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9 09:25:17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두보 편: 제2회 벼슬을 기다리다

(사진설명: 두보의 화상)

제2회 벼슬을 기다리다

꽃 피는 4월이 왔다. 장안성(長安城)에 도미꽃이 만개하고 버들개지가 날렸다.

함양교(咸陽橋) 주변을 거니는 두보는 유난이 마음이 무거웠다.

“장안에 온지 어언 5년이 넘었구나. 4년 전에 재상 이림보(李林甫)의 기만을 당해 괜히 기뻐했었지. 그리고 지난해에는 황제폐하께 세 번이나 부(賦)를 올려 폐하께서 아주 만족하시고 나더러 집현원(集賢院)에서 관직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1년가 다 되어가는 동안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아아, 우리 가문에서는 자자손손 모두가 벼슬을 해왔다. 시를 잘 쓰신 조부의 관직은 선부원외랑(膳部員外郞)에 이르렀고 부친도 봉천현령(奉天縣令)을 맡으셨다. 설마 우리 가문의 관운(官運)이 나의 대에 와서 끝난 것인가? 책도 많이 읽고 시도 백 수나 쓰고 이름도 날렸는데 지금까지 여전히 웅대한 포부를 펼치지 못하니 설마 이게 나의 운명이란 말인가?”

두보가 이렇게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데 갑자기 병거의 바퀴 구르는 소리와 군마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보가 머리를 들어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바람이 불어 자욱하게 날리는 먼지와 버들개지가 함양교의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등에 활과 화살을 메고 출정하는 사람들이 걸어오고 그들을 배웅하는 가족들이 울며 그들의 옷깃을 잡고 놓지 않았다. 통곡소리가 하늘땅을 진동해 초상이라도 난 듯 했다. 두보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 사람들이 왜 초상이라도 난 듯 저렇게 슬프게 우는 겁니까?”

행인이 탄식했다.

“패전한 양(楊) 나리가 승전했다고 허위로 보고했습니다. 남조(南詔)를 정벌할 장정을 징집하지 못하니 길을 막고 아무나 잡아 족쇄를 채워 강제로 출정시키고 있습니다. 남조는 날씨도 무덥고 전염병도 많아서 병사들 중 열에 아홉은 싸우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가족들은 남조로 가면 살아 돌아오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저렇게들 우는 거죠.”

두보의 가슴에 비분이 가득 찼다. 고적(高適)이 말하던 군중의 부패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여전히 간신들의 속임수에 들어 백성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무력을 휘두르며 해마다 전쟁만 하고 있었다.

거처로 돌아온 두보는 백성들을 위해 쓴 첫 수의 정치시(政治詩) <병거행(兵車行)>을 일필휘지했다. 구(舊) 표제를 사용하지 않고 내용에 의거해 표제를 삼으며 다른 제재나 내용의 속박을 받지 않은 이 악부시(樂府詩)는 당(唐)나라 신악부시(新樂府詩)의 발단이라 할 수 있다.

두보는 이 시에서 출정을 떠나는 군사의 말을 빌어 백성들의 아픔과 슬픔을 토로하고 궁병독무(穷兵黷武)를 일삼는 지배자들의 범행을 성토했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君不見) 청해호 주변에(靑海頭) 예전부터 백골을 거두는 사람이 없어(古來白骨舞人收) 새 귀신은 원통해하고 옛 귀신은 곡을 하며(新鬼煩寃舊鬼哭) 날 흐리면 비에 젖어 흐느껴 우는 것을(天陰雨濕聲啾啾)’라고 시의 마지막 구절을 쓴 두보는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세월은 흘러 어언 천보(天寶) 12년(753년)이 되었고 그때까지도 두보는 여전히 장안을 지키고 있었다.

바로 그 해 이림보가 죽고 양귀비의 사촌 오라버니 양국충(楊國忠)이 우상(右相)이 되었으며 조정은 점점 더 부패해졌다. 막강한 권세를 장악한 양국충은 눈에 뵈는 게 없이 양귀비의 사촌언니 괵국부인(虢國夫人)과 근친상간을 저지르며 공공연하게 나란히 입궐도 했다. 장안의 신하와 백성들이 너도 나도 이 일을 입에 올렸지만 당명황(唐明皇)은 보고도 못 본체했다.

음력 3월 초사흘 삼짇날 양씨가문의 일가족이 곡강(曲江)에 배를 띄우고 잔치를 베풀었다. 국부인(國夫人)이 된 양씨 가문의 자매들은 하나같이 꽃 단장을 하고 머리에도 온갖 보석을 달았다. 봄날의 곡강은 그림 같이 아름다웠다. 창포에 신록이 물들고 휘늘어진 버드나무는 안개 같았고 푸른 강물과 붉은 꽃이 어우러져 산뜻하고 화사했다. 두보는 양씨 가문의 남녀들이 훌륭한 가마를 타고 건방지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았다. 백성들은 그런 양씨 가문의 사람들을 경멸하고 얼굴에 분노의 표정을 띠면서도 감히 말은 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두보는 악부시 <여인행(麗人行)>을 썼다.

