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8 09:43:38 출처:cri
편집:李仙玉

[동방삭 편-1] 재치 있는 자천서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동방삭)

해학의 대가 동방삭

서한(西漢)의 유명한 문장가인 동방삭(東方朔)은 중국 역사상 가장 총명한 사람으로 인정되어 지혜의 화신, 지혜의 성인(聖人)이라 불린다. 그는 또 풍자와 해학으로 시대상을 진단한 현인이자 재치와 장수의 대명사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인물이다.

동방삭은 성격이 유머러스하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지혜롭고 익살스러워 늘 우스갯소리로 한무제(漢武帝)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기분을 잘 살펴 적절하게 바른 소리를 하기도 했다.

모수자천(毛遂自薦)으로 벼슬자리를 얻은 동방삭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농업과 군사를 겸하는 부국강병의 계책을 내기도 했으나 한무제가 그 전략을 기용하지 않고 자신을 소일의 대상으로만 보는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해학의 대가 동방삭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재치 있는 자천서로 황제의 총애를 받다

한무제는 각지에서 보내온 자천서(自薦書)를 읽다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진(陳) 황후가 물었다.

“이렇게 폐하를 즐겁게 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 사람 재주가 대단한데요.”

한무제가 죽간을 들고 큰 소리로 읽었다.

"저는 올해 나이가 스물 둘이고 신장은 구척(九尺) 삼촌(三寸)입니다. 크고 밝은 두 눈은 생기로 넘치고 하얀 치아는 조가비처럼 가지런합니다. 또 맹책(孟責)처럼 용감하고 경기(慶忌)처럼 민첩하며 포숙(鮑叔)처럼 청렴하고 미생(尾生)처럼 신용을 지킵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천자(天子)의 신하가 될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황후도 큰 소리로 웃었다.

“자화자찬이 심하네요. 폐하 앞에서 이렇게까지 자랑하다니요!”

“기백이 있소. 마음에 드오. 제(齊)나라 출신의 이 동방삭은 인재요!”

동방삭은 이렇게 구직에 성공해서 조정의 공차대조(公車待詔)가 되었다. 황제의 부름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대조는 조정에 들기는 했지만 아직 벼슬을 받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한무제는 동방삭이 쓴 3천 글자의 자천서에 매료되어 3개월이나 그 죽간을 읽었다.

하지만 한무제는 필경 국사에 시달리는 한 나라의 황제여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동방삭의 일을 잊었다. 한편 동방삭은 공차대조가 되기는 했지만 봉록도 적고 황제를 만날 수도 없어서 마음이 울적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날, 동방삭은 말을 먹이는 난쟁이들을 보자 영감이 떠올라 그들을 위협했다.

“폐하께서는 너희들이 키가 작아서 농사도 짓지 못하고 싸움도 할 수 없는데다 나라를 다스릴 능력도 없어서 이 나라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기에 너희들에게 죽음을 하사하려 하신다. 빨리 폐하를 찾아 뵙고 용서를 구하지 못할까?”

난쟁이들은 너무 놀라서 급히 입궐해 용서를 빌었다. 어리둥절해진 한무제가 사연을 물으니 동방삭이 헛소문을 퍼뜨린 짓이라 당장에서 그를 불러 꾸짖었다.

“무엇 때문에 난쟁이들에게 겁을 주었소?”

동방삭이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를 만나 뵙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폐하를 뵈었으니 저의 모략은 성공했습니다!”

동방삭의 말에 한무제도 웃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시오?”

“난쟁이들은 신장이 삼척(三尺)이고 소신은 구척이지만 봉록은 똑 같이 받습니다. 그러니 난쟁이들은 배가 터져 죽고 소신은 굶어 죽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소신을 중용하지 않으시려면 집으로 돌려보내시지요. 그러면 조정의 봉록도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무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동방삭에게 금마문(金馬門)에서 어명을 기다리라 명하고 곧 그를 시랑(侍郞)으로 승진시켜 어전에서 시중을 들게 했다.

동방삭은 수수께끼도 잘 알아맞히고 기분과 안색을 살피는데 능했으며 말솜씨도 뛰어났다. 동방삭은 황제 가까이에서 늘 한무제를 즐겁게 해서 금방 한무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동방삭이 배우(俳優)와 다를 바 없는 황제의 놀잇감 대신이라 여겨 그를 무시했다. 하지만 동방삭은 동방삭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동방삭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무제는 장모인 관도(館陶) 공주가 60대의 나이에 18살의 미소년과 동거한다는 말을 듣고 장모의 집으로 갔다.

한무제는 장모의 집에 들어서자 말했다.

“이 집의 주인옹(主人翁)을 만나야겠소.”

주인옹이란 나이 든 남자 주인을 말한다. 관도공주는 쑥스러웠다. 그녀는 다년간 수절 중에 있었고 그 미소년 동언(董偃)은 명분이 음식을 만드는 포인(庖人)이었으니 말이다.

관도공주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한무제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동군(董君)을 만나겠소. 온 장안(長安)의 사람들이 다 아는데 왜 짐에게는 만나게 하지 않으시오?”

관도공주는 동언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한무제가 바라보니 얼굴은 옥처럼 하얗고 입술은 붉으며 치아는 하얀 동언이 아주 준수하여 마음에 들었다. 한무제는 동언에게 많은 보물을 하사하고 주인옹이라 불렀다. 또 그로부터 한무제는 늘 동언을 불러 함께 투계나 투견을 즐기고 사냥과 공놀이도 함께 했다. 황제의 총애가 있어서 동언은 온 장안성에 더욱 소문이 자자해 동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무제는 선실(宣室)에서 잔치를 마련하고 관도공주와 동언을 초대하려 했다. 손님들이 막 선실에 들어서려는데 동방삭이 갑자기 막아 나서며 한무제에게 아뢰었다.

“3대 죄장을 짊어진 동언은 죽어 마땅하니 선실에 들 수 없습니다.”

한무제가 막 화를 내려는데 동방삭이 말을 이었다.

“포인의 신분으로 사사로이 공주를 모신 것이 첫 번째 죄이고 남녀풍속을 문란하게 하여 선 황제폐하의 혼인에 해를 끼친 것이 두 번째 죄이며 경서(經書)에 의해 폐하를 격려한 것이 아니라 개와 말의 즐거움에 빠지고 귀와 눈을 호강하도록 폐하를 교사한 것이 세번째 죄입니다. 그는 나라의 적이자 사회의 악입니다. 그에게 죽음을 내리셔야 합니다.”

한무제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차린 주연이니 이 번은 봐주고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합시다.”

“아니 되옵니다. 선실은 선 황제폐하의 본전이고 국가대사를 논의하는 곳입니다. 동언은 출입이 불가합니다.”

한무제가 난처한 기색을 띠자 동방삭은 말을 이었다.

“역사의 교훈은 아주 많습니다. 제환공(齊桓公)의 음란함을 교사한 수조(竪刁)는 궁극적으로 역아(易牙)와 함께 난을 일으키고, 경부(慶父)가 거(莒)나라에서 목을 매고 나서야 노(魯)나라의 난이 평정되었으며, 관채(管蔡)가 죽고 나서야 주(周)나라 왕실이 안정되었습니다. 아무쪼록 폐하께서는 그런 지경에 이르지 마십시오.”

동방삭의 말에 깊이 심복한 한무제는 잔치를 북궁(北宮)으로 옮기고 동언은 동사마문(東司馬門)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동방삭에게는 황금 30근(1근=0.5kg)을 하사했다.

그로부터 조정의 신하들은 누구도 동방삭을 얕보지 못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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