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7 12:04:21 출처:cri
편집:李仙玉

[장건 편-2] 서역을 넘어 도착한 대월지

(사진설명: 장건의 기념관)

제2회 서역의 나라들을 거쳐 대월지에 도착하다

차사국에 이르러서야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장건이 입을 열었다.

“이 10년 동안 서역에 많은 변화가 발생했소. 대월지국이 더는 이리에 있지 않소. 오손국(烏孫國)이 대월지국을 파하고 이리초원을 점령해버렸소. 대월지는 총령을 넘어 더 서쪽의 함해(咸海)근처까지 가서 대하국(大夏國)을 격파하고 그들의 땅에 정착했소. 그러니 우리는 이리로 갈 수 없소. 만약 그 곳에 가면 오손국 사람들이 우리를 흉노에게 바칠 수도 있소. 오손국은 흉노에게 붙어 해마다 공물을 진상하고 있으니 말이오.”

감부가 말했다.

“장대인님은 우리보다 더 많은 일을 아십니다. 이는 모두 선우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이지요. 선우는 장대인님에게 흉노의 세력확장을 자랑했지요. 대월지국에 사절로 가려는 생각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수행인원들이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건이 대답했다.

“우리는 다른 길로 가야 하오. 총령을 넘어가는 다른 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오. 서역은 도시국가들의 지역이라 한 도시가 한 나라이니 수십 개의 나라가 있는데 설마 다른 길이 없겠소?”

장건은 과연 고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탐험가와 외교가였다. 그는 서역에 들어선 최초의 중국 사절이었다. 그는 한 나라에 이를 때마다 한(漢)나라의 넓은 국토와 강대함을 홍보하면서 서역의 나라를 찾은 것은 서역의 나라들과 친선관계를 맺기 위해서라고 역설했다.

장건과 일행은 언기(焉耆)국을 지나고 타리무(塔里木) 강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서 쿠처(庫車)국과 소륵(蔬勒)국 등을 지나 충령을 넘어 대완국(大宛國), 즉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에 이를 때까지 이런 서역의 나라들과 아무런 외교분쟁도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수십일 동안 이어진 여로에는 온갖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서역의 자연여건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땅이 넓은 서역에는 인적이 드물고 오아시스가 나타나야 그곳에 한 개의 나라가 있을 뿐 다른 넓은 지역은 온통 황사가 흩날리는 사막이었다. 기후도 건조해서 뜨거운 열기가 덮치고 물도 없어서 몇 몇의 수행인원은 목이 말라 죽기까지 했다.

오늘의 파미르고원을 말하는 충령은 또 적설이 쌓인 산봉우리가 줄지어 서고 찬 바람이 불어오며 산길이 험준해 몇 몇은 빙하에 굴러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먹거리가 떨어져 모두들 허기가 져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했다. 다행히 충성스러운 감부가 사격에 능해서 새와 산짐승을 잡아 허기를 달랬다. 그들이 대완국에 이르렀을 때 대한(大漢)의 사절들은 모두 옷이 남루하고 얼굴이 누렇게 뜬 거지 몰골이었다.

대완국 왕은 상인들로부터 동방에 땅이 기름지고 국력이 강한 한나라가 있다는 것을 듣고 한나라와 사이 좋게 지내고 싶었으나 대완국과 한나라 사이에 야만적이고 사나운 흉노가 있는 바람에 그 생각을 실현하지 못했다.

거지몰골의 한나라 사신들을 본 대완국 왕이 의아스럽게 물었다.

“그대들의 나라에는 도처에 황금이 깔려 있고 쌀이 산처럼 쌓여 있으며 화려한 실크로 옷을 지어 입는다고 들었는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런 몰골이시오?”

장건이 여로의 어려움을 설명하며 대답했다.

“이번에 우리는 대월지국에 사절로 가려고 출발했는데 대월지국이 이미 머나먼 함해로 이주할 줄을 몰랐습니다. 대왕께서 사람을 보내 저희들을 대월지국까지 이르게 해주신다면 이제 한나라로 돌아간 다음 귀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화려한 실크를 귀국에 선물하여 귀국의 도움에 깊은 사의를 표하도록 폐하께 아뢰겠습니다.”

한나라의 사절을 만난 국왕은 원래 놀라고 기뻤는데 장건의 말을 듣자 더욱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대완국 왕은 즉시 신변의 대신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한나라의 귀빈들을 잘 대접하시오. 먼저 그들에게 제일 좋은 모피 두루마기를 바꾸어 입게 하고 통양구이를 대접하시오.”