화창한 삼월 삼짇날(三月三日天氣新)

장안 물가에 미인들 모였네(長安水邊多麗人)

뜻은 멀어도 농염한 자태는 맑고 참되며(態濃意遠淑且眞)

피부는 윤기 흐르고 몸매는 날씬하네(肌理細骨肉勻)

저무는 봄 햇살 수놓은 비단 옷을 비추니(綾羅衣裳照暮春)

금실 공작과 은실 기린 부끄러워하네(蹙金孔雀銀麒麟)

두보는 겉치레가 화려하고 뜻이 풍자적인 단어를 써서 백성의 시각으로 본 황음무도하고 지극히 사치스러운 양씨 가문의 생활을 마음껏 풍자했다.

두보는 장안에 10년 간 묵으면서 온갖 우여곡절 끝에 천보(天寶) 14년(755년)에야 겨우 우위솔부(右衛率府) 주조참군(胄曺參軍)이라는 정8품 관직을 받았다. 그는 부임하러 가기에 앞서 먼저 친척집에 얹혀 사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보려고 봉선(奉先)으로 떠났다. 두보가 도착하니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모두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두보가 낮은 목소리로 아들을 품에 안고 목놓아 우는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가 작은 아들의 얼굴을 덮었던 수건을 걷자 두보는 조각 같던 아들의 얼굴이 검게 변한 것을 보았다.

“세상에, 귀여운 우리 막내가 어미 품에서 굶어 죽다니!”

죽은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 두보는 통통하던 아들의 작은 얼굴이 바싹 여위고 두 눈도 움푹 꺼진 것을 보며 슬프게 울었다.

그 며칠 두보는 다른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내가 무슨 부친인가, 내가 부친 자격이 있는가?”하는 한 가지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그는 자신이 걸어온 지난 10년의 삶을 다시 돌아보며 반성했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나는 왜 장안에 죽치고 있었지?”

두보는 돌아오는 길에 부자들은 취생몽사(醉生夢死)에 빠져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본 생각이 났다.

두보의 시상이 또 떠올랐다. 그가 이번에 창작한 것은 장편서사시, 위대한 현실주의 걸작인 <자경부봉선현영회오백자(自京赴奉先縣咏懷五百字)>였다. 시의 제목을 풀이하면 ‘장안으로부터 봉선현에 가며 회포를 읊다’이다.

두릉에 베옷 입은 이 있어(杜陵有布衣)

늙어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지는구나(老大意轉拙)

어찌도 그리 어리석은가(許身一何愚)

조심스럽게 직과 설에 비겨보네(竊比稷輿)

해가 다 하도록 백성들을 걱정하여(窮年黎元)

오장이 타 들어가도록 탄식하였네(歎息腸內熱)

함께 공부한 노인들의 웃음거리가 되면(取笑同學翁)

호방한 노래가 더욱 커지네(浩歌彌激烈)

궁궐에서 비단을 하사하는데(庭所分帛)

이는 본래 가난한 집 아낙들이 만들었고(本自寒女出)

그 집 남편과 가족을 매질하여(鞭撻其夫家)

모질게 거둔 것을 공물로 바친 것이리(聚斂貢城闕)

손님에게 낙타발굽 탕을 대접하고(勸客駝蹄羹)

향기로운 유자는 노란 귤 위에 있네(霜橙壓香橘)

붉은 문 안에서는 술과 고기 냄새 풍겨오는데(朱門酒肉臭)

길가에는 얼어 죽은 사람들의 뼈가 구르네(路有凍死骨)

두보는 자신의 인생 포부를 밝히며 ‘해가 다 하도록 백성들을 걱정하여(窮年懮黎元) 오장이 타들어가도록 탄식하는(歎息腸內熱)’숭고한 경지를 보여주고 나서 봉선으로 가는 도중의 견문을 묘사하며 ‘궁궐에서 비단을 하사하는데(彤庭所分帛) 이는 본래 가난한 집 아낙들이 만들었고(本自寒女出)’ ‘붉은 문 안에서는 술과 고기 냄새 풍겨오는데(朱門酒肉臭) 길가에는 얼어 죽은 사람들의 뼈가 구르네(路有凍死骨)’라는 등 천고의 명구들을 적었다. 끝으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본 정경을 서술하면서 자신은 조세(租稅)를 면했음에도 아들이 아사했는데 가난한 백성들은 얼마나 더더욱 어려울 것인가를 생각했다. 또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과 국경을 지키는 군사들을 생각하니 종남산(終南山)보다도 높고 홍수보다도 넓은 슬픔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두보의 시가 묘사한 이 광경이 바로 도처에 위기가 숨어 있고 차마 백성들의 생활상을 눈 뜨고 볼 수 없는, 안사의 난(安史之亂)이 폭발하기 직전의 사회상이었다.

성당(盛唐)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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