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1 10:00:06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이세민 편: 제1회 바른 말을 듣는 황제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이세민)

가장 현명한 군주 이세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水能載舟)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亦能覆舟)”. 이 말은 가장 현명한 군주로 알려진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민본(民本)’ 사상 중 가장 눈에 띄는 말이다. 그는 민심을 얻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중국의 고대 역사상 눈부신 한 폐지를 장식한 정관의 치(貞觀之治) 시대를 열었다.

이세민이 남긴 명언 중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알고 인용하는 말은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以銅爲鏡)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可以正衣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以史爲鏡) 천하의 흥망을 알 수 있으며(可以知興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以人爲鏡) 자신의 득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可以知得失)”는 말이다.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가고 가장 열려있으며 가장 강성한 나라였던 당 왕조의 두 번째 황제이자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실질적인 개척자인 이세민은 대외로는 국토를 넓히고 안으로는 나라를 번영케 하고 백성들이 잘 살게 하면서 국도 장안(長安)을 당시 가장 개방된 국제도시로 만들었다.

가장 현명한 군주 이세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바른 말을 듣는 황제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조회를 마친 후 후궁의 창가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태종제의 먹구름이 낀 얼굴과 화난 눈빛을 본 장손(長孫) 황후가 조용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어인 일로 용안이 이렇게 어두우세요?”

태종제가 화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위징(魏征)이라는 작자는 참으로 사람을 너무 괴롭히오. 그는 의도적으로 대신들 앞에서 짐의 허물을 들추어 내고 짐의 명성에 해를 끼치며 짐의 체면을 깎았소. 언젠가는 반드시 꼬투리를 잡아 이 시골뜨기를 죽여버려야겠소!”

“도대체 무슨 말이세요?”

장손황후의 물음에 태종제는 여전히 화난 목소리로 설명했다.

“오늘 누군가 짐에서 보라매 한 마리를 진상해서 손에 올려 놓고 놀고 있는데 위징이 들어오지 않겠소. 그가 보면 필히 좋아하는 물건에 빠져 뜻을 잃어버렸다고 짐을 질타하고, 또 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라고 간언할게 뻔하기에 급히 보라매를 옷깃 속에 감추었소. 그런데 짐이 보라매를 옷깃 속에 감춘 것을 본 위징이 의도적으로 밑도 끝도 없이 말을 늘어 놓는 바람에 보라매가 옷깃 속에서 숨이 막혀 죽어버렸지 뭐요. 에이, 짐에게 무슨 불량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마와 궁술을 잊을까 염려되어 틈이 나면 남산에 가서 말을 달리고 사냥을 좀 하는 것뿐인데. 얼마나 좋은 보라매였는데 사냥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죽었으니 짐이 왜 화가 안 나겠소?”

장손황후가 여전히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위징이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해서 폐하의 보라매가 숨막혀 죽었나요?”

“쓸데 없는 말은 아니었소. 그는 양신(良臣)과 충신(忠臣)의 구별을 설명하면서 짐에게 자신이 충신이 아닌 양신이 되게 해달라고 요구했소.”

“그가 뭐라고 말했는데요? 저도 양신과 충신의 구별을 너무 알고 싶은데요.”

“위징은 고대의 후직(后稷)과 고도(皋陶)와 같은 사람들이 양신이고 용봉(龍逢)과 비간(比干)과 같은 사람들이 충신이라고 말했소. 다시 말하면 양신은 자신도 좋은 명성을 남기고 자신이 모시는 군주도 좋은 명성을 가지게 하며 그 군주의 후손이 그 위업을 이어 받고 그 복이 오래도록 이어지게 하지만 충신은 화를 자초해서 자신도 죽고 군주에게도 흉악하고 어리석다는 악명을 남기며 궁극적으로 나라도 망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한다는 것이오. 이게 바로 양신과 충신의 다른 점이라고 말이오.”

“위징의 말이 맞네요! 폐하께서는 이런 바른 말이 싫으세요?”

“짐이 왜 이런 말을 싫어하겠소? 참 바른 말을 했다고 칭찬해주었지. 그리고 또 군주가 어떻게 해야 눈이 어둡고 어리석어지지 않을 수 있는지도 물었소.”

황후가 또 물었다.

“그랬더니 위징이 뭐라고 대답했어요?”

