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4 10:09:06 출처:cri
편집:李仙玉

[편작 편-4] 전지전능한 의술

(사진설명: 편작 사당의 일각)

제4회 전지전능한 의술

위나라를 떠난 편작은 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계속 사람을 구했다. 한단(邯鄲)에 이른 편작은 여인을 중시하는 그 곳의 풍속을 보고 부인과 전문의를 담당했다.

난산의 임산부가 있는 집에서 편작을 불렀다. 편작은 그 임산부가 정말로 난산이 아니라 통증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을 지어 술에 타서 먹이게 했다. 그러자 임산부는 더는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아기를 출산했다. 하지만 아기를 출산한 후에도 산부는 계속 복부의 통증을 느껴 편작이 진맥을 해보니 산부의 맥이 급박하게 뛰고 있었다. 어혈이 풀리지 않은 증상이었다. 편작이 어혈이 풀리는 약을 조제해서 산부에게 먹이자 산부는 금방 콩알 같은 피 덩어리를 흘렸다. 그리고 금방 복통이 가신 듯 사라졌다.

편작이 낙양(洛陽)에 이르니 주(周)나라 사람들이 노인을 존경하는 풍속을 지켜서 이번에는 오관과(五官科, 귀와 코, 인후, 눈, 구강 등 다섯 기관)전문의와 치과의를 담당했다.

그 때 낙양의 많은 노인들이 충치병에 걸려 있었다. 편작은 식후 양치질을 하는 좋은 습관을 기르라고 환자들을 교육시키면서 왼손의 양명맥(陽明脈)에 찜질을 했다. 그리고 매일 쓴 맛의 인삼탕으로 양치질을 하게 했다. 그랬더니 며칠이 지나자 환자들의 치통이 모두 사라졌다.

이어 진(秦)나라에 이른 편작은 어린이들을 중시하는 그 곳의 풍속을 보고 이번에는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한 아이의 배가 크게 부풀자 그 부모는 아이의 뱃속에 혹이 자란 줄 알고 편작을 찾았다. 편작이 그 아이를 보니 머리카락에 윤기가 없고 거친 피부는 누렇게 떴으며 손을 조금만 만져도 통증에 온 몸을 떨었다. 편작이 진맥을 해보니 뱃속에 요충이 자라는 맥상(脈象)이었다. 다행히 얼굴색이 괜찮고 윤기도 흐르는 것을 봐서 뱃속에 사악한 기운은 없고 병증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편작은 독으로 독을 치는 이치를 이용해 독성이 있는 원화(芫花)를 처방했다. 이튿날 그 아이는 많은 요충을 배설했고 그로부터 더는 복통을 호소하지 않았으며 부풀어 올랐던 배도 제대로 회복되었다. 진나라 사람들은 편작이 듣던 대로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고 너도 나도 칭찬했다.

당시 진무왕(秦武王)은 코가 시큰시큰 아프고 그에 따라 안면 전체의 통증을 느꼈는데 태의도 속수무책이었다. 진무왕은 편작이 진나라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궁으로 불렀다. 편작이 진무왕의 귀와 코를 보고 진맥한 후 말했다.

“대왕의 병증은 심각하지 않습니다. 침을 놓으면 금방 완치될 것입니다.”

진무왕은 힘장사이기는 하지만 아픈 것을 유난히 두려워했다. 그는 편작의 손에 들려 있는 침석을 보고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에다 침을 놓을 생각이시오? 침이 많이 아프오?”

“얼굴에 침을 놓을 것입니다.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참을 만할 것입니다.”

진나라의 태의령(太醫令) 이해(李醢)는 원래부터 의술이 고명한 편작을 질투했는데 진무왕마저 편작을 불러 병을 치료하게 하자 자신의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다. 원래 편작의 꼬투리를 잡아 편작의 명성을 더럽히려고 마음을 먹었던 차에 이해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진무왕에게 말했다.

“대왕의 질환은 귀와 눈 사이에 있습니다. 저는 벌써 그렇게 진단했으나 침을 잘못 놓으면 대왕의 귀와 눈을 다쳐 실명하거나 청각을 잃을 것 같아 지금까지 감히 침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

이해의 말에 진무왕은 마음이 흔들려 얼굴에 주저하는 기색을 지었다.

편작이 손에 들었던 침을 던지며 말했다.

