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재상과 강직한 사관
강주에 돌아온 조순은 도원으로 직행했다. 문무백관은 벌써 도원에 모여 있었다. 조순은 영공의 시신에 쓰러져 슬프게 울었다. 부득이함과 절망이 깔려 있는 조순의 울음소리는 마치 우리에 갇힌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조순은 대신들의 만류로 울음을 멈추고 분부했다.
“선 대왕의 장려를 치릅시다.”
대부 사회(士會)가 말했다.
“나라에 하루라도 군주가 없으면 안 되니 신 대왕을 빨리 정하셔야 합니다.”
“양공께서 승하하실 때 저는 노숙한 군주를 주장했습니다. 후에 양공에게 십대의 아들이 있고 아들이 부친의 보위를 이어 받는 것이 적절하다고 해서 오늘의 비극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조순의 말에 사회가 말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노숙한 군주는 나라의 복입니다.”
“문공(文公)에게 흑둔(黑臀)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이미 성인이고 그의 모친은 주(周) 왕실의 여식입니다. 현재 흑둔은 주 나라 왕실에서 벼슬을 하고 있습니다. 흑둔을 새 대왕으로 옹립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조순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조순은 군주를 시해한 조천의 죄를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그를 주 왕실에 보내 흑둔을 모셔오게 했다.
흑둔이 영공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진성공(晉成公)이다. 성공은 즉위 후 국정을 조순에게 맡기고 자신의 딸을 조삭에서 시집을 보내 장희(庄姬)라 칭했다.
조천이 몰래 조순에게 말했다.
“도안가는 영공의 일로 우리 조씨에 큰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후환이 엄청날 것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조순이 조천을 노려보았다.
“도안가가 너의 죄를 묻지 않는데 네가 오히려 그를 제거하겠다니? 우리 조씨 가문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지 그들과 원한을 맺어서는 안 되느니라!”
조순의 말에 조천은 하는 수 없이 도안가 제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조순은 일인지하의 막강한 권력을 누림에도 늘 마음이 불안하고 도원의 일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느 날 조순은 혼자 거닐다가 사관(史官) 동호가 역사를 기술하는 것을 보고 어떤 일을 기록했는지 싶어서 임의로 죽간(竹簡)을 집어 들었다. 죽간에 씌어진 문자를 본 조순은 기절초풍해서 죽간을 떨어뜨렸다. 죽간에 “을축년 가을 조순이 도원에서 군주를 시해했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조순은 죽간을 집어 들며 미동도 하지 않는 동호에게 말했다.
“태사, 조천을 나라고 이름을 잘못 적었소.”
동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잘못 쓰지 않았습니다. 상국께서 군주를 시해한 것이 맞습니다.”
“그 때 나는 강성에서 2백리가 넘는 하동(河東)으로 피신했는데 내가 어떻게 조천이 군주를 시해한 일을 알 수 있었겠소? 군주 시해라는 이런 큰 죄를 나에게 뒤집어 씌우다니? 어떻게 이렇게 나를 모함할 수 있소? 나는 이런 대역무도한 죄를 감수할 수 없소.”
동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당당하게 대답했다.
“상국께서는 재상이신데 외국으로 도주한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니 조천이 군주를 시해하고 상국께서 후사를 처리하도록 두 사람이 모의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태사 당신의 추측이오. 나는 조천의 공모자가 아니오. 진(秦) 나라로 도주하는 중에 조천을 만났는데 그가 대왕을 설득하겠다고 말해서 기다렸던 것 뿐이오.”
“하지만 조천은 대왕을 만나자 그를 시해했습니다. 그리고 상국께서는 강성에 돌아온 후 군주를 시해한 살인범의 죄를 묻지 않고 오히려 그를 보내 새 대왕을 모셔오게 했습니다. 이래도 상국께서 군주 시해의 주범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말문이 막힌 조순은 한 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물었다.
“태사, 이 죽간을 고쳐 쓸 수 있소?”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사(信史)입니다. 상국께서 저의 머리를 베더라도 이 죽간은 절대 고쳐 쓰지 않을 것입니다!”
조순은 한 동안 말이 없다가 한탄했다.
“아, 사관의 권력이 재상보다 크구나! 그 때 외국으로 도망갈 걸. 너무 후회되는구나. 역사에 길이 악명을 남기겠구나.”
조순은 죽간을 동호에게 돌려주고 의기소침해서 자리를 떴다.
그날부터 조순은 조정의 일을 처리하면서 더욱 공경하는 마음으로 신중을 기했다. 이 때 자신의 공이 크다고 여긴 조천이 조순을 찾아왔다.
“저에게 정2품 벼슬을 주십시오! 제가 없었더라면 숙부께서는 상국으로 계시기는 고사하고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숙부네 부자 4명은 모두 벼슬을 받고 대왕과 사돈까지 맺고, 혜택을 독차지했군요.”
조순이 화난 어조로 말했다.
“너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무섭지 않느냐? 너 때문에 나는 망했다. 내가 언제 너에게 군주를 시해하라고 했느냐? 이제 나는 군주를 시해한 사람이 되어 역사에 악명을 남기게 되었다. 이게 너의 공이냐? 너의 죄를 묻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거라. 벼슬을 달라고?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조천은 화가 나서 노발대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천은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조천의 아들이 부친의 직위를 물려 받으려 하자 조순이 동의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공을 세우면 그 때 무슨 벼슬이든지 주겠다.”
역사학자들은 조순이 조천 부자를 특별히 배려하지 않은 것은 모두 동호직필의 결과라고 인정한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