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5 10:57:45 출처:cri
편집:李仙玉

[굴원 편-3] <회사(懷沙)>와 멱라수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굴원)

달빛 한 점 없고 바람만 부는 어두운 밤, 멀리서 천둥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영도(郢都) 교외의 한 별장에는 촛불이 흐느적거리고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송옥(宋玉)은 촛불을 빌어 스승인 굴원의 작품 <이소(離騷)>를 읊조렸다.


무릎을 꿇고 옷섶을 헤치고 말씀을 올리니(敷衽而陳辭兮)

이에 환해진 나는 이미 중정을 얻었네(耿吾旣得此中正)

네 마리의 용이 끄는 봉황 수레를 타고(駟玉以乘兮)

바람에 티끌을 날리며 올라가네(埃風餘上征)

아침에 창오를 떠나(朝發於蒼梧兮)

저녁 녘에 현포에 이르러(夕餘至乎縣圃)

이곳 영쇄에 잠시 머물려 하는데(欲少留此靈鎖兮)

날은 벌써 저물어 가네(日忽忽其將暮)

나는 희화에게 속력을 늦추게 하여(吾令羲和節兮)

해가 지는 엄자산에 급히 오르지 말라 하였네(望崦嵫而勿迫)

길은 아주 길고 까마득히 멀어도(路漫漫其修遠兮)

나는 위아래로 찾아보려 하네(吾將上下而求索)

스승의 시를 읊으며 방안을 거니는 송옥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스승님의 문학적 재능은 고금에 독보적이고 스승님의 애국심은 또 얼마나 돈독하며 스승님의 정치적 안목은 또 얼마나 깊고 넓은가. 하지만 스승님은 축출당하셨고 초나라도 그로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승님의 권고를 듣지 않은 초회왕(楚懷王)은 진(秦)나라에서 객사하고 초회왕의 뒤를 이은 초왕도 스승님의 충고를 듣지 않아 진나라 군사가 바로 성밖에 이르러 영도가 위급하다. 아, 곧 나라가 망하겠구나.”

송옥은 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도 스승님의 제자이고 문학적 재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나는 초왕의 어용 문인으로 전락되어 매일 ‘대왕의 웅풍(大王之雄風)’이니 ‘서인의 자풍(庶人之雌風)’이니 하는 사부(辭賦)만 읊으며 풍월을 논하고 무병신음(無病呻吟)만 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견해에서는 아무런 주관도 없이 앵무새처럼 남의 말만 따라 하니 정말로 스승님에게 송구스럽구나!”

송옥이 비탄에 잠겨 있는데 집사 송빈(宋彬)이 비틀거리며 달려 들어왔다.

“큰 일 났어요. 진나라 군대가 영도에 쳐들어왔대요!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해요?”

송옥은 벌써부터 이런 날이 있으리라 짐작했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꾸했다.

“우리 밤을 타서 상수(湘水)로 스승님을 찾아가자.”

송옥은 길을 만나면 마차를 타고 물을 만나면 배를 타면서 어렵게 굴원이 머물고 있는 산중 마을에 이르렀다. 깊은 산중이라 소식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굴원은 그때까지도 영도가 진나라 군대에 함락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굴원은 현지인들에게 자신이 창작한 <산귀(山鬼)>를 가르치며 산신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모퉁이에 누군가 사람이 있는 듯(若有人兮山之阿)

벽려 옷에 세삼덩굴 띠 두르고(被兮帶女)

정겨운 곁눈질에 웃음진 모습(旣含睇兮又宜笑)

아리따운 그대는 나를 좋아 하시여라(子慕予兮善窈窕)

붉은 무늬 표범을 타고 얼룩 살쾡이 거느리며(乘赤豹兮從文狸)

백목련 수레에 계수나무 깃발 걸었네(辛夷車兮結桂旗)

석란 옷 입고 두형의 띠 두르고(被石蘭兮帶杜衡)

향기 나는 꽃 꺾어 사모하는 임에게 드리리(折芳馨兮遺所思)

<산귀>를 듣는 송옥의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스승님께 사랑하는 이가 있구나. 그래서 산귀신을 이토록 아름답고 정답게 묘사했구나. 아, 스승님의 기분이 좋으시니 나라가 망한 아픈 일은 잠시 말씀 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마음은 국도와 이어졌는지 굴원은 <산귀>를 다 부르고 머리를 들자 송옥이 보이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당황한 어조로 급하게 물었다.

