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30 09:47:07 출처:cri
편집:李仙玉

[항우 편-4] 영웅의 말로를 걷다

(사진설명: 항우 문화원 일각)

제4회 해하에서 영웅의 말로를 걷다 

서초패왕 항우는 과연 천재적인 군사가였다! 3만명의 군사가 사나운 범처럼 산을 내려 대지를 삼킬 듯 한 기세로 팽성을 공격하자 잔치를 베풀고 음주를 즐기던 한(漢)나라 군대는 반나절 만에 성을 나가 도주했다. 항우는 군사를 거느리고 추격해 사수(泗水)기슭에서 10여만명이 넘는 한나라 군대를 섬멸했다. 남은 한나라 군대는 계속 남쪽으로 도주해 수수(睢水)강 기슭에 이르렀다. 하지만 뒤를 쫓아온 초나라 군대에 의해 한나라 군대는 또 십여 만 명을 잃었다. 수수강이 붉은 피로 물들고 산처럼 쌓인 시신이 강물을 막아 수수강이 흐름을 멈추었다.

항우는 군사를 거느리고 유방을 겹겹이 둘러쌓다. 유방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었다. 유방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하늘이시여, 내가 천하를 차지할 천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어떻게 저 흉악한 사람의 손에 죽게 하시겠습니까?”

유방의 말이 끝나자 천지가 어두워지고 큰 바람이 불며 나무의 허리가 꺾이고 지붕이 벗겨졌으며 모래바람이 정면으로 초나라 군대를 공격했다. 그 바람에 초나라 군사는 모래바람을 피해 도처로 숨어들었고 그 틈을 타서 유방은 수십 명의 보호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도주했다.

유방이 팽성에서 쫓겨가자 제후들은 다시 한 왕 유방을 버리고 서초패왕 항우에게 빌붙었다. 유방은 남은 군사를 형양(滎陽)에 주둔시키고 곡창인 오창(敖倉)을 연결하는 통로를 냈다. 1년 후에 항우가 그 통로를 차단하자 한나라 군대의 군량보급도 잇달아 끊어졌다. 유방은 하는 수 없어 항우와 화의를 청했고 항우는 또 유방을 불쌍하게 여겨 형양 서쪽만 봉지로 하는 조건으로 유방과 화의했다.

역양후(歷陽侯) 범증이 또 막았다.

“그를 돌려보내면 안 됩니다. 후환을 남기는 것이 됩니다. 한 왕은 금방 또 궐기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후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 말에 항우는 범증과 같이 군사를 거느리고 형양을 포위했다.

형양 성안에 갇힌 유방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머리를 앓고 있는데 모사(謀士) 진평(陳平)이 계책을 내놓았다.

“항(項) 왕은 머리가 단순해서 쉽게 계략에 넘어갑니다. 우리는 먼저 이간계(離間計)로 범증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항 왕은 쉽게 대적할 수 있습니다.”

이 때 항우의 사자가 도착했다. 진평은 그 사자에게 성찬을 올리라고 시켰다.

음식이 식탁에 다 오르자 진평은 사자를 보러 가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부(亞父)의 사자가 아니시군요?”

그러더니 올렸던 산해진미를 다 가져가고 거친 식사를 새로 내왔다. 사자가 돌아와서 항우에게 그 일을 전하니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한다고 의심해 말했다.

“이제부터 한 왕의 일을 논의하는 자리에 아부는 참가하지 마시오.”

범증이 대로했다.

“천하의 대세는 다 정해졌으니 대왕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나는 고향에 가서 편안하게 노후나 보내야 하겠습니다.”

범증의 말 뜻을 알아 듣지 못한 항우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부는 나이가 드셨으니 고향에 돌아가서 천수를 누리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비분에 찬 범증은 슬픈 마음을 안고 항우를 떠났다. 하지만 팽성을 나서기도 전에 범증은 등에 난 악창이 터져 객사에서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유방은 항우의 군량 공급이 끊어진 것을 알고 후공(侯公)을 파견했다. 군량 공급이 되지 않아 머리를 앓던 항우는 그 참에 유방의 화의 요구를 받아 들였다. 후공의 주재로 항우와 유방은 홍구(鴻溝)를 경계선으로 천하를 양분하기로 했다. 홍구의 서쪽은 한왕 유방에게 속하고 홍구의 동쪽은 초왕 항우가 차지하기로 했다. 항우는 이런 천하양분법은 그래도 받아 들일만 하다고 생각해서 볼모로 잡아 두었던 유방의 부모와 아내를 돌려보냈다. 초(楚)와 한(漢)의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항우는 군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돌아갔다.

