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4 10:24:46 출처:cri
편집:李仙玉

[장량 편-4] 벼슬을 내놓고 천수를 누리다

(사진설명: 장량묘의 일각)

제4회 벼슬을 내놓고 천수를 누리다 

장안에 이른 후 몸이 허약한 장량은 늘 질환을 앓아 집에서 기공(氣功)을 연습하고 벽곡(僻谷)을 배우며 두문불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라 조정에 대사건이 발생했다. 유방이 장남인 태자를 폐위하고 어린 황자를 태자로 세우기로 작심한 것이었다. 이는 한나라 사직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라 신하들은 분분히 장남 대신 어린 황자를 태자로 두었다가 난을 유발한 사례들을 설명하며 황제에게 간언했다. 하지만 유방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다.

“태자는 나약해서 중임을 떠멜 수 없소. 강산을 조(趙) 왕 여의(如意)에게 물려주어야 짐이 안심할 수 있소.”

조 왕이 확실히 태자보다 총명할 수도 있었으나 사실 유방은 척부인(戚夫人)을 위한 사심에서 태자를 교체하려고 했다. 유방은 노년에 조 왕 여의의 생모인 척부인을 총애했는데 자신이 붕어하면 심성이 독한 여후(呂后)로 인해 척부인의 노후가 편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의가 황위를 이어 받아야 척부인이 여후의 손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태자의 폐위 소식을 들은 여후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후의 오라버니인 건성후(建成侯) 여택(呂澤)이 말했다.

“유후의 지략이 가장 좋고 폐하도 그의 말을 가장 잘 듣습니다. 우리 유후를 찾아가서 폐하께 간언을 부탁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택의 말에 여후는 얼굴에 희색을 띄우며 손뼉을 쳤다.

“태자를 구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내가 왜 유후를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유후는 지금 외출도 하지 않고 손님도 만나지 않으니 황후께서 생각하시지 못 할 법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가도 만나 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를 오라버니 집으로 납치해서 잘 논의를 드리세요. 반드시 그를 설득해야 합니다. 유후가 도울 생각만 있으면 방법은 꼭 있을 거예요.”

여택은 무림고수를 시켜 장량을 자신의 저택으로 납치해왔다.

“유후께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황후마마의 뜻입니다. 황후마마께 유후의 도움을 받을 일이 있습니다.”

장량이 대답이 없자 여택은 말을 계속했다.

“유후는 폐하께서 가장 신뢰하시는 책사이십니다. 이번에 폐하께서 장남을 폐위하고 조 왕을 태자로 세우려 하시는데 유후께서는 어찌 보고만 계십니까?”

여택의 말에 장량이 입을 열었다.

“전에 제가 낸 계책은 모두 폐하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천하가 태평해져서 더는 제가 할 일 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집에서 양생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태자를 교체하시는 것은 황실 가문의 일임으로 신하로서 아무리 간언해도 부질없는 일입니다.”

“황실가문의 일이 우리 여씨 가문 수백 명의 생명과 관계됩니다. 부디 가장 좋은 방법을 대주시기 바랍니다.”

여택의 말에 장량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태자는 심성은 연약하나 마음씨가 착하다. 그리고 폐하의 장남으로 전란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 지금 와서 그를 폐위시키는 것은 그로 말하면 확실히 불공평하다. 하물며 장남을 폐위하고 어린 아들을 태자로 세우며, 적자를 폐위하고 서자를 후계자로 세우는 것은 예제(禮制)에도 부합하지 않고 도의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신하들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불복할 것이니 잘못하면 나라의 불안이 유발될 수도 있다. 도와야겠다.”

생각을 마친 장량이 여택에게 말했다.

“이 일은 간언으로는 폐하의 마음을 돌려 세우기 힘들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 세상에 폐하께서 끝까지 불러 들이시지 못한 고수가 네 명 있습니다. 바로 상산사호(商山四皓)입니다. 만약 이 네 명의 고수를 태자의 빈객(賓客)으로 모셔와서 태자와 같이 조정에 나올 수 있다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후는 사람을 시켜 태자의 서신과 후한 선물을 가지고 상산사호를 찾아가 아주 겸허하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네 명의 고수는 태자의 진심에 감동되어 정말로 장안에 와서 건성후 여택의 저택에 머물렀다.

그 때 유방은 회남왕 경포를 멸하는 중에 화살을 맞아 심하게 앓고 있었다. 그리하여 장안으로 돌아온 유방은 태자 교체에 더욱 급급해졌다. 역모를 진압한 경축잔치를 하게 되어 태자가 시중들러 가는데 상산사호가 동행했다. 유방은 나이가 80대에 달해 눈썹과 수염은 모두 눈처럼 하얗지만 여전히 기골이 장대하고 몸매가 꿋꿋한 네 명의 노옹이 태자를 동반해 온 것을 보고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시오?”

네 명이 앞으로 나서며 차례로 동원공(東園公)과 각리선생(角里先生),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이라는 각자의 신분을 밝혔다. 그 말을 들은 유방이 크게 놀라며 물었다.

“짐은 오랫동안 그대들을 찾았는데 그대들은 늘 짐을 피해 다니셨소. 그런데 어이하여 지금 짐의 아들을 따르려 하시오?”

네 명의 고수가 이구동성으로 유방의 물음에 대답했다.

“폐하께서 욕을 즐기셔서 저희는 그 욕을 듣기 싫어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태자께서 심성도 어지시고 효도를 지키시며 인재를 공경하시어 세상 사람들 모두 태자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여긴다 들어서 태자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유방이 무언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수고스럽지만 공들께서 태자를 잘 가르치고 잘 보필하여 주시오.”

상산사호는 축하말을 하고는 먼저 돌아갔다.

상산사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방은 손짓으로 척부인을 불러 상산사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들이 태자를 보필하니 태자의 세력이 커서 여의를 새 태자로 세우지 못하겠소. 보아하니 그대의 상전은 여후일 수밖에 없겠소.”

자신의 비참한 미래를 내다 본 척부인의 눈에서 슬픈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렇게 유방은 태자를 다시 세우려던 생각을 버렸다. 이는 물론 유후 장량의 계책에 의한 결과였다.

장량이 집사람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우리 가문은 자자손손 한(韓)의 재상이었다. 한나라가 망한 후 나는 만금을 들여 한나라를 위해 복수하며 쇠망치로 진(秦) 왕을 습격해 세상을 놀라게 하고 한나라를 위해 마음을 다했다. 후에는 또 삼촌지설(三寸之舌)로 제왕의 책사가 되어 만 가구를 상으로 받고 후(侯)로 책봉되었다. 지금 최고의 부를 누리고 있어 나는 아주 만족한다. 그래서 세상사를 뒤로 하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수련해야 하겠다.”

그로부터 장량은 일절 정치를 묻지 않고 벽곡의 방법을 배우며 수련하고 도를 닦는 데만 전념했다.

과거 장량이 하비의 다리 위에서 노옹을 만나고 기서(奇書) <소서>를 얻을 때 노옹은 13년 후에 제북의 곡성산 기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13년후 장량이 곡성산 기슭에 이르니 과연 큰 노란 바위 황석(黃石)이 있었다. 그래서 장량은 그 황석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소중하게 간직했다.

후에 장량은 천수를 누리고 편안하게 삶을 마감했다. 그의 가족들은 그 황석을 장량과 함께 묻고 후에 장량의 제사를 지낼 때마다 황석공의 제사도 같이 지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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