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7 10:36:53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고개지 편: 제2회 人物傳神의 대가

(사진설명: 고개지의 그림작품 '여사')

제2회 人物傳神의 대가

준마 위 군장차림의 무장(良馬旣閑)

몸에 화려한 갑옷 걸쳤네(麗服有暉)

왼손엔 궁노 번약을 들고(左攬繁弱)

오른 손은 활 망귀 위에 얹었네(右接忘歸)

바람처럼 넓은 벌판을 달리니(風馳電逝)

금방 사라지는 그림자도 밟네(躡景追飛)

웅장한 그 기개 산천을 삼키고(凌中原)

빛나는 그 풍채 벌판에 가득하네(顧盼生姿)

고개지는 혜강(嵆康)이 혜희(嵆喜)에게 써 준 사언시(四言詩) <증수재입군(贈秀才入軍)>을 읽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혜강의 사언시는 참으로 독보적이다! 우뚝하고 웅장하며 수려한 건안(建安)의 기개가 들어 있는 그의 시는 모두 그림 그 자체이다. 이 시만 봐도 산천을 삼키는 혜희의 기개와 벌판에 가득한 혜희의 풍채를 그릴 수 있다.”

고개지가 시를 읊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견지(絹紙) 위에는 살같이 달리는 준마가 나타나고 이어 화려한 군장차림에 왼 손에 활을 들고 오른 손에 화살을 잡은, 멋지고 준수하며 용맹한 기개의 젊은이가 말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지가 혜희의 눈빛을 어떻게 그리면 혜희의 풍채를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 있는데 상서령(尙書令) 배해(裵楷)가 찾아왔다.

“숙즉(叔則), 어서 와서 혜강의 시의도(詩意圖)를 보십시오.”

고개지의 말에 배해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 혜희의 그림 중 눈이 아직 그려지지 않은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장강, 그대는 인물을 그리는데 항상 눈을 마지막에 그려 어떤 때는 몇 년 후에야 눈을 그린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한 인물을 절묘하게 그리는 데는 몸이나 얼굴 모양하고는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듯 잘 그리는 관건은 오직 눈에 있습니다. 그래서 눈을 그릴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인물의 정신적인 면과 성격적 자질을 완전히 파악하고 나서야 눈을 그릴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듯 잘 그리는 관건은 눈에 있다’는 고개지의 원 말은 ‘전신사조(傳神寫照), 진재아도중(盡在阿堵中)’이다. 여기서 아도(阿堵)는 위진(魏晉) 시기의 구어체로 ‘이것’을 말하며 ‘이것’은 눈을 말한다. 고개지는 인물의 마음을 그리고 그의 정신세계까지 그림으로 그리는 관건은 눈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배해는 혜희의 그림 옆에 또 다른 그림이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보며 또 물었다.

“이것들도 모두 혜강시의도(嵆康詩意圖)입니까? 이 그림은 나도 알만 합니다. 혜강이 오현금(五鉉琴)을 타네요. 그렇지요?”

고개지가 탄식했다.

“그렇지요. 오현금을 타는 손 ‘수휘오현(手揮五鉉)’은 그리지 쉽지만 남으로 돌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는 눈 ‘목송귀홍(目送歸鴻)’을 그리자면 아주 어렵습니다. 기러기를 바라보는 눈을 그리려면 그 사람의 눈빛을 그려야 하니 말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눈빛을 통해 보여주어야 하니 참으로 쉽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휘오현(手揮五鉉)’과 ‘목송귀홍(目送歸鴻)’은 모두 혜강의 사언시에 나오는 글귀이고 고개지는 이런 미묘한 글귀를 살아 있는 듯 생생한 인물화로 그리려 한 것이다. 고개지 본인이 시인이 아니라면 시의 경지를 깨달을 수 없고 그러면 시의 깊은 뜻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으며 나아가서 인물의 정신세계는 더욱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고개지는 그림을 감상하는 배해를 자세히 살피더니 웃으며 말했다.

“숙즉, 오늘 그림을 감상하려 오신 겁니까 아니면 초상화를 그리려 오신 겁니까?”

“다른 사람들의 초상화를 좀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나의 초상화를 남겨야 할지 정하겠습니다.”

고개지가 두 폭의 초상화를 꺼내서 건네주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외적인 모양과 내적인 세계가 모두 잘 그려졌는가요?”