그리고 나서 대완국 왕은 장건에게 말했다.

“대월지로 가려면 반드시 강거(康居)국을 경유해야 하오. 짐이 사람을 파견해서 그대들을 강거국까지 호송하고 그대들의 상황을 강거국 왕에게 설명하리다. 그러면 강거국 왕이 그대들을 대월지까지 호송할 것이오. 강거국에서는 우리의 행동이 조금 불편해서 그러오.”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장건이 동의했다.

대완국 왕이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이 곳의 환경에 익숙하지 않고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안내자와 통역사를 파견하리다.”

“그러시다면 너무 감사합니다. 대왕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장건 일행은 대완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대완국인들의 호송으로 강거국, 오늘날의 타지키스탄에 도착했다. 강거국 왕은 한나라의 사절들임을 알고 아주 우호적으로 장건 일행을 대월지국으로 호송했다.

장건이 대월지국에 이르니 왕은 놀랍게도 여인이었다. 대월지국의 왕이 흉노에 의해 죽은 후 대월지국의 백성들이 젊은 왕후를 왕으로 추대했다는 것을 장건은 후에 알게 되었다.

장건이 여왕에게 한나라 황제의 뜻을 전했다.

“한나라 황제폐하께서 귀국과 연합해 흉노에 복수하고자 저를 보내셨습니다. ”

그런데 여왕이 다른 의사를 표시했다.

“지금 우리는 흉노를 멀리 떠나 있소. 그들을 건드리지는 못해도 피할 수는 있소. 우리는 복수하지 않겠소.”

“왕을 살해한 원수를 이렇게 빨리 잊었다는 말씀이십니까? ”

장건의 그 말에 여왕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남편을 잃어서 남편을 잃은 여인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알고 있소. 나는 더 많은 대월지국의 여인들이 남편을 잃게 하고 싶지 않소.”

장건이 할 말을 찾지 못하자 여왕이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온갖 간난신고 끝에 이 곳에 왔으니 여기서 좀 많이 머무시오! 그러면 흉악한 흉노를 멀리 떠나 이 곳에 이른 우리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우리가 왜서 흉노에 복수하러 가지 않는지 알게 될 것이오.”

대월지국에 한동안 머물면서 장건은 여왕이 왜서 흉노와 복수하러 가지 않겠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월지국이 자리잡은 새 땅은 토지가 기름지고 물산이 풍부했으며 대월지국의 사람들은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한 곳에 정착해 농경에 종사하고 있었다. 더욱이 흉노를 멀리 떠난 이 곳은 그나마 평안했다. 그러니 여왕은 다시는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여왕은 흉노가 한나라와 싸워 이기지 못하면 흉노가 그 화를 대월지국에 대신 풀 것이라는 걱정도 했다. 그 때 가서 한나라가 만 리(里, 1리=0.5km)나 떨어져 있는 대월지국을 구원하러 올 수 있을까 하는 우려심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하면 크지 않은 대월지국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여왕의 생각이었다. 장건은 대월지국에 1년 남짓이 머물면서도 한나라와 동맹을 맺도록 대월지국 여왕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장건은 별도로 다른 것을 얻었다. 그는 그 동안 중앙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을 돌아보았던 것이다. 한 번은 감부를 데리고 남하해 오늘날의 아프간을 말하는 대하(大夏)국에 이르렀는데 대하국의 시장에서 촉(蜀)의 땅에서 나는 공죽(邛竹) 지팡이와 견직물을 발견했다. 놀란 장건이 물었다.

“이런 물건은 어디서 들여옵니까?”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신독(身毒)에서 들여옵니다.”

신독이란 오늘의 인도를 말한다. 장건이 또 물었다.

“신독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동남쪽으로 약 2천리 거리입니다.”

장건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촉군(蜀郡)에서 신독까지 이르는 길이 있구나. 이제부터는 서남쪽에서 길을 찾아 신독에 들어서고 신독에서 북상하면 마찬가지로 서역에 이를 수 있겠다.”

장건은 신강(新疆)의 여러 도시 국가를 방문한 외에 중앙아시아의 대완국과 강거국, 대월지국, 대하국을 방문했으며 또 오늘날의 카스와 이리를 말하는 오손국과 오늘날의 이해(里海)를 말하는 엄채(奄蔡)국, 오늘날의 이란을 말하는 안식(安息)국, 신독국 등 나라의 많은 인문지리상황도 파악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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