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2 11:13:03 출처:cri
편집:李仙玉

[손숙오 편-4] 청렴의 화신으로 남다


제4회 청렴의 화신으로 영원히 남다

초 나라 궁중에는 맹(孟)이라는 이름의 배우가 있었다. 연극이나 우스운 이야기로 초 나라 왕의 무료함을 달래고 초 나라 왕에게 웃음을 가져다 주는 맹은 장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 맹이 어느 날 야외에서 손숙오의 아들 위안(蔿安)을 만났다. 위안이 고생스럽게 홀로 나무를 베어 등에 지고 집으로 가는 것을 본 맹이 물었다.

“위 공자님, 영윤께서 금방 돌아가셨는데 벌써 살림이 이렇게 궁해지셨어요? 스스로 나무를 해서 쌀을 바꿀 정도로요?”

그 말에 위안이 대답했다.

“부친께서 비록 다년간 영윤을 지내셨지만 워낙 공과 사를 가르셔서 돈 한 푼 탐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자신의 봉록으로는 굶주린 사람들을 도와주어 집에는 모아놓은 돈 한 푼 없습니다. 제가 나무를 하지 않으면 모친과 저는 모두 굶어 죽을 판입니다!”

그 말에 맹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집에서 기다리세요. 하루 이틀이 지나면 대왕께서 부르실 것입니다.”

궁으로 돌아온 맹은 손숙오가 생전에 착용했던 옷과 관모, 신발, 검 등을 준비하고 다른 한 배우를 찾아 장왕으로 분하게 하고 자신은 손숙오로 분하면서 둘이 장왕 앞에서 연극을 펼쳤다.

무대 위의 장왕은 궁에서 손숙오를 그리다가 손숙오로 분한 맹이 나타나자 반갑게 맞이했다.

“경, 정말 그대가 그리웠소! 과인은 그대가 없으면 아니 되고 초 나라도 그대가 없으면 아니 되오. 그런데 어떻게 그대는 과인을 버리고 간단 말이오?”

맹이 그 말을 받았다.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저는 손숙오가 아니라 손숙오와 비슷한 사람일 뿐입니다.”

극중의 장왕이 말했다.

“손숙오처럼 생기기만 하면 되오. 과인을 그대를 영윤으로 모시겠소.”

극중의 손숙오가 대답했다.

“돌아가서 아내와 논의하겠습니다.” 그리고 극중의 손숙오는 무대에서 내려갔다가 곧 돌아와 극중의 장왕을 향해 말했다.

“아내가 영윤을 못하게 합니다”.

그 말에 극중의 장왕이 놀라며 되물었다.

“왜? 영윤은 초 나라에서 관직이 제일 높은 벼슬인데 왜 싫다는 거요!”

“아내가 불러준 민요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대왕께서는 저의 아내가 왜 저를 영윤이 되지 못하게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맹이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그대여 벼슬을 할려거든 초 나라의 영윤일랑 하지 마오

그대여 사람이 되려거든 손숙오를 배우질랑 마오

천신만고 이겨내며 둑을 쌓고 적을 무찌르며

과로로 병이 생겨도 여전히 그치지 않소

그대여 벼슬을 할려거든 청렴한 관리가 되지 마오

그대여 사람이 되려거든 손숙오를 배우질랑 마오

초 나라 왕을 패주의 자리에 올려놓았어도

자신은 죽어서 관 하나 쓰지 못했소

그대여 벼슬을 할려거든 청렴한 관리가 되지 마오

그대여 사람이 되려거든 손숙오를 배우질랑 마오

살아서 그 공을 기억하는 사람 하나 없고

죽어서 그의 가족들 땔나무로 쌀을 바꾸오

맹은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눈물을 흘리는 극중의 장왕에게 물었다.

“저의 아내는 이런 영윤을 왜 하냐고 물었습니다. 아내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손숙오와 같은 영윤이 되면 살아서 아내와 자식들이 복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서 아내와 자식들이 고생만 하는데 그런 영윤을 왜 하겠습니까?”

무대 아래에서 연극을 보던 진짜 장왕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과인이 어찌 손숙오의 공을 잊겠는가? 과인은 다만 그가 이 정도로 청렴한 줄을 몰랐을 뿐이다.”

맹이 말했다.

“저도 위공자를 만나지 못했으면 손숙오 영윤께서 이토록 청렴하신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 초 나라는 대국입니다. 손숙오 영윤께서 관리를 잘 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초 나라는 나라가 잘 살고 대왕께서 패왕이 되셨습니다. 손숙오의 아내와 자식들이 하루 세끼 배불리 먹게 할 방법이 없을까요?”

장왕은 맹이를 시켜 즉시 위안을 불렀다.

“자네가 벼슬을 하지 않겠다면 좋은 땅을 내리겠네. 어떤가?”

위안이 대답했다.

“부친께서 침구의 땅만 받으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 침구는 땅도 척박하고 이름도 좋지 않는데 그 땅을 받아서 뭘 하겠는가?”

“부친의 유언이라 거역하지 못해서 그럽니다.”

장왕은 하는 수 없이 손숙오의 유언에 따라 위안에게 침구의 땅을 내주었다.

손숙오는 자신의 자손들이 척박한 땅에서 기본 생계를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후에 손숙오가 선견지명이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침구가 땅도 척박하고 이름도 좋지 않아서 그 땅을 넘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손숙오의 자손들은 그 땅에서 10대가 넘도록 편안하게 살수 있었다.

또 이로부터 후에 세상과 다투지 않고 만족하는 마음을 말하는 사자성어 ‘침구지지(寢丘之志)’가 나오게 되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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