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노반전의 일각)
제2회 운제(雲梯)로 전쟁을 막다
월나라의 천리 땅을 차지한 초 왕은 아주 만족했고 그의 야망도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그는 백성의 어려움과 군대의 피로를 무시하고 송(宋)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초 왕은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노반이 과인을 위해 두 가지 비밀무기를 발명했기 때문에 우리는 송나라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송나라만 병합하면 우리는 중원(中原)의 으뜸이 되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
반전(反戰)을 주장하는 묵자(墨子)가 이 소식을 듣고 제(齊)나라를 출발해 밤에 낮을 이어 초나라에 도착했다.
묵자는 먼저 노반을 찾았다.
“노반, 당신이 사람을 잘 죽인다고 들었소. 내가 황금 10일(鎰, 1일=24냥)”을 줄 터이니 나 대신 북방인 한 명을 죽여주오!”
노반은 묵자가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을 살인자로 몰아 세우는 바람에 화가 나서 물었다.
“선생은 저를 어떻게 보신 겁니까? 저는 인의(仁義)를 행하기에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묵자는 그제서야 노반에게 예를 행하며 말했다.
“미안하오. 우리가 당신을 오해했소. 사람들은 당신이 초 왕에게 두 가지 비밀무기를 만들어 줘서 초 왕이 송나라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 한다고 알아서 모두 당신을 최고의 살인자라고 말하고 있소!”
그 말에 노반은 멍해 있더니 머리를 숙였다.
묵자가 말을 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런 죄도 없는 송나라를 소멸하겠다는 초나라가 인의를 행한다고 할 수 있겠소? 당신은 이 일을 알면서도 막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살인무기를 만들어 주기까지 했소. 이것이 총명한 사람의 소행이오? 당신은 비록 직접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많은 생명을 해치는 것을 도왔으니 이 또한 현명한 사람의 소행이오?”
노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운제(雲梯)는 이미 초나라에 교부해서 초 왕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운제의 오묘함이 무엇이오? 그것을 나에게 알려주면 내가 초 왕을 설득해서 송나라 사람들을 구할 수 있소.”
묵자가 자신의 발명을 언급하자 노반은 희색이 만면해서 대답했다.
“일반 사다리는 성벽에 기대어 세운 후에야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성벽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벽 위의 사람들이 사다리를 밀쳐내면 사다리를 오르던 사람들은 사다리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사다리가 낮아 성벽의 꼭대기까지 미치지 못하면 성벽 위의 사람들이 사다리를 밀쳐내지 못하는 동시에 성을 공격하는 사람들도 성벽 위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내가 만든 운제는 일반 사다리의 이런 모든 단점을 극복했습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운제는 기댈 곳이 없는 공중에 홀로 높이 솟아 있을 수 있고 사람들이 운제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손잡이를 빼면 단 번에 성벽위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반의 말을 들은 묵자는 어떻게 운제를 방어해야 하는지를 알고 노반에게 말했다.
“나를 초 왕에게 데려다 주오. 그리고 당신이 잘 협조하면 초 왕을 설득할 수 있을거요.”
노반은 원래 초 왕에게 비밀무기를 만들어 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묵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확실히 송나라 사람들을 살해하는 방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반은 묵자를 협조해 송나라 정벌이라는 이 정의롭지 않은 전쟁을 중지하도록 초 왕을 설득하고자 했다.
초 왕을 만나자 노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묵자 선생은 초나라가 송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명분이 없는 의롭지 못한 전쟁이라고 말했습니다. 송나라를 정벌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만든 운제가 살인도구로 변하고 저는 살인자가 되게 됩니다. 저는 살인자라는 악명을 들을 수 없습니다. 사서에 악명을 남기려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말에 초 왕이 벌떡 뛰어 일어나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과인은 이번 정벌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소.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로 인해 작전계획을 포기하라고? 나는 그렇게 줏대가 없는 사람이 아니오.”
이번에는 묵자가 나섰다.
“초나라 국토는 벌써 아주 광활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의롭지 못한 병합 전쟁을 하려 하십니까? 왜 송나라 같은 약소국을 정벌하려 하십니까? 대왕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준마가 끄는 본인의 좋은 마차를 제쳐두고 소가 끄는 다른 사람의 낡아빠진 수레를 빼앗는것과 무슨 다를 바가 있습니까? 또 본인의 진수성찬을 누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검소한 밥상을 빼앗는것과 무슨 다를 바가 있습니까?”
묵자의 그 말에 초 왕이 웃었다.
“과인에게 인의를 선양하지 마시오. 과인은 그런 것을 믿지 않소. 전쟁은 실력 있는 자가 이기고 실력 없는 자가 지는 싸움일뿐이오. 전쟁에 무슨 의로운 전쟁과 의롭지 않은 전쟁의 구별이 있다는 말이오? 과인은 노반 대부가 만들어준 비밀무기가 있기에 이번 송나라 정벌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만 알면 되오.”
“장담하지 마십시오. 대왕께서 기어이 이 의롭지 못한 전쟁을 치르시겠다면 나도 분명하게 말하지요. 노반의 운제는 만능도구가 아니며 무적의 무기는 더욱 아니라고 말입니다. 대왕께 운제가 있으면 나에게는 운제를 막을 묘안이 있습니다.”
말을 마친 묵자는 초 왕의 앞에서 허리띠를 성벽으로 삼고 젓가락을 방어도구로 삼아 노반과 모의 전쟁을 치렀다. 노반이 수차 운제의 장치를 바꾸었으나 목자는 번마다 방어에 성공했다.
결과를 본 초 왕이 억지를 부렸다.
“당신이 아무리 대단해도 소용없소. 나는 송나라를 멸할 수 있소.”
묵자가 냉소를 지었다.
“제가 대왕의 속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나를 죽이면 송나라에 운제를 파할 능력자가 없다고 생각하시죠?”
초 왕이 음흉하게 웃었다.
“다 알면서 왜 묻는거요?”
“하지만 대왕께서 잘못 아셨습니다. 나는 대왕의 마음을 벌써 읽고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준비했습니다.”
“내 마음을 알았다고 해서 어떻게 할건가? 이미 준비를 했다고 내가 당신을 죽이지 못할 것 같은가? 당신은 지금 홀로 초나라 궁에 들어와 있고 나의 신변을 지키는 무장한 병사는 몇 백명이오. 당신을 죽이는 건 모기 한 마리나 개미 한 마리를 죽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저는 대왕께서 저를 죽여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제자인 금활리(禽滑厘)가 3백의 방어병을 거느리고 송나라 성벽에 올라 초나라 군대의 왕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운제를 파하는 그들의 수단은 나보다 훨씬 강합니다.”
이 때 노반이 묵자의 말을 받았다.
“이미 묵자 선생과 겨루어 보았는데 운제가 이제는 무슨 비밀무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묵자 선생은 운제의 오묘함을 다 장악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의 제자들이 묵자 선생보다 더 대단하다면 송나라를 정벌하지 말 것을 간언합니다. 안 그러면 저의 이름에 오점이 생기게 됩니다.”
송나라가 벌써 만반의 준비를 하고 또 묵자의 제자들이 송나라를 도와준다는 말을 들은 초 왕은 분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했다. 초 왕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좋소. 묵자 선생, 과인이 선생에게 선심을 쓰겠소. 노반 대부의 얼굴을 봐서 잠시 송나라를 정벌하지 않겠소.”
초 왕은 송나라 정벌계획을 취소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