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구천검)
제4회 오나라를 멸해 원수를 갚다
월나라가 착실하게 전쟁준비를 하는데 오 왕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금방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그는 노(魯)나라, 위(衛)나라와의 회맹(會盟)을 통해 진(晉)나라와 중원의 패주가 다툴 일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오 왕이 회맹을 위해 북상을 준비하고 있는데 오자서가 또 찾아와서 바닥에 엎디어 눈물을 흘리며 간언했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면 참새가 뒤에서 기다립니다. 제나라가 이유 없이 노나라를 정벌해 노나라를 차지한 줄 알았는데 오나라가 거국적인 병력으로 천 리 길을 와서 제나라를 완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나라는 제나라를 차지한 줄 알았는데 월 왕이 우리 오나라를 침략하고 우리 오나라 백성을 학살할 만반의 준비를 마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위기가 오나라의 눈앞에 닥쳐왔습니다! 우리를 넘보는 자가 있습니다. 패주를 다투고자 대왕께서 북상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오자서의 말에 오 왕이 대로했다. 그는 오자서가 사신으로 제나라로 갈 때 아들을 데리고 가서 포숙아(鲍叔牙)의 자손인 제나라 대부(大夫) 포식(鲍息)에게 맡겼다는 것을 알고 오자서가 오나라를 배반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오자서가 또 북상 회맹을 막는 것은 분명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오 왕은 검을 뽑아 오자서의 앞에 던졌다.
“늙고 어리석은 너는 오나라에 재앙만 안겨준다. 과거에는 선왕의 체면을 봐서 차마 너를 죽이지 못했는데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 다시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
오자서는 검을 잡으며 눈물을 비오 듯 쏟았다.
“제가 죽은 후 저의 눈동자를 파내서 동문에 걸어 주십시오. 월나라 군대가 어떻게 입성하는지 보아야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오자서는 검으로 목을 그었다. 부차는 오자서가 죽기전까지 이런 불길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더욱 화가 나서 오자서의 시신을 양가죽에 싸서 장강(長江)에 버리라고 명했다.
오자서의 사후 그에 대해 많은 전설이 전해진다. 오자서의 시신을 강물에 던지자 강물이 세차게 파도를 쳤다. 백성들은 몰래 오자서의 시신을 거둬 오산(吳山)에 묻고 그로부터 오산을 자산(胥山)이라 고쳐 불렀으며 자산에 오자서의 제사를 치르는 사당도 지었다.
이 천년이 넘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오자서의 이야기를 자자손손 전해오고 있다. 그것은 부친과 형제의 원수를 갚고 목숨으로 오 왕에게 간언한 오자서가 효자와 충신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역할을 다 잘 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오자서는 효심과 충성심을 남김없이 표현했고 모든 성의를 다해서 지혜와 용맹을 발휘했기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사서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월 왕 구천은 오 왕이 오자서에게 죽음을 내리고 패자를 다투기 위해 군대를 거느리고 북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집결시키고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 오나라와 마지막 결전을 벌일 것이다. 부자가 모두 군중에 있으면 부친이 남고, 형제가 모두 군중에 있으면 형이 남고, 부모는 있으나 형제가 없는 외아들도 남고, 병에 걸린 자는 약과 죽을 줄 터이니 남아서 병을 치료하라. 이 외 나머지 군사는 출발 준비하라!”
병사들은 월 왕의 어진 마음에 감동되어 하나 같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에 오나라를 멸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구천은 대군을 거느리고 강물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서 오나라를 공격했다. 오나라에는 태자와 노약한 군사만 남았으나 월나라에는 범려와 설용(泄庸)과 같은 장군이 있었고 병사들도 모두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 두 나라 군대가 싸움을 시작하자 오나라 군대는 크게 패했고 오나라 태자는 몸에 활을 여러 대 맞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나라 군대는 정세가 위급해지자 성안으로 철군해 성문을 닫아 걸고 수비하는 한편 사람을 보내 북상한 오 왕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오자서가 축조한 철통 같은 성이 공격하기 힘들어 구천은 성을 포위한 동시에 성밖의 고소대에 불을 질렀다.
황지(黃池)에서 진나라 정공(定公)과 패주의 지위를 다투던 오 왕은 월나라 군사가 오나라를 범해 태자가 순직하고 남은 군사가 성안에 들어가 성을 수비하며 정세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대경실색했다. 그는 급히 군대를 거느리고 귀국길에 올랐다. 장병들은 부모형제가 남은 오나라가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알고 모두 두려움에 떨었으며 여로의 피곤까지 겹쳐 투지가 전무해졌다.
그들이 오나라로 돌아왔을 때는 마침 야밤이었는데 파도소리가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들려와 오나라 군사들은 월나라 군사들과 싸우지도 않고 황급히 도주하며 밀고 닥쳐 스스로 참패했다.
이 때 갑자가 큰 바람이 일고 비가 내려 넘쳐난 태호의 물이 덮쳐 성의 한 모퉁이가 무너졌다. 월나라 병사들은 그 때라 싶어 성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부차는 월나라 군대가 성안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 남은 몇몇 측근을 데리고 도주해 고소산(姑蘇山)에 들어가 자결했다.
오나라를 멸한 것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월 왕 구천은 점차 춘추(春秋)시대의 마지막 패주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韓)나라와 위(魏)나라, 조(趙)나라가 진(晉)나라를 삼분하면서 중국 역사는 춘추시대로부터 전국(戰國)시대로 진입했다.
번역/편집: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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