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3 09:06:32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가사협 편: 제1회 산초나무와 유전자 변형

(사진설명: 가사협과 <제민요술>)

농업의 대가 가사협

그가 쓴 <제민요술(齊民要術)>은 중국 최초의 농업과학서로 중국 고대 농업의 발전에 심원한 영향을 미친다. <제민요술>은 또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전하며 규모가 가장 큰 농업 백과전서이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고대 중국의 걸출한 농학자이자 관리인 가사협(賈思勰)이다. 가사협은 평생을 농업 연구에 바쳐 재배업과 임업, 축산업, 수산양식업, 농부산물 가공업 등 농업생산기술을 익히고 실천했으며 그 결과로 <제민요술>이라는 거작을 펴냈다.

“여름에 깐 병아리는 털 빛깔은 산뜻하지만 알을 잘 낳지 않고 가을에 깐 병아리는 털 빛깔은 어둡지만 알을 잘 낳는다”는 것은 가사협의 경험담이다.

농업의 대가 가사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산초나무와 유전자 변형

먼저 역도원(酈道元)이 <水經注>를 쓰고 이어 가사협이 <제민요술>을 쓴 북위(北魏)는 참으로 신기한 왕조이다! <수경주>와 <제민요술>은 각자 중국의 문명사에 굵은 한 획을 그었다. 그 중 가사협의 레전드 스토리를 들어보자!

북위의 효문제(孝文帝)가 붕어한 후 한(漢)족과의 동화를 향한 선비족(鮮卑族)의 발걸음은 멈춰서고 강성하던 나라도 몰락으로 나아갔다. 두락주(杜洛周)와 갈영(葛榮)의 난을 거치며 북방의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고양(高陽) 태수(太守) 가사협은 나뭇잎이 다 떨어진 뽕나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다. 뽕나무 한 그루에서는 오디 수십 곡(斛)은 날 터이니 말려두면 흉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며 가사협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뽕나무를 심으라고 권고한 일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뽕나무를 심었기에 오늘날 적지 않은 이재민들이 흉년을 그나마 무사하게 지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후에 <제민요술>을 쓸 때 반드시 <종상자(種桑柘)>편을 써야 하겠다. 그래서 여러 가지 뽕나무를 심는 방법과 번식기술, 오디의 채취와 저장 등 방법을 모두 자세하게 기록해야 하겠다. 그래야 후세 사람들도 뽕나무를 심어 흉년에 대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사협이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나리, 얼른 자택으로 가셔야 하겠습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가사협이 머리를 드니 집사인 가이(賈二)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가이는 주인이 다가오자 말을 이었다.

“나리의 사촌 형님께서 오셨습니다. 나리께서 요구하신 나무 묘목도 가지고 오셨습니다.”

가이의 말에 가사협은 기분이 좋아져서 집으로 달음박질했다. 사촌 형 가사성(賈思成)이 자신이 부탁한 산초 묘목을 가지고 온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해 가사협은 고향인 청주(靑州)에 있었는데 사촌 형의 정원에서 종래로 본적이 없는 꽃나무를 발견했다. 푸른 가지와 푸른 나뭇잎의 그 꽃나무는 밤하늘에 가득한 별무리를 방불케 했다. 호기심이 동한 가사협이 물었다.

“이건 무슨 꽃나무예요?”

사촌 형 가사성이 대답했다.

“이건 남방의 산초나무이다. 2년 전에 사천(四川)에서 묘목을 가져다 심었는데 생각밖에 이렇게 잘 자라는구나.”

“농서에 보면 산초는 추위를 타기 때문에 짚으로 감싸줘야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북방에서 산초를 재배하면 겨울에 얼어 죽을 수 있기에 북방은 산초에 적합하지 않은데 형님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런 산초를 이 북방에서 이렇게 잘 재배하다니요.”

“식물도 인간처럼 낯선 곳에 서서히 적응한다. 이 산초나무는 첫 해 겨울에 짚으로 감싸주었고 두 번째 해 겨울에는 짚으로 감싸주지 않아도 얼어 죽지 않았지 뭐냐.”

