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5 09:10:49 출처:cri
편집:李仙玉

[오기 편-1] 용병술의 달인

문무를 겸비한 병법가 오기

그는 충성심 하나로 28년간 위(魏)나라에서 벼슬하는 동안 도합 일흔 여섯 번에 걸쳐 출정했다. 그 중 예순 네 번은 승전고를 올리고 열 두 번은 무승부였으며 종래로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그는 천하무적의 용감함과 절세의 무공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는 군사가 손빈(孫臏)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병법의 대가이다. 지금까지 세상에 전해지는 그의 병서 <오자(吳子)>는 손빈의 <손빈병법(孫臏兵法)>과 함께 <손오병법(孫吳兵法)>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그는 유명한 개혁가로징병제를 모병(募兵)제로 개혁해 중국의 병역문명사에서 쾌거와 진보를 이룩했다. 그는 변법을 추진하고 세습 귀족제를 취소했으며 용관(冗官)을 제거했는데 그 목적은 단 하나, 부국강병의 실현이었다.

그가 바로 문무를 겸비한 병법가 오기(吳起)이다. 오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용병술의 달인

얼음이 녹으면서 강물은 많은 얼음 덩어리를 싣고 소리치며 세차게 흘렀다.

반백의 한 사나이가 쌀쌀한 봄바람을 마주하고 강 건너의 위(魏)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익은 성과 웅장한 산천이 눈앞에 떠올라 두 갈래의 뜨거운 눈물이 헝클어진 하얀 수염 위로 굴러 떨어졌다.

그가 바로 위나라를 떠나며 슬픔에 잠긴 위나라의 상장군(上將軍) 오기이다.

하인 오흥(吳興)이 옆에서 위로했다.

“저따위 나라를 위해 무슨 눈물을 흘리십니까! ‘여기서는 나를 알아주지 않지만 어딘가 나를 알아주는 곳이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장군은 저 나라를 위해 28년동안 생사를 오가며 일흔 여섯 번이나 전장에 나가 예순 네 번은 완승을 거두고 열 두 번은 무승부의 결과를 가져와 종래로 패전한 적이 없습니다. 또 국토를 사방으로 넓혀 위나라가 천하에 우뚝 서게 했습니다. 이토록 절세의 무공을 이룬 사람은 지금까지 장군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장군에게 고맙게 생각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장군을 밀어내니, 흥. 이제 장군께서 떠나시면 위나라의 앞에는 쇠락의 길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기가 대꾸했다.

“나는 어느 나라에 있든 언제나 그 나라를 위해 출전해서 백전백승을 거두었는데 왜 항상 욕만 먹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고 있다. 너 기억하느냐? 처음에 노(魯)나라에서 나의 아내가 제(齊)나라 전(田)씨의 여인이라는 이유로 노나라 군주가 나에게 병권을 줄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을 말이다. 그 후에 아내가 병사하고 나서야 그는 나를 장군으로 등용했지. 나는 병권을 장악한 후 즉시 수비를 공격으로 바꾸어 약한 실력으로 강대한 제나라 군대를 제압함으로써 제나라 군대가 장비까지 버리고 황망하게 도주하지 않았느냐. 노나라 군주가 나를 상경(上卿)으로 등용하자 누군가가 요언을 퍼뜨렸지. 무슨 내가 흉악하고 잔인한 무뢰한이어서 고향인 위(衛)나라에서 벼슬도 하지 못하고 돈을 다 써버리자 홧김에 나를 비웃는 30여 명의 이웃을 죽이고 노나라로 도주했다느니, 또 무슨 모친이 사망했는데도 돌아가서 장례도 치르지 않은 엄청난 불효를 저질렀다느니, 노나라 군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아내를 죽여서 장군이 되었다느니 하고 말이다. 아, 그 사람들의 입이 그들에게 달려 있으니 나는 그저 묵묵히 그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 붓는 오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밖에 없구나.”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마련입니다. 세 치 혀가 사람 잡지요. 하지만 장군의 일은 제가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모두 그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꾸며내고 악의적으로 중상한 것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나는 물론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노나라 군주가 그 헐뜯는 말을 믿는 것이 문제이지. 그는 제나라를 이긴 위망 때문에 다른 제후들이 노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킬까 걱정하고, 또 나를 중용하면 노나라와 가까운 사이의 위나라에 잘못 보임으로 양국간의 불화를 초래할까 두려워 끝내는 나의 감투를 벗기고 더는 나를 중용하지 않는구나.”

“노나라는 종친(宗親)만 중시하고 인재를 경시하며 인의도덕만 중시하고 부국강병은 생각하지 않는 약소국입니다. 이런 노나라에서는 장군의 뛰어난 재능과 원대한 지략을 펼칠 수 없는데 이 때 마침 노나라 군주가 장군을 등용하지 않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닙니까? 장군은 이 참에 아무 미련도 없이 노나라를 떠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네 말에 일리가 있다. 그 때 위(魏)나라 군주 문후(文侯)가 마침 현인을 널리 구해서 우리가 가자 그는 나를 장군으로 임명했지. 그는 참으로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인재를 갈구했다!”

