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연단술사와 화학자
갈홍은 가족을 거느리고 교지, 오늘날의 베트남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그들이 광주에 이르자 광주자사 등악(鄧岳)이 극력 만류했다.
“구루는 야만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민풍이 흉흉하고 지배하기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날씨도 습하고 더워 도처에 벌레와 뱀이 있어서 잘못 하면 뱀에게 물려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왜 하필 그런 야만인의 땅으로 가려는 겁니까? 광주에 머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기 벼슬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갈홍이 답했다.
“벼슬을 할 생각이 있었더라면 도읍에 남아서 큰 벼슬을 했을 것입니다. 내가 구루에 가고자 하는 것은 그 곳에서 주사가 나기 때문입니다. 주사로 연단을 굽기 위해서입니다.”
갈홍의 말에 등악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연단술을 원하면 영남에 좋은 곳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부산(羅浮山)입니다. 나부산은 도가의 명산이라 그 곳에서 연단술을 연마하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주사가 필요하면 제가 사람을 구루에 보내서 가져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부터 나부산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갈홍은 등악의 말에 나부산이 확실이 연단술과 수련에 가장 적합하다고 느껴 말했다.
“좋습니다. 나부산으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벼슬은 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냥 도술만 연찬하겠습니다!”
등악은 흔쾌히 갈홍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관리들이 미인도 아니고 황실의 친척도 아닌 갈홍을 이토록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박학하고 재능이 있는 갈홍은 아름다운 글을 잘 쓰기로 강남에서 으뜸이었다. 또 갈홍은 도사(道士)였다. 위진(魏晉) 시기 도사는 신선에 가까운 존재였다. 심지어 황제와 재상도 갈홍을 존경했으며 높은 벼슬과 많은 봉록으로도 갈홍을 붙잡을 수 없었으니 지방 관리들도 이토록 갈홍을 자신의 지역에 남겨 두려고 극력 만류한 것이다.
그런데 등악의 제언대로 나부산에 오른 갈홍이 그로부터 더는 산을 내리지 않고 심산 속에서 엄청난 큰 일을 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도교의 신앙인들은 갈홍이 나부산에서 도를 깨쳐 신선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로 인해 갈홍의 나부산 입산은 중국 회화 창작의 중요한 제재가 되어 많은 화가들이 <갈홍천거도(葛洪遷居圖)>를 그렸고 그 중 적지 않은 작품은 대대로 전해지는 명작이 되었다.
중국 본토에서 기원한 도교는 영생을 추구하고 득도성선(得道成仙)을 동경하며 연단술은 도사들 수련의 한 가지 특색이다. 왜냐하면 도사들은 일종의 물질을 가지고 금단을 조제해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으며 심지어 도를 깨쳐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도가들은 연단술을 신선이 되는 지름길로 보고 연단술에 열중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대의 연단술사들이 만든 금단은 사실상 납과 수은, 비소 등 중금속이 많이 함유된 독극물이어서 먹으면 불로장생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 일찍 죽는 길에 들어서는 셈이었다. 하지만 우연하게 연단술을 연마하면서 사람들은 일부 물질 변화의 법칙을 발견했고 이는 현대 화학의 기원이 되었다.
중국의 4대 고전 명작 <서유기(西遊記)>에 손오공(孫悟空)이 신선의 연단로에 갇혔다가 혜안을 가지게 된다는 스토리가 나온다. 이로부터 연단로는 폐쇄된 솥임을 알 수 있다. 도사들은 일부 광물질을 밀폐된 연단로에 넣고 불에 달군다. 그러면 광물질은 고온의 영향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물질을 생성해낸다. 그러니 연단술은 원시적인 화학실험이고 연단술사는 최초의 화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오면, 갈홍의 이 원시적인 화학실험은 범상치 않았다. 독거와 사색을 즐기는 갈홍은 연단과정에 붉은 주사에 열을 가하면 수은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았다. 또 수은과 유황을 합치면 검은 황화수은이 되었다가 다시 붉은 주사로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과정이 특이하다고 생각한 갈홍은 이 과정을 자신의 저서인 <포박자(抱朴子)>에 기록했다. 당시 갈홍은 자신이 화학 반응의 가역성을 발견한 첫 사람이 될 줄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갈홍은 이 저서에서 또 사산화삼납으로 납을 만들 수 있고 납으로 사산화삼납을 만들 수 있다고도 기록했다.
갈홍은 사색하기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도 뛰어났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열을 가하면 연단로에서 새로운 물질이 생성된다. 그렇다면 다른 광물질로 황금을 만들 수도 있겠다. 민간에 무쇠로 황금을 만든다는 점철성금(點鐵成金)의 전설이 있지 않는가? ”
갈홍은 말하자 바람으로 바로 행동에 옮겼다. 그는 무쇠에 증청(曾靑)을 발라서 연단로에 넣고 열을 가했다. 과연 무쇠가 황금색으로 변했다. 갈홍은 날듯이 기뻤다. 하지만 갈홍이 자세히 보니 무쇠는 황금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특수 황동의 일종인 홍동(紅銅)으로 변해 있었다.
“홍동도 무쇠보다 귀중하니 이것도 가치는 있구나.”
이렇게 생각한 갈홍은 이 실험과정도 <포박자>에 기록했다. 갈홍은 자신의 이 묘사가 사실은 현대 화학의 치환반응을 기록했음을 몰랐을 것이다. 증청이 황산동(黃酸銅)을 말하니 이는 무쇠와 황산동의 치환반응이었던 것이다.
연단술사인 갈홍은 중국의 연단술사에서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를 개척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금단을 조제하고 복용하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갈홍의 이런 생각은 황당하지만 원시적인 화학자로서 중국의 원시적인 화학에 대한 그의 기여는 엄청나다. 그가 펴낸 저서 <포박자>는 후세에 많은 화학실험의 자료를 남겼고 그로 인해 갈홍은 화학반응의 가역성과 화학치환반응을 기록한 첫 사람이 되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