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의 귀재 손빈
그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두 차례의 전투, 계릉(桂陵)전투와 마릉(馬陵)전투에서 동일한 전술로 동일한 적을 두 번이나 격파했다. 이 두 차례의 전투는 또한 중국 지략전술의 대표이기도 하다.
자신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이겨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전기새마(田忌賽馬)’와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 위나라를 포위한 우회적 전술을 보여주는 ‘위위구조(圍魏救趙)’의 고전도 모두 그와 연관된다.
전국(戰國)시기 군사가인 그는 방연(龐涓)과 함께 천재적인 병법가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에서 병법을 배웠고 방연의 시기와 질투로 빈형(臏刑)을 받았지만 자신의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그가 바로 병법의 귀재 손빈(孫臏)이다. 손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전기새마’, 화려한 등장
당신은 날래었네(子之還兮)
나를 만난 곳은 노산 골짜기(遭我乎峱之間兮)
말을 나란히 달려 두 짐승 쫓으며(幷驅從兩肩兮)
당신은 나에게 인사하며 날래다 했네(揖我謂我儇兮)
…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제(齊)나라에 들어서서 임치(臨淄)로 가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마차에 탄 순어곤(淳於髡)이 제나라의 민요 <시경•제풍•환(詩經•齊風•還)>을 흥얼거린 후 손빈에게 말했다.
“고향 노래가 듣기 좋지요? 우리 이제 제나라에 이르렀으니 안전을 걱정하지 마시오.”
마차의 좌석 밑에서 기어 나온 손빈이 읍하며 사의를 표시했다.
“목숨을 구해준 선생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제나라 왕이오. 왜냐하면 내가 제나라 왕에게 국보를 모셔왔으니 말이오.”
“과찬이십니다. 제가 모함을 받아서 이 모양이 되었는데 누가 저의 재능을 믿어 주겠습니까?”
순어곤이 탄식했다.
“그대는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군. 군자는 소인배와 싸워서 이기지 못하지만 진정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군자뿐이오. 그 방연이라는 자도 능력자인데 어이하여 흉금이 그리도 좁고 심성은 그토록 독한 것이오? 벗을 적으로 만든 그 자는 언젠가는 그 업보로 필히 벌을 받게 될 것이오.”
“저와 방연은 모두 귀곡자(鬼谷子)를 스승으로 모시고 다년간 병법을 배웠는데 그는 저보다 먼저 하산해서 위(魏) 나라 장군이 되었습니다. 혜왕(慧王)의 중용을 받은 그는 저를 혜왕에게 천거했다면서 위나라로 오라는 서찰을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위나라에 이르니 그는 저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손자병법> 13편을 쓰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손자병법>은 저의 선조인 손무(孫武)의 저서라 귀곡자 선생께서 별도로 저에게만 그 병법의 내용을 전수하셨거든요. 제가 <손자병법>을 다 써서 넘기자 방연은 서신 위조를 통해 저를 제나라의 첩자라고 모함하고 혜왕을 부추켜 저에게 빈형(臏刑)을 내리게 하여 저를 이렇게 걷지도 못하는 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백령(伯靈)이라는 기존의 이름을 빈(臏)으로 개명하고 미친 척하면서 돼지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돼지를 기르는 한 여인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묵자(墨子) 선생과 선생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아마도 이번 생은 돼지와 함께 했을 것입니다.”
“묵자선생께 참으로 감사한 일이오. 만약 묵자선생께서 제자인 금활리(禽滑厘)를 보내 그대를 구하고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떻게 그대의 상황을 알 수 있었겠소? 사실 처음 그대를 봤을 때 엄청난 마음의 진동을 느꼈소. 사람모양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신도 아닌 그대가 바닥에 앉아서 걷지도 못하고, 정말로 마음이 너무 아팠소. 하여 반드시 그대를 구조해서 제나라로 모셔 가리라 속으로 다짐했소.”
“다행히 선생께서 저를 사전에 마차의 좌석 아래에 숨기고 금활리를 시켜 제가 이미 우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한 현장을 만들었기에 방연의 눈을 속이고 무사하게 제나라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참으로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손빈과 순어곤은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금방 임치에 이르렀다. 순어곤은 심사숙고 끝에 먼저 손빈을 제나라 대장군 전기(田忌)의 저택에 머물게 했다. 그는 자신보다 전기가 손빈을 제나라 위왕(威王)에게 천거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군사를 모르는 자신이 천거하면 제위왕이 손빈의 재능을 쉽게 믿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순어곤의 안목을 믿은 전기장군은 손빈을 상빈 모시듯 공경하며 매일 최상의 음식으로 정성껏 대접하고 틈만 나면 손빈과 병법을 논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전기는 손빈 지략의 깊이를 알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방연이 손빈을 암해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손빈에 감복한 전기는 손빈과 막역지교를 맺었다. 그리고 어느 하루, 경마장에서 돌아온 전기가 손빈에게 하소연했다.
“대왕은 전국적으로 최고의 경주마를 가지고 있어서 어느 등급의 경마 경주에서든지 내 말은 모두 대왕의 말을 이기지 못하네. 번마다 패하니 기분이 엉망이네.”
손빈은 경마규칙을 자세하게 묻더니 웃으며 말했다.
“다음 번 경주에서 지금까지 손해본 모든 것을 돌려받을 정로로 크게 걸게.”
전기가 쓴 웃음을 지었다.
“내 말이 대왕의 말을 이길 수만 있다면 대왕께서 더는 나와의 경마에 열중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
“내 말만 따르면 반드시 이길 것이네!”
손빈의 말에 전기는 반신반의했다.
또 경마 날이 되었다. 손빈이 전기의 옆에 다가서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네의 3위 말과 대왕의 1위 말을 달리게 하고 자네의 1위 말과 대왕의 2위 말을 경주하게 한 다음 자네의 2위 말과 대왕의 3위 말을 달리게 하면 3판 2승, 자네의 승리가 아닌가?”
전기는 그제서야 크게 깨닫고 신심 가득히 경마에 갔다. 반나절도 되기 전에 전기 장군은 희색이 만면해서 돌아와 신나서 말했다.
“나는 천 일(鎰, 1일=24냥)의 황금을 걸었네. 이번 한 판에 완전 대박 났네. 경마 경주에서 진 대왕께서 기운도 없으시고 내 뒤에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껴 어떻게 된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으셨네. 그래서 그 기회에 자네를 대왕께 천거했더니 대왕은 자네가 전씨의 자손이고 또 위왕과 방연의 박해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내일 자네를 만나겠다고 하셨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