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9 09:44:09 출처:cri
편집:李仙玉

[항우 편-3] 민심을 잃다

(사진설명: 항우의 석상)

제3회 초회왕을 죽여 민심을 잃다

홍문연(鴻門宴)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야기 줄거리를 간단하게 되풀이 하면 다음과 같다. 항우는 유방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그를 홍문에서 베푼 잔치에 불렀다. 하지만 잔치에 참석한 유방은 관중에서 왕이 될 생각이 없으며 모든 일에서 항우 장군의 배치를 따르겠다고 항우에게 말한다. 항우는 그 말에 유방을 죽이려던 생각을 바꾸고 유방에게 이렇게 말한다.

“패공이 관중에서 왕이 될 것이라고 한 소식은 패공의 좌사마(左司馬) 조무상이 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패공을 오해할 수 있겠습니까?”

결과 유방은 자신의 군영으로 돌아가자 조무상을 죽여버렸다.

항우가 유방을 돌려보내자 범증은 분노해서 항우에게 힐문했다.

“가장 위험한 적수를 왜 죽이지 않았습니까?”

“패공은 먼저 함양에 입성했기 때문에 약속에 의하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담보했는데 왜 그를 죽여야 합니까? 만약 패공을 죽이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볼 것입니다. 그리고 패공이 어떻게 나의 적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는 반백이 넘었고 연약하고 무력하고 평범하고 무능합니다. 패공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까?”

항우의 말에 범증은 정치적 안목이 없고 속마음을 다 드러내며 마음 약한 항우에 더는 기대를 걸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항우가 군사를 거느리고 입성해 살육을 일삼으니 함양은 피의 바다를 이루었고 진나라 궁궐에 불을 지르니 여산(驪山)이 불의 바다가 되었다. 더욱 잔인한 것은 진의 삼세자(三世子) 자영(子嬰)을 죽인 것이다. 부소(扶蘇)의 아들이고 이미 유방에게 항복한 자영을 죽인 항우는 득의양양해서 제사를 지내며 조상에게 이렇게 알렸다.

“조부님, 숙부님, 제가 복수했습니다! 제가 진삼세를 죽였습니다. 제가 포악한 진나라를 멸했습니다. 초수삼호(楚雖三戶), 망진필초(亡秦必楚) 였습니다. 저는 8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삼호 나룻터로 장수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함양에 이르렀습니다.”

항우의 잔인함은 법을 지킨 유방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어 진나라 사람들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유방에게로 기울어 그들은 패공이 관중의 왕이 될 날을 절실하게 기다렸다.

이 때 한 사람이 유방에게 제언했다.

“관중에는 화산(華山)과 황하(黃河) 강이 자연적인 보호벽을 형성하고 동쪽에 함곡관(函谷關), 남쪽에 무관(武關), 북쪽에 소관(蕭關)에 있는데 모두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이 공격해도 뚫지 못하는 험준한 요새들입니다. 이는 모두 관중의 지리적 이점들입니다. 8백리 진천(秦川)벌은 땅이 살찌고 물산이 풍부하기에 왕이 되어 천하를 제패하기 가장 좋은 땅입니다.”

하지만 머리 속에 온통 고향 생각으로 가득 찬 항우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초지(楚地)로 돌아갈 생각만 했다.

“부귀를 누리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 옷을 입고 어두운 밤거리를 거니는 것과 같이 누가 볼 수 있겠습니까?”

항우의 말에 그 사람은 두말 않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배후에서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사람은 허울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 항우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항우는 스스로를 반성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 사람을 끓는 기름 가마에 넣어 죽였다.

왕이 되고자 한 항우는 먼저 초회왕을 의제(義帝)로 추앙하고 여러 장수들을 왕으로 봉했다. 그런데 패공 유방을 어떻게 봉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난제에 부딪쳤다. 항우는 몰래 범증과 의논했다.

“우리는 홍문연에서 패공과 이미 화해했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어기고 패공을 관중왕으로 봉하지 않으면 제후들이 신뢰를 지키지 않는다고 나를 버릴 것입니다.”

“파촉(巴蜀)은 지세가 험준하고 교통이 열악합니다. 그래서 진나라는 범인 다수를 파촉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파촉은 관중에 속하니 우리가 패공을 파촉으로 보내도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범증의 말에 항우는 패공을 한왕(漢王)으로 봉해서 파(巴)와 촉(蜀), 한중(漢中)의 땅을 봉지로 주고 남정(南鄭)에 도읍을 정하게 했다. 항우는 이어 16개 제후국의 왕을 봉하고 나서야 자신을 서초패왕(西楚覇王)으로 봉하고 9개 군을 봉지로 차지하며 팽성(彭城)에 도읍을 두기로 했다.

제후왕을 봉한 후 여러 제후들이 각자의 봉지로 돌아간 후 항우는 의제가 있기에 서초패왕이라 봉한 자신이 여전히 하늘 아래 최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의제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다.

“고대의 제왕들은 모두 하천의 상류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의제를 장사침현(長沙郴縣)으로 이주하게 하는 동시에 몰래 형산왕(衡山王)과 임강왕(臨江王)에게 의제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항우는 애초에 초회왕을 옹립한 초심을 버렸고 이로 인해 초나라 백성들의 불만을 야기시켰다. 항우는 얼마 남지 않은 민심도 다 잃어버린 것이다.

항우가 제후왕을 봉함에 있어서 자신의 취미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했기 때문에 왕이 되지 못한 제후들이 반역에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왕 유방도‘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의 방법으로 관중지역을 차지했다.

이에 대로한 항우는 또 다시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 제후왕들을 자극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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