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8 11:28:22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진-8] 황교: 고풍스럽고 찬란한 동네

(사진설명: 황교고진의 일각)

중국의 유명한 고진(古鎭) 시리즈 중 여덟 번째는 고풍스럽고 찬란한 동네 황교(黃橋, Huangqiao)이다. 황교는 고풍스러운 5백년전의 거리를 오늘까지 지켜온다. 어젯날 골목과 많은 고건물, 독특한 다리 등이 황교의 찬란했던 어제를 보여준다.

황교란 북과 남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 의미에서 딴 이름이고 항일전쟁때는 이 부근에서 가장 큰 동네이기도 했다. 천여년전의 북송(宋)때에 동네가 형성되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30헥타르의 부지에 옛동네가 보전되어 옛골목 24갈래와 절 3개, 사당 7개가 있고 그밖에도 외적에 맞서 싸운 고대의 영웅 악비(岳飛)의 흔적과 800여년전 명(明)조 황제가 직접 쓴 액자 “덕행(德行)” 등이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완정하게 보전된 유적으로는 강소북부의 첫 사당으로 인정되는 하씨종사(何氏宗祠)이다. 오백년이란 오랜 세월에도 하씨가문의 어제를 보여주고 인간세상의 풍상고초를 보아온 하씨종사는 오늘까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다.

사당의 주요 건물인 사당대청은 오늘도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면서 소박하게 자리잡고 고풍스럽고 퇴색한 건물을 통해 중국 고건물의 매력과 중국의 건축문화의 찬란함을 말해준다.

황교는 항일전쟁때 근거지로써 역사에 기록된 황교전역을 치르면서 그에 관한 유적도 많이 남겼다. 가장 대표적인 항일혁명유적으로는 신사군(新四軍) 황교 전투 기념관이다.

황교 전투 기념관은 동산과 연못, 대나무, 교목이 어울린 가운데 대들보와 기둥에 조각과 그림이 화려하고 처마가 날아갈듯한 건물, 꼬불꼬불한 복도가 조화로운 정원에 자리잡고 있다.

황교에는 또한 신사군 강소 북부 지휘소 전선 지휘소와 신사군 제3종대 사령부 유적, 황교 전투 혁명열사능을 비롯해 전쟁과 관련된 역사문화 유적도 많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황교에서는 역대로 많은 인물들이 났다. 하씨가문에서만도 황교가 형성되어 지금까지 천여년동안 진사 4명, 거인 10명, 수재 100여명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천여년전의 송조때 효자에서 시작해 오백년전 명조때의 주지스님, 근대에 와서 신해(辛亥)혁명의 원조, 중국 현대 지질학자의 비조, 생명과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황교출신이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송조때 효자는 고흔(顧昕)이라 하는데 50년동안 매일 아침 모친에게 안부를 드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모친이 병환에 시달릴때는 치유될때까지 시종 밤낮으로 모친의 침대를 지켰고 모친의 두 눈이 실명되자 시력이 회복될때까지 슬피 울었다고 한다.

송조의 황제도 그에게 효자라는 이름을 하사했고 그로부터 오백년이 지난 먼 훗날 명조의 황제도 시를 써서 그를 표창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를 기념해 황교공원에 고효자정(顧孝子亭)을 세웠다.

황교에서는 항일군대를 위해 만든 황교소병(燒餠)이라고 하는 기름떡이 유명하다. 이 떡은 역사와 문화, 경제의 유대로 부상해 황교에서는 해마다 황교소병축제가 벌어진다.

(끝)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