“저는 의사로 있으면서 첫째, 오만하고 방자하며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둘째, 건강보다 재물을 더 중하게 여기는 사람, 셋째, 의사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 넷째, 음양이 엇갈리고 오장의 기능이 미비한 사람, 다섯째, 몸이 허약해 약을 당하지 못하는 사람, 여섯째, 요술을 믿고 의술을 믿지 않는 사람, 이렇게 여섯 가지 종류의 사람을 치료하지 않습니다. 대왕은 이런 종류에 속하니 치료하지 않겠습니다.”

진무왕의 급히 말했다.

“과인은 이 여섯 가지에 속하지 않는데 어이하여 치료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오?”

“대왕께서는 저에게 치료를 청하시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을 시켜 소란을 부리게 하니 이는 오만하고 의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나라를 다스릴 때도 이렇게 망언을 믿고 우유부단하며 중요한 행동에서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망국의 큰 화를 당할 것입니다!”

편작의 말에 허를 찔린 진무왕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침을 놓으시오. 선생의 말을 따르겠소.”

과연 편작의 침구를 통해 진무왕의 병은 깔끔하게 완치되었다. 진무왕이 감탄을 연발했다.

“선생은 과연 하늘이 보낸 신선(神仙)이시오!”

편작은 진무왕이 진심으로 감복하는 것을 보고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대왕, 일전에 제가 얼굴색이 이상한 한 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며칠전부터 요통으로 허리도 굽히지 못하고 소변을 보기도 힘든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제때에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신장에까지 뻗칠 것이라고 말했더니 그 환자는 그제서야 며칠전에 힘자랑을 한답시고 3백근이 넘는 무거운 물건을 추켜들었는데 그날 저녁부터 요통이 시작되고 소변을 보기 힘들어졌다고 대답했습니다.”

진무왕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물었다.

“무슨 뜻이오?”

“대왕은 힘장사이시지요? 무거운 물건을 들기도 좋아하시구요. 제가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은 질병을 유발할 위험이 있으니 너무 무거운 물건을 들지 말라고 대왕께 권유 드리고자 합입니다.”

편작의 말에 진무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들어올리지 못할 무거운 물건이란 없소이다!”

그런 진무왕을 본 편작은 진무왕이 언젠가는 역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짐작했다. 편작은 그때 벌써 진무왕의 기색에서 역도가 진무왕의 신장에 무리를 준 것을 보았던 것이다.

뒷이야기지만 후에 진무왕은 낙양에 갔다가 태묘(太廟)에서 우 임금이 주조한 구정(九鼎)을 보고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어설프게 산 같은 정을 들려고 하다가 실수로 오른 발에 정을 떨어뜨렸으며 흐르는 피를 막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한편 진심으로 편작에 감복한 진무왕은 편작이 진나라에 계속 머물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해에게 말했다.

“편작은 정말로 명의이네! 나는 그를 신변에 남겨두고 싶네.”

“그런 떠돌이 의사가 대왕의 질병을 치료한 것은 우연인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태의로 두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는 자네보다 훨씬 뛰어나네. 그를 보내기 아쉬운데 태의원에 두지 않으면 어디에 둔다는 말인가?”

질투심이 눈이 먼 이해는 그날 저녁 자객을 보내서 편작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작심했다.

그날 저녁, 편작은 객사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편작의 제자인 자양이 측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무 그림자 속에 한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을 보고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방에 돌아와 편작과 자표를 깨워 세 사람은 몰래 방을 나갔다. 날이 밝은 후 다시 방에 돌아오니 이불이 칼에 두 토막으로 잘라져 있었다.

자양이 입을 열었다.

“더는 진나라에 있을 수 없습니다. 당장 이 곳을 떠나야 합니다.”

편작과 자양, 자표는 진무왕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당장 말썽이 많은 이 곳을 떠나 여산(驪山)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도고일척(道高一尺) 마고일장(魔高一丈)이라고 이해는 벌써 자객 두 명을 사냥꾼으로 분장시켜 여산의 숲 속에 매복하게 했다가 편작의 목숨을 빼앗았다. 일대의 명의 편작은 이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다.

사마천(司馬遷)은 편작이 높은 의술의 피해를 입었다고 사서에 기록했다. 천고의 탄식을 자아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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