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8 09:15:03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심약 편: 제2회 새 왕조의 개국공신이 되다

제2회 새 왕조의 개국공신이 되다

황족들이 권력 쟁탈을 위해 골육상잔을 벌이고 조정이 혼잡하고 어두워 마치 세계종말이 다가오는 듯 했다. 소연(蕭衍)이 이 기회에 양양(襄陽)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건강(建康)에 쳐들어가 동혼후를 제거한 후 제화제(齊和帝) 소보융(蕭寶融)을 새 황제로 옹위했다. 그 공으로 소연은 승상(丞相)이 되었고 양공(梁公)으로 책봉되었으며 조정의 실권은 사실상 소연의 수중에 장악되었다. 소연은 심약을 표기(驃騎) 장군으로 임명해서 자신의 신변에서 계책을 내게 했다.

풍부한 정치적 경험과 심오한 정치적 안목으로 당시의 정국을 판단한 심약은 소연이 제화제를 대신해 보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그날 저녁 그는 달밤을 거닐며 동진(東晉) 이래 강남정권이 교체된 과거를 돌이키고 조조(曹操)의 <단가행(短歌行)>을 읊었다.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月明星稀)

까막까치는 남으로 날아가네(烏鵲南飛)

나무를 세 번 맴돌고 있으나(繞樹三匝)

어느 가지에 의지할 수 있을까(何枝可依)

산은 그 높음을 꺼리지 않고(山不厭高)

바다는 그 깊음을 꺼리지 않는 법(海不厭深)

주공이 음식을 뱉은 것처럼(周公吐哺)

온 세상 사람의 마음을 얻으리(天下歸心)”

여기까지 읊은 심약은 머리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 보았다. 달빛은 밝고 별빛은 희미한데 ‘하늘이 장차 내리는 큰 임무를 맡을(天將降大任於斯人)’ 호방한 격정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렸다. 이 기회를 잃으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느낀 심약은 내일 즉시 소연에게 간언해서 개국을 위해 큰 공을 세우고 향후 삼공(三公)에 들어 자신의 큰 뜻을 펴리라 작심했다.

침상에 누운 심약은 내일 소연에게 할 말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되뇌고 나서 소연이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데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행중수(行中水), 작천자(作天子)’라는 노래를 지어 어린이들에게 배워줄 생각도 했다. ‘행중수’를 한자로 만들면 바로 소연의 연(衍)자이고 ‘작천자’란 천자가 됨을 말한다.

이튿날 심약은 소연의 밀실을 찾아갔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처럼 순박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아첨과 아부를 일삼는 사람들이 찾아와 실리를 바랄 것입니다. 지금 어린이들도 ‘행중수, 작천자’를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제나라의 운이 다 했으니 이제 대업을 이루셔야 합니다! 그래야 양공을 찾아온 사람들이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심약의 말에 소연이 머뭇거렸다.

“나도 지금 생각하는 중이오.”

“황제가 아직 형주에 있는 지금 반드시 빨리 움직이셔야 합니다. 황제가 도성에 도착하고 공경(公卿)이 정해지며 군신(君臣) 관계가 확립되면 그 때 가서 양공과 함께 역모를 꾸밀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그 때면 양공을 찾아왔던 사람들이 다 흩어질 것입니다. 큰 일을 하려면 주저하지 말고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심약의 말에 소연은 보위에 오를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때 ‘경릉 8우’ 중 한 사람인 시중(侍中)을 맡은 범운이 왔는데 그 역시 새 왕조 건국을 간언했다. 영웅들의 안목은 대개 비슷한 법인가? 소연은 기쁜 마음으로 내일 아침 다시 논의하자고 말했다.

이튿날 심약이 들어오기 바쁘게 소연이 입을 열었다.

“결정했소! 양위한 소보융을 파릉왕(巴陵王)으로 강등시키고 짐이 보위에 올라 국호를 양(梁)이라고 하겠소. 조서를 작성하시오!”

그 말에 심약은 당장에서 어제 저녁에 작성한 조서를 올리고 문무백관의 명단까지 소연에게 건넸다. 조서와 대신들의 명단을 본 소연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주 좋소. 그대로 실행하시오.”

심약은 물러나오다가 문밖에서 기다리는 범운을 만났다. 심약은 손을 들어 대사가 정해졌음을 전했다. 그러자 범운이 신나서 말했다.

“과연 기대에 부응했구려!”

범운을 만난 소연이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과거에 심약과 함께 하면서도 그의 남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오늘 보니 그는 재능이 넘쳐나고 식견도 넓음이 남들보다 한 수 위더군 그려!”

“주공께서 오늘 심약을 제대로 아시고 심약도 주공을 오늘 제대로 알았으니 군신이 통하는 데가 있군요!”

“나를 따르는 중위(中尉) 장군들이 적지 않고 세운 공도 많은데 대업을 이루도록 나를 도운 사람은 오직 심약과 그대 두 사람뿐이오!”

황제가 된 소연은 자신의 어진 품성을 보이기 위해 남해군(南海郡)을 파릉국(巴陵國)으로 만들어 파릉왕 소보융에게 주려고 했다. 이 때 심약이 소를 올렸다.

“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는 헛된 명성 때문에 눈에 보이는 우환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폐하께서 파릉왕 건을 재고하시기 바랍니다.”

심약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소연은 즉시 측근인 정백금(鄭伯禽)을 고숙(姑孰)으로 보내 파릉왕에게 황금 싸라기를 하사했다. 신 황제가 이런 방법으로 자신에게 죽음을 하사한 것을 안 파릉왕이 슬픈 목소리로 외쳤다.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데 황금이 왜 필요하겠느냐! 술이면 되느니라!”

그리고 나서 파릉왕은 독주를 취하도록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정백금은 그 참에 파릉왕의 목숨을 거두었다. 소연은 내친 김에 북위(北魏)에 항복한 소보인(蕭寶夤)을 제외하고 제명제의 나머지 아들 9명을 모두 제거했다.

심약은 상서복야(尙書仆射)에 임명되고 건창현후(建昌縣侯)에 책봉되었으며 심약의 모친 사씨(謝氏)도 건창국태부인(建昌國太夫人)에 봉해졌다. 1년 후 건창국태부인이 별세하자 황제가 몸소 조문을 갔으니 심씨가문의 영광은 하늘을 찔렀다.

그 후 심약은 상서령(尙書令)에 임명되고 태자소부(太子少傅)를 겸했으며 또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가 되어 삼공(三公)에 들었다. 황제는 또 심약에게 취주악대도 하사했다.

심약이 70대가 되었다. 평생 가문의 명성을 위해 노력한 그였으니 소원성취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몸도 점점 야위어가서 ‘심랑요수(深郞腰瘦)’의 고전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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