무인(武人)이면서 따스한 정도 가진 사나이 항우는 영웅적 기개를 가지고 천하를 호령하며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이와 반면에 감성적이고 정에 약했다. 거록전쟁에서 이름을 날린 후 그는 우미인(虞美人)을 얻었는데 그녀는 서초패왕의 영웅적 기개와 절세의 용감성에 감탄하고 항우는 우미인의 경국지색과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마음에 매료되었다. 그로부터 항우가 동서남북을 넘나들며 혈전을 벌일 때마다 그의 곁에는 시종 우희(虞姬)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이제 항 왕과 한 왕이 천하를 양분하고 금의환향하니 더는 무서울 일이 없어진 우희는 너무 홀가분하고 즐거웠다. 그들은 천천히 길을 걸었다. 우희가 항우와 손 잡고 걸으며 바라보니 길가의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가 그렇듯 다정하게 안겨오고 하늘의 구름과 물위의 돛배도 모두 그토록 수려한 경관을 이루었다.

그날 양하성(陽夏城)에 이르러 항우가 우희와 함께 돛배를 보고 어부의 노래를 들으러 강가에 나가려는데 갑자기 유방이 약속대로 서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온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한나라 군대는 벌써 양하와 멀지 않은 고릉(固陵)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우희가 황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또 전쟁을 해야 하나요?”

항우가 분노해서 대답했다.

“한 왕은 패전장군이라 번마다 나에게 패했다. 그는 근본 나의 상대가 아니다. 내가 그를 치러 가지 않으니 그가 나를 공격하러 와? 죽을라고 환장을 했네! 우리 돌아가자! 내가 나가서 이번에는 그를 갈갈이 찢어주고야 말 것이다!”

항우는 24살에 회계군수를 죽인 후 숙부를 따라 봉기를 일으켜 오중(吳中)의 8천 군사를 거느리고 천하를 주름잡으며 70여회의 전투를 거치면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27살에 서초패왕이 되었으니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는 항우였고 이 때 나이 31살이니 항우의 이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초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고릉에 이른 항우는 또 한나라 군대를 대파해 유방은 깊은 골짜기에 높은 담을 쌓은 보루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항우는 유방이 싸움에서 패하고 또 겁쟁이 모양으로 숨어 든 것을 보고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해하(垓下)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항우는 치명적인 위험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저승사자가 소리 없이 그를 향해 손짓 하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해하에 주둔한 항우의 군사는 병력이 적고 군량이 떨어졌다. 이와 반면에 한신(韓信)과 팽월(彭越)이 왕으로 책봉한다는 유방의 약속을 전제로 대군을 거느리고 해하에 집결했으며 유가(劉賈)의 대군도 도착했다. 설상가상으로 대사마(大司馬) 주은(周殷)도 초나라를 배반하고 구강군(九江郡)에서 군사를 일으켜 유가, 팽월을 따라 해하에 이르렀다.

정세가 삽시에 역전했다. 한나라와 제후들의 군대가 해하를 둘러싸고 삼면에서 항우를 공격해왔다. 항우가 자신이 독 안에 든 쥐가 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신변에는 계책을 낼 사람 하나 없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아부 범증이 그리웠다.

“아부님, 미안합니다. 아부는 저를 아들로 보셨습니다. 아부는 저의 강태공(姜太公)이신데 제가 아부를 의심하다니요? 저 때문에 아부는 한을 품고 객사에서 돌아가시고 저도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경솔한 사내로 전락했습니다. 유방은 무력을 쓰지 않고 나와 머리싸움만 했는데 나는 힘은 장사이나 힘을 어디에 쓸 줄을 모르고 싸움에서 번마다 이겼으나 민심은 점점 더 잃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연합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듣는 우희도 가슴이 찢어져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날이 어두웠다. 하늘에는 하얀 조각달이 걸려 있고 사면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갑자기 초나라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항우가 몸을 흠칫 떨며 중얼거렸다.

