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9 18:17:00 출처:cri
편집:金东光

자참형예(自惭形秽)

 

◎글자풀이:스스로 자(自zì), 부끄러워할 참(惭cán), 형상 형(形xíng), 더러울 예(穢huì).

◎뜻풀이: 남보다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다.  

◎출전: 남조•송(南朝•宋) 류의경(劉義慶)『세설신어•용지(世說新語•容止)』

◎유래: 위진(魏晉) 때 유명한 서예가인 위근(衛瑾)에게는 위개(衛玠)라는 손자가 있었다. 위개는 어릴 때부터 그 용모가 출중했고 그 언행이 일반 어린이들과는 확연히 달라 모두들 귀여워 했다. 

위개의 외삼촌인 왕제(王濟)는 진나라의 표기장군(驃騎將軍)이었다. 그는 외모가 준수했고 재능이 뛰어 났으며 성격이 호방하고 풍채가 좋았다. 그런 왕제가 조카를 보고는 이렇게 감탄했다. “위개와 나를 함께 세워 놓으니 마치 곁에서 옥구슬이 빛을 뿜는듯하여 나의 못생김이 부끄럽구나.(自惭形秽)”

전국에 소문이 자자한 미남자 위개는 체질이 허약했으나 총명이 과인했고 현학(玄學)을 담론하기를 즐겼다. 명절이 되어 친척친우들이 모이게 되면 위개는 좌중에 웃음꽃을 피우며 학문을 논했는데 모두들 그 깊은 학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어는 당대의 명사인 왕징(王澄)도 위개를 만나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위개의 어머니는 아들의 건강이 근심되어 외인들과 자주 접촉하는 것을 제한했고 그가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싫어했다. 

위개가 어른이 되니 그 명성이 더욱 높아졌고 조정에서는 관리직을 제안했으나 위개는 매번 출사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조정에서 여러번 청하니 하는수 없이 태자세마(太子洗馬)직을 맡게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모시고 강하(江夏)로 이주했다.

후에 위개는 건업(建业)에 갔다.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위개의 풍채를 보려고 몰려왔다. 그가 거리를 걸으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벽처럼 빙 둘러설 정도였다. 위개는 본래 체질이 약한 터라 이렇게 힘든 날이 며칠 계속되니  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얼마 후 죽게 되었는데 그때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고 그가 너무 많은 사람들의 “구경”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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