황제가 말을 이었다.

“위징은 ‘양쪽을 모두 들으면 눈이 밝아지고(兼廳則明) 한쪽만 들으면 눈이 어두워진다(偏信則暗)’고 대답했소. 그리고 나서 그는 또 과거 많은 인재를 불러 들이고 두 귀를 활짝 열고 그들의 말을 들었던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눈과 귀가 밝아서 그들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반대로 진2세(秦二世) 호해(胡海)는 조고(趙高)의 말만 듣다 보니 천하에 대란이 일어난 것도 몰랐다고 말했소. 또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은 주이(朱異)만 믿다가 후경(侯景)이 성을 공격하는 것도 알지 못했고 수양제(隋煬帝) 양광(楊廣)은 우세기(虞世基)만 믿다가 나라 전역에 전란이 일어나는 것도 몰랐다는 것이오. 그러면서 군주가 여러 측의 의견을 다 들어야 간신에게 기만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소.”

“위징의 말이 참으로 옳네요! 그는 폐하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았는데요! 폐하께서는 보라매 한 마리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건가요?”

태종제가 대답했다.

“그가 이 말만 했다면 왜 보라매가 숨이 막혀 죽었겠소? 그리고 그가 짐의 허물을 들추어 내지 않았다면 짐이 왜 화를 내겠소? 위징은 ‘지금 나라가 태평하니 폐하께서는 좀 해이해지신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항상 신하들의 간언을 유도하시더니 지금은 유도는커녕 간언해도 간신히 받으십니다’라고 말하지 않겠소. 그래서 짐이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했더니 그는 ‘폐하께서 금방 보위에 오르셨을 때 원률(元律)에게 사형을 명하셨는데 손복가(孫伏伽)가 죽을 죄는 아니라고 간언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원률의 사형을 면하시고 손복가에게는 가치가 백 만 전(錢)에 달하는 난릉(蘭陵) 공주별장을 하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폐하께서 신하의 간언을 유도하시는 것입니다. 후에 유웅(劉雄)이 경력을 위조해서 폐하께서 그에게 사형을 내리셨습니다. 그 때 대주(戴胄)가 법률에 근거하면 유웅은 사형이 아니라 유기징역을 받아야 한다고 간언했습니다. 그 때 대주가 네다섯 번 간언해서야 폐하께서는 유웅의 죽을 죄를 면하시고 끝까지 법률을 지키는 대주를 치하하셨습니다. 폐하께서 여전히 간언을 받아 들이기는 하셨지만 과거 손복가를 치하하실 때에 비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근래에 황보덕삼(皇甫德參)이 낙양(洛陽) 궁전 축조는 백성들을 고생시키는 일이고 땅세를 받는 것은 과세 남용이며 민간의 여인들이 머리를 높이 쪽지는 것은 궁중의 여인들을 본떴기 때문이라고 간언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설마 조정이 민간의 인부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세금도 한 푼 받지 않으며 궁녀들이 모두 머리를 빡빡 밀어야 좋겠냐고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후에 폐하께서는 간언을 받아 들이시고 황보덕삼에게 비단을 하사하셨습니다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분노와 불만을 안고 계십니다. 이로부터 폐하께서 예전처럼 간언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겠소. 그래서 짐은 하는 수 없이 일깨워줘서 고맙다고 위징을 치하했소. 그런데 보라매가 죽은 것을 보니 억울해서 불화가 치밀어 올랐소.”

태종제의 긴 설명을 들은 장손황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예복을 차려 입고 나와 당태종 이세민에게 큰 절을 올리며 말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경사 났습니다. 폐하!”

태종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짐에게 무슨 경사가 났소?”

“군주가 현명해야 신하가 바른 말을 합니다. 폐하께 위징과 같은 직신(直臣)이 있으니 폐하는 참으로 현명한 군주이십니다! 이는 나라의 행운이자 폐하의 행운이십니다! 그러니 신첩(臣妾) 어찌 폐하께 감축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태종제는 장손황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자 가슴 속의 화가 서서히 사라졌다.

위징과 같이 바른 말을 하는 신하, 장손황후와 같이 현명한 황후가 있었기에 태종제는 넓은 흉금과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간언을 받아 들일 수 있었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종제의 자신감이 한 몫 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태종제는 넓은 흉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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