“어딘들 소인배가 없겠습니까? 그 때 위문후도 측근인 이극(李克)에게 장군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면서요? 그랬더니 장군과 일면식도 없는 위나라의 그 벼슬아치도 장군이 색을 탐하고 각박하다고 폄하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극은 다만 장군은 용병술에서 제나라의 유명한 장수 사마양저(司馬穰苴)를 뛰어넘는 군사 천재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았다면서요. 다행히 위문후가 인의(仁義)니 도덕이니 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장점을 살리는 것을 좋아해서 장군을 등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위문후는 정말로 나의 지기이다! 그가 나를 중용했기에 나는 군사적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 나도 강적인 진(秦)나라를 격파하고 진나라의 다섯 성을 공략하여 서하(西河) 지역을 탈취하는 전과로 그의 은덕에 보답했지. 후에 음진(陰晉) 전투에서 나는 소수의 군사로 다수의 군사를 이기는 기적을 창조해서 5만의 병력으로 수십만에 달하는 진나라의 대군을 격파했지. 그로서 국토의 안정을 기하고 천하의 제후들을 놀라게 했으며 위나라는 천하의 으뜸이 되었다.”

오기는 잠깐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문후는 또 내가 백전백승하는 관건이 군사를 잘 다스리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지. 나는 비록 대장군이지만 최하층의 병사와 같은 전포(戰袍)를 입고 그들과 같은 식사를 했다. 잠을 잘 때에도 자리를 깔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짚 더미위에서 잤으며 행군 시에도 마차나 말을 타지 않고 병사들처럼 두 발로 걸었다. 행군할 때 물론 행장과 군량도 몸소 메고 다니면서 병사들과 노고를 같이 했다. <시경•진풍•무의 (詩經•秦風•舞衣)>에는 ‘어찌 옷이 없다 할까(岂曰舞衣) 그대와 같은 전포 입으려네(與子同袍). 왕께서 군사를 일으키시면(王於興師) 나의 길고 짧은 창을 고쳐(修我戈矛) 그대와 한 편이 되리(與子同仇)’라고 했다. 이는 비록 진나라의 군가지만 동고동락하며 함께 싸운 나와 군사들의 전투적 정신을 잘 보여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후는 나에게 서하를 지키게 함으로써 진나라와 한(韓)나라 군대가 모두 감히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했다.”

오흥이 오기의 말을 받았다.

“네. 그렇습니다. 장군은 장수지만 청렴하고 공정했으며 병사들을 자식처럼 아끼셔서 병사들이 장군을 위해서라면 불바다에도 뛰어들었죠. 한 병사의 다리에 종기가 생기니 장군께서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다고 들었습니다. 그 병사의 모친이 그 광경을 보고 몰래 눈물을 흘려서 한 사람이 너무 감동되어 우느냐고 물으니 그 모친은 전에 남편이 종기가 났을 때 장군이 고름을 빨아냈고 그에 감동된 남편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했다며 오늘 장군이 또 아들의 고름을 빨아내는 것을 보니 이제 아들이 어디에서 전사할지 몰라 통곡한다고 말했다지요. 장군께서 이토록 병사들을 아끼니 장군의 군대는 천하무적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내가 군사를 다스리는 데는 나만의 비밀무기가 있다. 나는 군사를 시험 선발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고안해서 무릇 갑옷을 입고, 무거운 강궁을 들고, 화살 50대를 등에 지고, 창을 들고, 검을 차고, 3일분의 군량을 휴대하고 반나절에 백 리 길을 완주하는 장정(壯丁)이면 모두 무졸(武卒)이 되게 했다. 장정이 일단 무졸이 되면 그의 가족은 부역세와 전지 및 택지세를 전부 면할 수 있다. 나는 또 무졸들을 엄격하게 훈련시켜 뚜렷한 상과 벌, 가르침과 훈계를 중심으로 교육했다. 명령을 듣지 않고 임의로 적군을 공격한 한사졸의 목을 벤 적이 있다. 이런 훈련과 교육을 통해 무졸 대오는 엄격한 규율과 강한 전투력을 가진 정예부대로 성장했다. 엄격한 훈련을 거친 우리 직업군인 앞에서 징병을 통해 모집한 적군은 금방 무너지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러니 우리는 천하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위나라 상국인 전문(田文)도 장군의 공적을 부인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오기는 길에 한숨을 쉬었다.

“만약 나에게 10년을 더 준다면 나는 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문후가 왕이 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도 평생의 미명을 떨칠텐데 아쉽게도 이제 그럴 기회가 없구나. 문후가 붕어하고 나서 그 뒤를 이은 젊고 무지한 무후(武侯)가 황실가족과 종친을 중용하기 시작했지. 나라 위한 일편단심의 오래된 신하 전문은 그나마 괜찮은데 그마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중신(重臣)의 자리에 앉은 공숙좌(公叔痤)는 사람의 능력은 보지 않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만 임용한다! 더 큰 문제는 공숙좌가 상국이 된 후 이상하게 나를 질투하고 미워한 것이다. 또 왕착(王錯)이 무후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무후는 나의 병권을 해제하고 종친에게 서하를 지키게 한 다음 나를 도성(都城)으로 불렀지. 다른 일을 시킨다고 하면서 말이다. 내가 그렇게 바보냐? 도성으로 돌아가면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것인데. 그래서 삼십육계 줄행랑이 제일이라 초나라로 도주할 수밖에 없구나.”

오흥이 오기의 말을 받았다.

“나무는 옮겨 심으면 잘 죽지만 사람은 환경을 바꾸면 오히려 더 잘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황금은 언젠가는 반드시 빛을 뿌리게 되어 있습니다. 초나라에 가면 장군은 그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기는 오흥의 말에 더 대꾸하지 않고 망망한 강가에 외로운 뒷모습을 남기며 묵묵히 걷기만 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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