“초나라 땅이 모두 한나라 군대에 점령된 것이 아닌가?  왜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오지?”

항우가 외쳤다.

“술을 가져 오너라!”

항우가 술을 빌어 슬픔을 달래는데 군마의 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항우는 사랑하는 오추마(烏騅馬)의 울음소리를 듣고 검무로 흥을 돋우는 우희를 바라보며 감정이 북받쳐 노래를 불렀다.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九拔山兮氣蓋世)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가 나가지 않는구나(時不利兮不逝)

오추마가 달리지 아니하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不逝兮可奈何)

우희야 우희야 내가 너를 어찌한단 말이냐(虞兮虞兮奈若何)

항우는 영웅이 틀림이 없었다. 영웅의 마지막을 말하는 슬픈 노래였지만 여전히 웅장한 기세와 호방함을 잃지 않았다. 우희도 검무를 그만 두고 항우의 슬픈 노래에 맞추어 낮은 목소리로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항우 휘하의 장병들도 항우의 노래를 들으며 머리를 숙였다. 그들도 흘러내리는 눈물이 찬 갑옷을 적셔 머리 들어 서초패왕을 바라보지 못했다.

밤이 깊었다. 처량한 초가(楚歌)는 여전히 어두운 허공에 계속 울리고 있었다.

우희가 항우에게 말했다.

“어둠을 타서 빨리 포위를 뚫고 나가요! 강동(江東)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요.”

“그럼 너는?”

“당신은 영웅이에요. 어찌 남녀간의 사사로운 정에 매일 수 있어요? 나는 먼저 갈게요. 다음 생에도 당신을 시봉(侍奉)하러 올게요.”

말을 마친 우희는 단검을 빼서 목을 그어버렸다. 그 순간 뜨거운 핏줄기가 항우의 얼굴을 때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항우는 놀라서 멍해졌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항우는 사랑하는 여인을 품에 안았다. 영웅의 눈물이 백지장처럼 하얗고 꽃처럼 어여쁜 여인의 얼굴을 적셨다…

우희와 영별한 항우의 마음 속에서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그는 오추마에 올라 8백의 용사를 거느리고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달렸다. 유방은 기장(騎將) 관영(灌嬰)에게 5천의 기마병을 주어 추격하게 했다. 음릉(陰陵)에서 길을 잃은 항우는 소택지에 빠졌고 겨우 소택지에서 빠져 나왔을 때 항우의 신변에는 28명밖에 남지 않았다.

항우가 질풍같이 달려 오강(烏江)기슭에 이르니 오강의 정장(亭長)이 갈대밭에서 쪽배를 몰고 다가와 말했다.

“얼른 배에 오르시오. 금방 강동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한나라 군대가 쫓아와도 배가 없으니 강물 너머 우리를 바라만 볼 것입니다.”

항우가 대답했다.

“나는 강을 건너지 않겠습니다. 강동의 8천명을 데리고 강을 건너와 천하를 호령했는데 이제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 강동의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내 선물이라 생각하고 이 오추마를 태워 건너시오.”

이어 한나라 군대가 쫓아왔다. 항우는 검을 휘둘러 몇 백 명을 죽인 후 한나라 사마 여마동(呂馬童)이 보이자 웃으며 말했다.

“자네 나의 옛 친구가 아닌가? 한 왕이 내 머리에 천금(千金)과 만호후(萬戶侯)를 걸었으니 내 머리를 자네에게 선물로 주겠네.”

말을 마치자 항우는 스스로 목을 베었다.

서초패왕 항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왕 유방은 이제 적수가 사라져서 천하를 독차지하게 되었지만 미칠 듯 기쁘기보다는 마음이 텅 빈 듯 허전했다. 그는 노공(魯公)의 예로 항우의 장례를 치르고 그의 무덤 앞에서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서 슬픔에 잠겨 자리를 떴다.

영웅은 영웅을 아끼는 법이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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