“네가 여긴 어찌된 일이냐? 무슨 큰 일이 난 게로구나! 얼른 말하거라!”

송옥이 떠듬떠듬 대답했다.

“별로, 별로 큰 일이 아닙니다.”

굴원은 송빈을 보자 이번에는 송빈의 옷자락을 잡고 다그쳤다.

“얼른 말하거라, 무슨 일이 있었느냐? 얼른!”

굴원의 말에 송빈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굴 대부님, 초나라가 망했습니다. 영도가 진나라 군대에 격파되었습니다!”

송빈의 말이 끝나자 굴원은 눈빛이 흐려지고 정신을 잃으며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송옥이 급히 굴원의 몸을 감싸 안았다. 굴원의 앙상한 몸에 손이 닿는 그 순간 송옥은 이제 스승님이 더는 그 어떤 마음의 타격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송옥은 눈물을 머금고 굴원을 방석 위에 비스듬히 앉게 했다. 이 때 한 처녀가 미음을 가지고 들어와 조금씩 굴원의 입에 떠 넣었다.

좀 지나서 정신을 차린 굴원은 가슴을 치며 통탄했다.

“내가 금방 <애영(哀郢)>을 썼는데 영도가 그 호랑이들에게 먹히다니.”

그러면서 굴원은 시를 읊었다.

사의 끝에 이르기를(亂曰):

머리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曼餘目以流觀兮)

언제면 영도에 한 번 가볼 수 있을까(翼一反之何時)?

새는 아무리 멀리 날아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鳥飛反故鄕兮)

여우는 죽을 때 꼭 머리를 굴 쪽으로 두노라(狐死必首丘)

죄가 없어도 추방을 당하니(信非吾罪而棄逐兮)

어느 밤과 낮에 고향을 잊었던가(何日夜而忘之)?

다 읊조린 후에도 굴원의 통곡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송옥이 굴원을 위로했다.

“지금 다시 영도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어디 몸 둘 곳 하나 없겠습니까? 스승님께서 원하시면 제(齊)나라로 가시지요. 제나라는 스승님을 객경대부(客卿大夫)로 모실 것입니다. 아니, 잘못하면 스승님을 상국(相國)으로 모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굴원이 화를 냈다.

“네가 가려면 갈 것이지 왜 하필 나에게 말하는 거냐! 나는 초나라의 귤나무이기에 ‘자리를 옮기지 말라는 천명을 받고(受命不移) 여기서 깨달음이 있어 꿋꿋하게 혼자 서 있다(蘇世獨立)’. 그런데 다른 나라로 옮기면 귤나무가 귤나무겠느냐?”

굴원은 사흘 낮 사흘 밤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송옥에게 자신의 신작 <회사(懷沙)>를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이른 아침, 동쪽 하늘에 붉은 놀이 지자 굴원은 몸을 일으켜 멱라강(汨羅江)으로 달려가 핏빛의 놀을 바라보며 <회사>를 소리 높이 읊었다.


넘실거리는 원수와 상수는 두 갈래로 굽이쳐 흐르고(浩浩沅湘分流兮)

닦아 놓은 길은 깊숙이 가리워져 멀고도 끝이 없네(修路幽蔽道遠忽兮)

가슴에 품은 뜻은 비할 데 없이 웅장하지만(懷質抱情獨無匹兮)

백락이 죽었으니 천리마를 어찌 알아 보리오(伯樂旣沒驥焉程兮)?

만민이 한 세상에 태어나 각기 제자리가 있거늘(民生稟命各有所錯兮)

마음을 정하고 뜻을 넓히면 내 무엇을 두려워하랴(定心廣志餘何畏惧怕兮)?

굴원은 <회사>를 다 읊조리고 비분에 차서 돌 하나를 그러안고 맑은 멱라수에 뛰어들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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