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7 10:49:56 출처:cri
편집:李仙玉

[이광 편-3]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사진설명: 이광 장군의 무덤)

제3회 무공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지다

이광 장군은 언변에는 능하지 못했으나 군중에서 대인관계는 아주 좋았다. 그것은 그가 청렴하고 특히 병사들을 아껴 상을 받을 때마다 혼자 챙기기 않고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장군의 신분이지만 별도로 식사를 준비시키지 않고 하루 세끼 장병들과 함께 식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40년 동안 해마다 2천 섬의 높은 봉록을 받았지만 집에는 남아 도는 자산이 없었고 자산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는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할 때에도 사막에서 수원을 찾으면 모든 병사들이 다 물을 마시기 전에는 수원지 근처에 가지 않았고 군량이 부족할 때에도 병사들이 다 먹기 전에는 군량에 입도 대지 않았다. 이광은 또 인간적으로 병사를 관리해 병사들에게 항상 최대의 자율적인 공간을 주었다. 그로 인해 이광의 부대에서 장병들간 관계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장군에게 좋은 운은 따르지 않았다. 보통 노장에게는 운이 따르는 법인데 이광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한나라의 하늘에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兵)이라는 천고에 길이 빛을 뿌리고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힌 눈부신 두 개의 장군 별이 떴기 때문이었다. 이 두 사람이 혁혁한 무공을 세움으로 인해 노장 이광의 무공이 빛을 잃게 된 것이다.

기원전 122년 한무제는 흉노와의 대전을 위해 이광을 후군(後軍) 장군에 봉하고 대장군 위청을 따라 정양(定襄)으로 출정을 떠나게 했다. 이번 전투에서 한나라 군대는 선제공격을 통해 대승을 거두었고 많은 장군들이 흉노군사의 수급을 베고 그 수급의 수에 근거해 제후로 책봉되었으나 전선에서 적을 무찌를 기회가 없었던 이광은 수급 하나도 베지 못해 또 한 번 제후 책봉의 기회를 잃었다.

2년 뒤, 이광은 4천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우북평에서 출발하고 박망후(博望侯) 장건(張騫)은 다른 곳에서 출발해 한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광의 군사는 도중에 흉노의 좌현왕(左賢王)이 인솔하는 4만명의 기마병에 포위되었다. 이광은 아들 이감(李敢)을 파견해 흉노의 포위를 뚫게 했다. 이감은 수십 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흉노의 기마병들 속을 가로 질러 나갔다가 우회해서 다시 돌아와 이광에게 말했다.

“흉노군은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아주 쉽게 섬멸할 수 있습니다.”

이감의 말에 공포에 떨던 한나라 군사들이 다소 안정과 자신을 찾았다.

이광은 반원형으로 진을 치고 흉노 병을 향해 활을 쏘게 했다. 흉노군사도 한나라 군사를 향해 활을 쏘아 빗발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한나라 군사 태반이 쓰러지고 남은 화살도 얼마 없었다. 이광은 활시위만 당긴채 활을 쏘지 말라고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다음 자신만 큰 활을 연속 당겨 여러 명의 흉노 비장(裨將)을 사살했다. 그러자 흉노병의 사기가 다소 떨어졌다. 날이 어두워지자 한나라 장병들은 더욱 우왕좌왕했으나 이광은 여전히 드높은 투지로 싸움에 임해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날이 밝은 후에도 한나라 군대는 계속 싸웠고 박망후 장건의 군사도 도착했다. 흉노는 한나라의 대군이 도착한 것을 보고 싸움에 연연하지 않고 철수했다. 하지만 싸움에 지친 한나라 군사는 추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남은 군사가 얼마 되지 않은 이광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의 군법에 의하면 중도에서 길을 잃어 제때에 집결장소에 도착하지 못한 박망후 장건은 참수형을 받아야 했다. 장씨 가문에서 돈으로 장건의 목숨을 샀고 장건도 서민으로 전락되었다. 그리고 이광은 군대의 사망자가 너무 많아 공을 세우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이번에도 역시 책봉을 받지 못했다.

또 2년이 지났다. 대장군 위청과 표기(驃騎)장군 곽거병이 연합군을 인솔해 흉노 정벌에 나섰다. 이광도 수차 출정을 자청했으나 한무제는 이광이 나이도 있고 운도 안 따른다고 여겨 허락하지 않았다. 그 뒤에 시간이 많이 흘러 이광이 곧 군사무대에서 퇴장하게 되자 무제는 그래도 이광에게 마지막으로 공을 세울 기회를 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그의 출정을 허락하고 그를 전장군(前將軍)으로 임명했다.

이광은 대장군 위청을 따라 흉노 출정에 나섰다. 위청은 흉노 주력부대의 정보를 알고 자신이 몸소 정예부대를 인솔해 출발하면서 두 갈래의 군대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전진하라고 이광과 우장군(右將軍) 조이기(趙食其)에게 명령했다. 동쪽은 길이 구불구불하고 수초도 적어 이광은 위청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장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동쪽 길로 우회하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성인이 된 그날부터 흉노와 싸웠는데 오늘에야 겨우 선우(單于)와 직접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선봉장이 되어 목숨 걸고 선우와 맞서 싸우겠습니다.”

하지만 위청은 출발에 앞서 이광이 나이도 들고 운도 따르지 않으니 이번에 선우를 생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절대로 이광이 선우와 직접 맞서게 하지 말라는 황제의 어명을 받았다. 이광은 아무리 간청해도 위청이 들어주지 않자 화가 나서 대장군의 장막을 나왔다.

이광과 조이기의 부대가 동쪽으로 가는데 원래 행군 여건이 열악한데다 설상가상으로 안내자가 사라졌다. 그 바람에 대군은 방향을 잃어 약속한 시간에 대장군과 집결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대장군 위청은 선우의 주력부대와 조우했으나 이광의 부대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강차(武剛車) 전법을 이용해 단독으로 선우와 결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흉노군사의 퇴각로를 차단할 이광과 조이기의 군사가 제때에 도착하지 못하는 바람에 선우를 생포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이 제때에 집결 장소에 도착하지 못하는 바람에 대장군이 선우를 생포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된 이광은 비분하기 그지 없었다. 망망한 사막을 마주한 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통탄했다.

“하늘이여, 평생을 흉노와 싸워온 나 이광은 수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유감스럽게 큰 공을 세우지 못했노라. 이번 기회에 대장군과 함께 결전을 벌여 선우를 생포해 후세에 이름을 날리려 했는데 대장군은 하필 나를 동쪽으로 우회하게 했고 나는 또 길을 잃었으니 설마 이는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올해 나이 60이 넘은 나에게 이제 더는 나라 위해 싸우고 이름을 날릴 기회가 없다. 오늘 아예 전쟁터에서 이 한 목숨 바쳐 뜨거운 피를 사막에 뿌리게 하라!”

말을 마치자 이광은 머리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다가 스스로 긴 칼로 목을 그었다. 이광의 뜨거운 피는 그가 평생 지켜온 한나라의 변경에 뿌려졌다. 그 광경에 이광의 장병들은 그 누구 하나 통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이광의 소식을 들은 백성들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슬프게 울었다.

천지도 이광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 큰 바람이 불더니 보기 드물게 사막에 싸락눈이 내렸다.

(다음 회에 계속)

공유하기:
뉴스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