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맹자의 동상)
제3회 호연지기, 그리고 군신관계
인생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앞길이 보이지 않다 가도 또 갑자기 운수가 트이기도 한다.
위혜왕의 뒤를 이은 양왕(襄王)은 맹자의 인정학설을 싫어했다. 맹자도 양왕이 위엄이 없고 군자답지 않다고 여겨 1년여 간 머물던 대량(大梁)을 떠났다. 발 아래에는 사면팔방으로 통하는 길이 나 있었지만 맹자는 사면에 산이 둘러서서 자신의 앞길을 꽉 막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제자 공손추(公孫醜)가 말했다.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붕어하고 새 왕이 직하학궁(稷下學宮)의 문사(文士)들을 모두 대부(大夫)로 봉했습니다. 제나라에 가서 인정학설을 선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맹자도 제나라와 같은 대국만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 두 번째로 임치(臨淄)로 갔다.
새로 즉위한 제나라 선왕(宣王)은 맹자의 ‘군주원포주(君主遠庖廚)’학설을 듣고 또 맹자가 자신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진 왕이라고 평가하자 맹자에게 관직을 내렸다. 공손추가 말했다.
“만약 스승님께서 제나라의 경상(卿相)을 맡으셔서 어진 정치를 펼칠 수 있으시면 제나라가 이로써 세상을 제패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가령 그렇게 된다면 스승님께서는 마음이 흔들리십니까?”
“나는 나이 마흔이 되자 흔들림이 없었다.”
“그럼 스승님께서는 무사 맹분(孟賁)보다 더 대단하십니다.”
“나의 제자 고자(告子)는 나보다도 더 일찍 마음의 흔들림이 없었느니라.”
“스승님과 고자는 어떻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십니까?”
공손추의 물음에 맹자가 대답했다.
“아주 간단하다. 자신의 뜻을 다지고 자신의 기를 남용하지 않으면 된다. 뜻을 모으면 기가 성하고, 기를 모으면 뜻이 성하게 된다. 권세에 아부하는 사람들은 바로 기가 마음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럼 스승님의 가장 뛰어난 것은 무엇이십니까?”
“나는 언사에 익숙하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움에 뛰어나느니라.”
공손추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호연지기란 무엇입니까?”
“이건 좀 어렵다. 호연지기는 가장 크고 가장 강한 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호연지기는 바르고 곧은 성품으로 키우고 피해를 주지 않으면 천지간에 가득하게 된다. 기(氣)는 의(義), 도(道)와 매칭되어 의와 도가 없으면 기는 힘을 받지 못하게 된다. 호연지기는 의가 마음에 쌓이면서 생성되는 것이지 의가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외적인 힘에 의해 호연지기를 키울 수 없느니라. 송(宋)나라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벼가 늦게 자라자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벼대를 뽑아 놓았는데 결국 벼가 다 말라 죽었다. 발묘조장(拔錨助長)은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됨을 말하는데 호연지기도 마찬가지로 목적 달성에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핵심은 내심에 인의를 축적해야 하는 것이다.”
“스승님, 대장부는 반드시 호연지기를 키워야 하지요? 종횡가(縱橫家) 경춘(景春)이 스승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이 노하면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그들이 가만히 있으면 천하가 태평한데 설마 그들을 대장부라 할 수 없느냐고 말입니다. 그 질문에 스승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나는 소진과 장의는 모두 대장부라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권력자에게 굴복해서 부귀와 명예를 얻었기 때문이다. 대장부라면 부귀를 가졌어도 부패하지 않고(富貴不能淫), 가난해도 포부를 버리지 않으며(貧賤不能移)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威武不能屈). 또 엄격한 사람됨의 원칙을 지켜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己所不欲)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며(勿施於人), 말과 행동을 같이 하고 약속을 지키며, 무례한 대접을 거절하고 불의의 재물을 탐하지 않으며,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대장부들은 모두 당연하게 호연지기를 키우는 사람들이다.”
