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6 10:57:39 출처:cri
편집:李仙玉

[맹자 편-1] 휴처, 그리고 인의

(사진설명: 맹자의 화상)

왕도정치의 제창자 맹자

전국(戰國)시기의 유명한 사상가이자 유가(儒家)의 대표인물인 맹자(孟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民爲貴) 사직이 그 다음이며(社稷次之) 군주는 가볍다(君爲輕)”라는 민본사상을 제출하고 지배자들의 책임은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라는 왕도정치를 주장했다.

맹자가 제출한 수많은 이론 중 ‘목숨을 버릴지 언정 의로움을 따른다(捨生取義)’와 ‘부귀를 가졌어도 부패하지 않고(富貴不能淫), 가난해도 포부를 버리지 않고(貧賤不能移)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는다(威武不能屈)’는 등 사상은 많은 중국인들 인생의 신조와 처세의 원칙이 되었다.

과장된 비유와 도도한 웅변, 웅장한 기세로 ‘인정(仁政)’학설과 ‘성선(性善)’학설을 설명한 그의 저서 <맹자>는 문학적인 색채를 다분히 띄는 ‘사서(四書)’중 하나이다.

왕도정치를 주장한 맹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휴처, 그리고 인의

밝은 달이 뜬 밤이었다. 달빛이 굴뚝처럼 좁은 창문으로 비쳐 들어와 맑은 물이 침대를 흐르는 듯했다. 맹자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이튿날 또 자신의 이상을 알리려 나가야 했으니 말이다. 곁에서 쌕쌕 코를 골며 잠든 아내의 갸름한 얼굴은 달빛이 어려 유난히 하얗고 수려해 보였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낀 맹자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며칠 전 무슨 영문인지 나는 마음이 불안해 나서 모친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다.

어머님, 이(李)씨가 교양이 부족하니 휴처(休妻)해야 하겠습니다.

휴처는 고대 중국에서 아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남편이 수세를 써주고 친정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을 말한다.

맹자의 모친이 놀라며 물었다.

무슨 말이냐? 나는 네 아내가 괜찮은데. 휴처하려면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

어제 점심 책을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가 거좌(踞坐)한 아내를 보게 되었는데 두 다리를 벌리고 앉은 모양이 정말로 꼴불견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교양이 없는 여자를 참을 수 없습니다.

서리가 내린 듯 차디찬 얼굴을 한 모친이 정색해서 말했다.

교양이 없는 사람은 네 아내가 아니라 너다.

내가 놀라서 물었다.

네? 제가 어째서 교양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군자는 방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노크하고 방안에 사람이 있는지를 물어야 하며, 방안에 들어갈 때 눈을 내리 깔고 두리번거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예기>에 이렇게 정한 것은 방안에 있는 사람에게 몸가짐을 바르게 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이다. 오늘 네 아내가 방안에서 쉬고 있는데 네가 인기척도 내지 않고 들어갔기 때문에 너가 들어오는 줄 모른 네 아내가 우아하지 못한 모양을 너에게 보이게 된 것이다. 하나 물어보자. 홀로 있을 때 너도 편안하게 쉬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 곁에 다른 사람이 없이 홀로 있을 때에도 너는 항상 옷깃을 바로 하고 단정하게 앉아 있느냐? 흥, 한 사람에게 불만이 있으면 아무리 예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이다. 누구의 꼬투리를 잡기야 쉽지, 내가 보기에 너는 네 아내에게 싫증이 났구나. 생트집을 잡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난처해진 나는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다. 모친이 말을 이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누구든 너와 함께 살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네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면 휴처를 당한 네 아내가 친정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냐? 네 아내가 정말 휴처를 당할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질렀느냐?

모친은 참으로 대단하시다. 휴처가 나의 구실인 줄을 금방 아시니 말이다. 모친을 위해서 아내와 계속 살아야 하겠다. 아무튼 나는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녀야 하니 아내가 집에서 모친을 봉양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몸을 한 번 뒤척인 맹자는 골치 아픈 사적인 문제를 접어두고 이번에는 천하를 근심하기 시작했다…

전란이 끊이지 않고 들에 시신이 가득하니, 이게 무슨 세상인가? 군주들은 왜 나의 인정(仁政)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가? 제(齊)나라 왕은 모든 심혈을 국토확장에만 쏟고 있어서 어진 정치에 관한 나의 학설을 귓등으로 들으며 나의 권고를 무시하고 연(燕)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바람에 나는 인사도 없이 제나라를 떠났다. 나는 송(宋)나라도 찾아갔는데 송나라는 또 호시탐탐 송나라를 노리는 초(楚)나라에 대응하느라 어진 정치를 펼 여유가 없었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제후국들 중 유독 등문공(文公)만이 인정학설에 관심을 보였는데 등나라는 규모가 엄청 작은데다 당장 제나라에 먹힐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니 등나라에서 어찌 나의 이상을 펼치겠는가? 에이, 설마 이 세상에서 어진 정치를 할 대국의 군주는 한 명도 없다는 말인가?

이번에 나는 위(魏)나라 혜왕(惠王)을 찾아가야 하겠다! 방연(龐涓)도 죽고 심지어 태자 신(申)도 생포된 후 자결했으니 혜왕이 아직도 그렇게 전쟁을 좋아하지는 않겠지.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이 2백년의 전란이 이제 끝날 때도 됐다.

맹자가 작은 창문을 쳐다보니 밝은 달빛에 붉은 빛이 아른거려 선혈이 흐르는 듯하고 피비린내가 공중에서 가볍게 일렁이는 듯 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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