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4 09:15:40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가사협 편: 제2회 염소의 겨울나이와 병아리

(사진설명: 가사협의 저서 <제민요술>)

제2회 염소의 겨울나이와 병아리

고환(高歡) 부자가 동위(東魏)을 세운 후 한(漢) 족 관리들을 타격하자 가사협은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청주에 내려와 <제민요술> 편찬에 몰두했다.

벼슬도 했고 부자이기도 한 가사협이 농부들에게 혜택을 줄 백과전서에 이렇게 몰두하게 된 것은 서한(西漢) 시기 발해(渤海) 태수(太守)를 담임한 적이 있는 공수(龔遂)와 연관된다. 발해군이 위치한 하북 바닷가의 사람들은 원래 바다에 나가 해물을 잡아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바다 어로는 날씨를 예상하기 어려운 관계로 아주 위험한 작업이었고 그리하여 예로부터 “남산에서 나귀로 살지언정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지 않겠다”는 속담도 전해 내려온다. 또 어로에 의한 소득이 너무 적어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배를 곯으며 바다만 바라봐야 했다. 따라서 현지인들의 생활은 아주 어려웠고 현지 관아의 조세수입도 미미하기 그지 없었다.

발해군 태수로 부임한 공수는 민생을 아주 중시해 백성들 생활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관아가 조세수입을 올리려면 반드시 백성을 동원해 다종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여겼다. 공수는 백성들이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짓고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키우는 것을 격려하는 조치를 출범하고 관련 법률을 제정했다. 공수의 노력으로 황막하고 낙후하던 발해 기슭이 번창하기 시작하고 백성들의 생활수준도 많이 개선되었다.

가사협은 젊었을 때 <한서·공수전(漢書·龔遂傳)>을 읽으며 공수의 사적에서 큰 감동을 받고 “공수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 감탄하며 속으로 “후에 나도 벼슬을 하게 되면 반드시 공수와 같은 좋은 관리가 될 것”이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가사협은 불행하게도 전란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살았으며 조정의 배치에 따라 주마등처럼 여기 저기 옮겨 다니다 보니 백성들을 위해 일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가사협은 농부들을 위해 실용가치가 있는 책을 쓰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책의 제목도 백성들 모두가 잘 살게 한다는 의미의 제민(齊民), 중요한 기술과 방법을 뜻하는 요술(要術)을 합쳐 <제민요술>이라 달았다.

이제 벼슬을 내려 놓은 가사협은 농업과 임업, 축산업, 해물양식, 양조, 양잠, 채소 재배, 식물 저장, 식품 가공 등 여러 분야의 기술을 살피고 모든 기술과 방법을 <제민요술>에 기록할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중국에는 “돈을 빨리 벌려면 첫째, 생강을 심고 둘째, 양을 키우며 셋째, 돼지를 사육하고 넷째, 오리를 키워라”는 속담이 있다. 양 사육은 예로부터 경제성이 좋은 업종이었던 것이다. 가사협이 살았던 시대는 민족이 하나로 융합되던 남북조(南北朝) 시기여서 이 때 북조(北朝) 한(漢) 족의 농업과 유목민족의 축산업도 서로 어울리고 교류했다.

그 해 가사협은 염소 200마리를 키웠다. 하지만 겨울에 그 많은 염소를 둘 곳이 없어서 우리에 가두었는데 겨울철 소모하는 사료의 분량이 어마어마해서 한 해 겨울에 100여 마리나 굶어 죽었다. 가사협은 염소우리 곁에 서서 눈이 깔린 바닥에 이리저리 쓰러져 죽은 염소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정말로 피의 교훈이로구나! 평소에 염소들은 산에 올라 풀을 뜯으니 그들이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몰랐지 뭔가. 염소를 우리에 가두어 두고서야 풀이 산을 이룬다 해도 염소들의 겨울철 먹이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구나!”

이듬해 가사협은 또 염소 200마리를 키우고 200무(亩, 1무=666㎥)의 땅에 대두를 심게 했다. 가을에 콩 줄기를 잘라서 염소들의 겨울철 먹이로 만들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사료가 그렇게 충족했음에도 그 해 겨울 또 100여 마리가 죽었다. 어리둥절해진 가사협은 베테랑 양치기를 모셔다 그 이유를 물었다.

염소 우리를 들여다 보니 콩 줄기가 가득 쌓인 우리에서 일부 염소는 콩 줄기를 먹고 일부는 곁에서 보기만 했다. 양치기가 말했다.

“염소들은 모두 굶어 죽었습니다.”

가사협은 믿을 수가 없었다.

“굶어 죽다니요? 올해는 염소들이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이렇게 많은 사료를 준비했는데요.”

“염소는 가장 깨끗한 동물입니다. 평소에 싱싱한 풀이나 싱싱한 나뭇잎을 먹습니다. 눈이 내려 마른 사료를 먹는 것만 해도 서러운데 이렇게 사료를 바닥에 던져놓으니 염소들이 마구 밟고 심지어 사료 위에 오줌이나 똥도 싸니 깨끗한 것만 먹는 염소들이 이런 사료를 먹겠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많은 염소가 굶어 죽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가사협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세 번째 해, 가사협은 또 염소 200마리를 키웠다. 겨울이 되자 그는 염소 우리의 가운데를 바닥보다 높게 만들고 그 위에 마른 사료를 쌓은 다음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어 염소들이 사료더미 위에 올라가지 못하고 울타리 안으로 주둥이를 넣어 사료만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랬더니 그 해 겨울 굶어 죽은 염소는 한 마리도 없었고 200마리가 모두 살이 통통하게 쪘음은 물론, 이듬해 봄이 되니 단번에 새끼 두 마리씩 낳은 어미 염소가 많아졌다.

가사협은 너무 기뻤다. 가사협은 이렇게 실천 속에서 얻은 염소 사육 경험을 모두 <제민요술>에 기록해 후세 사람들이 더는 자신이 걸은 굽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랐다.

가사협은 염소를 키우는 동시에 닭도 키웠다. 닭 사육이 큰 수익을 올리지는 못하지만 마을마다 닭을 키우지 않는 집이 없었다.

그 해 봄에 병아리가 부화되자 가사협은 닭 사육을 담당한 향(香)에게 말했다.

“지금 깐 병아리는 모두 종자 닭이 아닌 육계(肉鷄)로 키우겠다.”

금방 일을 배우기 시작한 향이 어리둥절하자 가사협이 해석했다.

“무슨 닭이 무슨 알을 낳는다는 속담이 있다. 암탉이 알을 잘 낳게 하려면 좋은 종자 닭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다년간의 닭 사육을 통해 종자 닭의 선별법을 도출해냈다. 그것은 바로 암탉이 알을 많이 낳게 하려면 봄과 여름에 깐 병아리보다 가을과 겨울에 깐 병아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봄과 여름에 깐 병아리는 성장한 후 몸집이 크고 털의 빛깔도 산뜻하지만 알을 잘 낳지 않는다. 반면에 가을과 겨울에 깐 병아리는 몸집이 작고 털 빛깔도 어둡지만 알을 잘 낳고 병아리를 잘 부화시킨다. 그러니 겉모양이 보기 좋고 큰 암탉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암탉의 소임은 알을 낳는 것이니. 그래서 가을에 깐 병아리만 종자 닭으로 삼는다.”

그제서야 향은 겨우 알아 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가사협은 물론 이런 경험도 모두 <제민요술>에 적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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