가사성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낀 가사협은 실험을 통해 사촌 형의 말을 증명하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가사협은 자신이 직접 하북(河北) 고양에서 산초를 심어보려고 사촌 형에게 서신을 보내 산초 묘목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가사성은 사촌 동생을 도와 가사협의 정원에 산초나무를 심었다.

“여기는 청주보다 더 추우니 산초가 살아난다 해도 다른 종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한 번 심어보자고 그런거예요. 전에 병주(幷州)에서 근무할 때 그 곳의 순무가 아주 크게 잘 자라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현지 농부들에게 그 비법을 물었더니 무슨 특별한 방법을 쓰지 않아도 잘 자란다며 병주는 특히 순무의 성장에 좋아서 다른 곳의 순무를 가져다 심어도 모두 크게 잘 자란다고 하더라구요.”

“그 지방의 풍토가 그 지방의 사람을 기른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아마도 그 지방의 토지에 적합한 그 지방의 식물도 있나 보다.”

“하지만 병주에서 마늘은 잘 자라지 않아요. 병주에서 마늘을 심을 때는 모두 조가(朝歌)의 마늘 종자를 가져다 심는데 조가에서 가져온 마늘 종자가 아무리 탐스러워도 자라난 마늘 싹은 가늘고 짧으며 마늘 쪽도 아주 작아요. 정말로 ‘회남에서 자라면 귤이 되고(生於淮南則爲橘) 회북에서 자라면 탱자가 된다(生於淮北則爲枳)’던 안자(晏子)의 말이 딱 맞더라니깐요. 땅도 땅마다 다르네요.”

가사협의 말에 가사성이 수긍했다.

“정말로 말이 안 되는 이상한 일이 다 있구나.”

“말은 돼요. 이 몇 년 동안 고민하면서 그 답안을 얻은 거 같아요. 새로운 곳에 옮겨져서 종이 변하는 식물은 새로운 땅에 정말로 적응하기 어려운 식물들이고 무릇 새로운 곳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식물은 그 속성이 새로운 곳의 토지와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에요. 마치 사람도 새로운 곳에 가면 예전처럼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토불복(水土不服)으로 마냥 앓기만 하는 것처럼요. 이런 이치가 아닐까요? 형님이 가져온 산초나무도 청주에 옮겨진 후 천천히 적응했기 때문에 그렇게 잘 자랐지만 토지여건도, 기후여건도 전혀 다른 여기 고양에 옮겨온 후에는 잘 자라지 못해 꽃만 피우고 씨를 맺지 못하거나 혹은 꽃을 안 피울지도 모르죠.”

가사성은 이번에도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 후, 과연 가사협의 추측이 증명되었다. 사천에서 청주에 옮겨진 후 잘 자라던 산초나무가 겨울이 유난히 긴 하북 고양에 옮겨진 후에는 꽃도 피우지 못하고 다른 종으로 변했다.

가사협은 이런 실천과 생각을 모두 자신의 농학 백과전서인 <제민요술>에 써넣고 이런 식물의 유전자 변형의 원리를 습관이 성격을 만든다는 의미의 ‘습이성성(習以性成)’이라는 네 글자로 귀납했다.

그로부터 천여 년 후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라는 한 영국인이 <제민요술>에 기록된 식물유전자와 변형에서 큰 시사점을 얻고 진화론(進化論)이라는 학설을 제출했다. 이는 가사협도, 역사학자들도 예상치 못한 것이리라. 아니면 사학가들이 왜 높은 벼슬을 한 가씨 가문의 다른 두 사람에 대해서는 천 자가 넘는 열전(列傳)을 쓰면서도 위대한 과학자 가사협은 수십 글자에 달하는 소전(小傳)으로 사서에 기록했겠는가? 이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중국의 ‘관본위(官本爲)’문화와 ‘무당, 의사, 악사와 같은 온갖 기능을 가진 자(巫醫樂師百工之人)들과 군자는 어울리지 않는다(君子恥之)’는 문화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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