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6 10:34:19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도연명 편: 제4회 무릉도원을 꿈꾸다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도연명)

적씨가 돌아간 후 도연명의 노후는 더욱 처량해졌다.

이 때 절친 둘이 도연명을 찾아왔다. 그는 무현금을 타면서 두 벗을 위해 슬픈 시 <원시초조시방주부등치중(怨詩楚調示龐主簿鄧治中)>을 읊었다. 이 시의 제목을 풀이하면 <원한의 시, 초나라 노래를 방주부와 등치중에게 보여주며> 이다.

하늘의 도는 깊고 또 아득하며(天道幽且遠)

귀신은 망망하고 캄캄하기만 하도다(鬼神茫昧然)

머리 땋아 올리고 착한 일 생각하며(結髮念善事)

애써 온 세월이 54년이로다(僶俛六九年)

약관에 세상 험한 일 만나고(弱冠逢世阻)

처음 결혼한 짝을 잃었도다(始室喪其偏)

불 같은 볕은 타는 듯 하고(炎火屢焚如)

명충과 물여우는 밭에서 우글거리는구나(螟恣中田)

비바람이 마구 불어와(風雨縱橫至)

거둬들인 곡식은 곳간에 차지 않는구나(收斂不盈廛)

여름날에 진종일 배를 주리고(夏日長抱飢)

추운 밤에는 이불도 없이 잠을 자노라(寒夜無被眠)

저녁이 되면 닭이 울기를 생각하지만(造夕思鷄鳴)

아침이 되면 해가 지기를 바라곤 한다오(及晨願烏遷)

자신 탓이라 어찌 하늘이야 원망하랴만(在己何怨天)

이별의 수심에 물려 눈앞이 처량하도다(離憂悽目前)

아아 이 몸 죽은 후의 명성이란(嗟身後名)

나에게는 뜬구름 같도다(於我若浮煙)

원통하고 북받쳐 홀로 슬피 노래 부르나니(慷慨獨悲歌)

종자기는 정말로 현명하였구나(鐘期信爲賢)

도연명은 소박하고 담담한 언어로 절친들에게 1년 사계절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자신의 경지를 토로했다. 그렇다고 도연명이 이런 삶을 후회한 것은 아니다. 마음의 자유를 갈망하는 이 시인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두 번 다시 벼슬길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어느 해였다. 강주 자사 단도제(檀道濟)가 몸소 찾아와서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도연명을 보고 권고했다.

“현인들은 세상을 살면서 천하에 도가 없으면 은둔하고 도가 있으면 벼슬을 했습니다. 오늘날 도가 있는 밝은 세상을 만났는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십니까? 저에게로 오십시오. 무슨 관직이든 말씀만 하시면 드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현인이 아닙니다. 저의 뜻과 취미는 현인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렇게 대답한 도연명은 단도제가 가지고 온 먹거리들을 모두 다시 돌려보냈다.

그럼 도연명의 정치적 이상은 무엇일까? 그 날, 무현금을 켜는 그의 마음은 날개라도 달린 듯 저 멀리 복사꽃 화사한 곳으로 날아갔다. 도연명의 백일몽은 너무도 재미 있었다. 복사꽃 만발한 그 마을에는 착취도, 압박도 없었고 사람들 모두가 밭에 나가 일하며 남녀노소 서로 친절하고 여유롭게 편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에 도연명은 놀라서 깼다. 그는 급히 붓과 종이를 준비해서 <도화원시(桃花源詩)>를 썼다.

진 나라 임금이 천하를 어지럽히니(氏亂天紀)

현자들이 세상에서 몸을 숨겼다네(賢者避其世)

네 사람의 은자가 상산으로 갔고(黃綺之商山)

그들 역시 이곳으로 피해 왔노라(伊人亦云逝)

간 자취 차츰 묻혀 사라지고(往跡浸復湮)

오던 길도 마침내 황폐해졌노라(來徑遂蕪廢)

서로 도와 농사에 힘 들이고(相命肄農耕)

해가 지면 편하게 쉬더라(日入從所憩)

뽕과 대나무 무성하여 그늘이 길고(桑竹垂餘蔭)

콩과 기장 때 맞춰 심는다네(菽稷隨時藝)

봄에는 누에 쳐서 비단실 거두고(春蠶收長絲)

가을에 벼가 익어도 세금 안 바치더라(秋熟靡王稅)

황폐한 길이 희미하게 틔고(荒路曖交通)

닭과 개가 서로 우짖는다(鷄犬互鳴吠)

제사도 여전히 옛 법대로이고(俎豆有古法)

입은 옷도 새로 지은 것 없다네(衣裳無新製)

아이들 마음대로 다니며 노래하고(童孺縱行歌)

반백의 노인들은 즐겁게 서로 찾는다(斑白歡遊詣)

풀 자라니 온화한 봄철인 줄 알고(草榮識節和)

나무 시들면 바람 찬 줄 아노라(木衰知風)

비록 달력 같은 기록은 없어도(雖無紀誌)

사계절 지나 한 해가 이루어지노라(四時自成歲)

편안하고 넉넉한 즐거움 있으니(怡然有餘樂)

지혜는 어디에다 쓰겠는가(於何勞智慧)

흔적 없이 가리워 진지 오백 년 만에(奇隱五百)

홀연히 신비의 세계가 나타났으나(一朝敞神界)

순박한 도원경과 야박한 속세 서로 맞지 않아(淳薄旣異源)

이내 다시 신비 속에 깊이 숨었노라(旋復還幽蔽)

묻건대 세상에 노니는 이들이여(借問遊方士)

속세 밖의 이 신비경을 어찌 알겠는가(焉測塵外)

바라건대 사뿐히 바람을 타고서(願言輕風)

높이 올라 나의 이상을 찾으리(高擧尋吾)

도연명은 자신의 이 <도화원시>는 후세에 별로 유명해지지 못하고 이 시를 위해 쓴 서문 <도화원기(桃花源記)>가 오히려 중국의 가장 아름다운 명문장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도화원기>는 천 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또 동양의 유토피아라 불리는 도연명이 묘사한 대동 사회 도화원은 서구의 공상적 사회주의 명작인 <유토피아>에 비해 천 년이나 앞섰다.

원가(元嘉) 4년(427년), 도연명은 가난과 질병 속에서 담담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그 때 그의 나이 63세였다.

벼슬을 멀리 떠나 전원에서 무릉도원, 대동사회를 원하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으니 도연명은 원망도 후회도 없었으리라.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