첫 번째 그림을 본 배해가 놀라서 외쳤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사유여(謝幼輿)가 아닙니까? 얼핏 봐도 사유여인줄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산천에서 노닐며 즐거워하는 그의 정신적 세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그대는 그를 바위 위에 그리지 않았습니까? 사유여 말고 누가 이토록 바위를 좋아하겠습니까? 이 절묘한 구상은 그대가 생각한 것입니까?”

사유여는 진(晉)나라 때의 관리이자 명사(名士)인 사곤(謝鯤)의 자이다.

고개지가 배해의 말에 대꾸했다.

“여유는 ‘산과 물 사이에서 노니는 자신의 즐거움이(一丘一壑) 유량을 초과한다(自謂過之)’고 늘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뜻과 취미와 풍채는 모두 산수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를 바위 속에 그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의 정신적 자질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배해가 머리를 끄덕였다.

“산과 바위가 함께 하니 사유여의 개성과 취미가 종이 위에 그대로 펼쳐져 있습니다.”

확실히 그러했다. 사곤의 성격적 특징은 산수를 좋아하고 등산을 즐기는 것이었는데 고개지는 환경의 선염(渲染)으로 사곤의 성격을 부각해서 보여준 것이었다.

두 번째 그림을 본 배해는 놀라서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멍해 있었다.

고개지가 물었다.

“누군지 알겠습니까?”

배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물론 알지요. 그대의 상사 은자사(殷刺史)가 아닙니까? 은자사의 먼 한 쪽 눈을 이렇게 살아 있는 듯 그리고 그러면서도 보기 싫지 않게 그렸으니 애를 많이 썼군요.”

“내가 은자사의 초상화를 그리려 하니 그는 자신이 못 생겼다고 나한테 그런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은 공께서는 내가 눈을 잘 그리지 못할 것 같아 그러시죠?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눈동자를 검게 그리고 비백(飛白)의 수법을 가미하면 실구름이 달을 가린 듯 괜찮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숙즉, 보십시오. 그렇게 그리니 볼만 하지 않습니까?”

“볼만한 게 아니라 완전 대단합니다! 장강, 그러니 사태부(史太傅)께서 당신의 그림은 고금에 제일이라고 ‘유사이래 이런 사람이 없었다(蒼生以來未之有也)’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명실상부합니다.”

“그럼 그대의 초상화를 내가 그려도 되겠습니까?”

배해가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본 고개지는 당장 견지(絹紙)를 펴 놓고 말했다.

“나는 벌써 그대의 정신적 풍모를 잘 새기고 있어서 그대의 초상화를 그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후에 배해의 초상화는 고개지 인물화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배숙즉의 정신세계를 생동하게 그렸다. 참으로 절묘하다!”고 고개지의 그림을 칭찬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묻기도 했다.

“배숙즉은 멋진 기개를 가졌는데 왜 그의 얼굴에 세 오리의 털을 그렸습니까?”

그 말에 고개지는 이렇게 해석했다.

“배숙즉은 잘 생기고 성격도 명랑하며 식견이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 세 오리의 털을 그린 것은 그의 넓은 식견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그 사람이 그림을 자세히 보니 과연 그 세 오리의 털이 없었더라면 배숙즉의 식견을 보여줄 수 없었고 털이 그려졌기에 그의 정신적 세계가 남김없이 드러났다. 배숙즉의 식견은 그 털 세 오리에 의해 전부 얼굴에 드러났던 것이다.

고개지는 이렇게 세부적인 것을 잘 활용했기에 그가 그린 인물화는 모두 그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듯 했다.

당시 대안도(戴安道)라는 화가가 있었는데 그도 절묘한 인물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당시의 문장가인 유화(庾龢)가 찬물을 끼얹었다.

“자네가 그린 인물은 지나치게 속되네. 그것은 자네가 세속의 정에 얽혀있기 때문이네.”

대안도가 불복했다.

“누가 속세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고대의 은둔자 무광(務光)만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아니네. 고개지의 인물화는 자네와 다르네. 그것은 고개지가 치절(痴絶)이라 불릴 정도로 천진난만하기 때문이네. 순진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이 그린 그림은 속되지 않는 법이네.”

여화의 말에 대안도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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