아물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느껴 갑자기 욕설을 퍼부었다.

짐은 벼슬도 없는 선비의 신분으로 보검 하나를 가지고 천하를 얻었다. 이것이 천명이 아니라는 말이냐? 의사는 병만 치료하지 명은 치료하지 못한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으니 갈 때가 되면 편작(扁鵲)이 온다 해도 붙잡지 못할 것이 아니겠느냐?”

말을 마친 유방은 상처에 바른 약을 떼어 던지며 말했다.

더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유방이 명의를 쫓아낸 후 여후는 유방이 죽기 전에 잠깐 정신이 맑아진 것이라 여기고 급히 후사를 준비하라고 주변에 분부했다. 그리고 유방에게 물었다.

폐하께서 붕어하신 후 소 승상이 죽으면 누구를 승상으로 하시겠습니까?”

조참(曺參)을 시키오.”

조참의 후에는요?”

왕릉(王陵)이 괜찮소. 하지만 왕릉이 다소 고지식하니 진평(陳平)더러 보필하게 하오. 진평은 지모가 뛰어나나 너무 총명해서 오히려 큰 일은 맡지 못하고 보필 역할만 할 수 있소. 주발(周勃)은 비록 말주변은 없으나 충성스럽고 성격이 온화하오. 후에 유씨 강산을 안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주발이니 그를 태위(太蔚)로 시키시오.”

여후가 또 물었다.

그럼 주발의 뒤에는요?”

여후의 그 물음에 유방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후의 일은 당신이 알 수 없을 것이오.”

유방은 고조(高祖) 12년에 붕어했으나 여후는 나흘이 지나도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여후는 자신의 애인인 심이기(審食其)와 의논했다.

여러 장수들은 모두 폐하와 같은 서민들이고 폐하와 함께 천하를 다투었어요. 지금 그들은 북쪽의 땅을 차지한 신하들이라 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이제 젊은 새 황제를 모시면 더 인정하지 않을거예요. 그들을 전부 멸하지 않으면 아마 천하가 평안하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궁에서 하는 말을 누군가 듣고 급히 역상(酈商) 장군에게 전했다. 역 장군은 심이기를 찾아가 말했다.

폐하께서 붕어하셨는데 나흘이 지나도록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여후는 또 여러 장군들을 모두 제거하려 하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천하가 위험해 질 것입니다. 진평과 관영(灌嬰)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형양(滎陽)을 지키고 번쾌(樊噲)와 주발이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연()나라와 대()나라를 위로하고 있는데 그들이 만약 폐하께서 붕어하시고 여러 장군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연합해서 관중을 공격할 것입니다. 대신들이 안에서 역모를 일으키고 제후들이 밖에서 반역하면 한 나라는 금방 멸망할 것입니다.”

심이기가 급히 그 말을 여후에게 전하자 여후는 그제서야 유방의 장례를 치르고 전국적으로 대사령을 내렸다.

신하들은 분분히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미천한 신분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고 천하를 평정하셨으므로 한태조라고 해야 합니다. 폐하의 공이 가장 크십니다.”

그렇게 유방의 존호(尊號)는 고황제(高皇帝), 묘호(廟號)는 태조로 지었다. 태자가 유방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효혜제(孝惠帝)이다.

신하들은 한고조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생각해서 패궁을 유방의 원묘(原廟)로 정하고 과거 유방과 함께 <대풍가>를 불렀던 120명의 젊은 악사들을 불러 매일 고조원묘에서 악기를 타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유방의 혼백이 있다면 고향에 돌아가 그때처럼 함께 <태풍가>를 부르고 있을 것인가?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