맹자의 말에 공손추는 마음 깊이 맹자를 존경하게 되었다.
어느 날, 맹자가 제선왕을 알현하려고 준비하는데 마침 선왕이 보낸 사람이 도착해서 선왕의 말을 전했다.
“대왕께서 감기에 걸리셔서 선생을 만날 수 없으니 내일 아침 조정에서 만나자고 하십니다.”
그 말에 맹자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몸이 불편해서 내일 아침 조정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맹자가 동곽(東郭)대부의 집에 문상을 가겠다고 하자 공손추가 말했다.
“스승님, 병환을 빌어 대왕의 부름을 거절하셨는데 동곽대부의 댁에 문상을 가셔도 괜찮습니까?”
“병에는 어제 걸렸고 오늘은 병이 다 나았는데 왜 문상을 가지 못한다는 말이냐?”
맹자가 집을 나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제선왕이 문병차 보낸 사람이 어의를 데리고 왔다. 맹자의 사촌동생인 맹중자(孟仲子)가 손님을 맞이했다.
“스승님께서 차도가 좀 있으시자 조정에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맹중자는 사람을 시켜 빨리 맹자를 쫓아가서 조정에 나가게 하라고 말했다. 맹자는 조정에 나가지 않고 제나라 대부 경추의 집으로 갔다.
경추가 상황을 알고 맹자에게 말했다.
“부자(夫子)와 군신(君臣)은 아주 중요한 윤리 관계입니다. 부친과 아들 간에는 자애로운 은혜가 주를 이루고 군주와 신하 간에는 공경이 주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나라 왕께서 선생을 존경하는 것만 보고 선생께서 제나라 왕을 존경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제나라에는 대왕과 인의를 논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것은 그들이 마음속으로 대왕이 인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요순(堯舜)의 도가 아니면 대왕에게 감히 말씀을 드리지 않는다. 그러니 제나라에는 나만큼 대왕을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
“<예경(禮經)>에 이르기를 부친이 부르면 아들은 대답하기 전에 먼저 몸을 일으키고 군주가 부르면 신하는 수레를 준비하기 전에 벌써 출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원래 대왕을 알현하러 가려 했는데 대왕께서 부르시니 오히려 가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제(禮制)에 맞습니까?”
“증자(曾子)의 말을 기억하느냐? 증자는 진(晉)과 초(楚)가 가진 부는 그 누구도 비할 바가 없지만 그들은 그들의 부를 가지고 자신은 자신의 인(仁)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그들의 작위(爵位)를 가지고 자신은 자신의 의(義)가 있으니 자신이 그들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말했다. 조정에서 제일 존귀한 것은 작위이고 시골에서 제일 존귀한 것은 수명이며 군주를 도와 천하를 다스리는 데서 가장 존귀한 것은 덕행이다. 큰 일을 하는 군주는 신하를 부르지 않고 신하의 지략이 필요하면 몸소 신하를 방문하며 이를 일러 덕을 존경하고 인(仁)을 사랑한다 말하느니라. 지금의 군주는 말을 잘 듣는 신하만 좋아하고 자신을 가르치는 신하는 좋아하지 않는다. 상(商)나라 군주 탕(湯)왕은 종래로 재상 이윤(伊尹)을 부르지 않았고, 제(齊) 나라 군주 환공(桓公)도 감히 재상 관중(管仲)을 부르지 못했다. 관중도 감히 부르지 못하는데 하물며 관중을 우습게 보는 나를 부르다니?”
경추는 끝내 깨달았다.
“스승님께서 이토록 고결하고 강직하시니 스승님을 중용하는 사람이 없구나. 장의와 소진은 군주의 비위를 맞추고 군주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기에 그들의 합종(合從)과 연횡(連衡)의 모략이 성행하고 소진은 심지어 6국의 재상을 맡고 있구나. 그래서 우리 스승님은 장의와 소진을 경멸하시는구나.”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