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8 11:48:19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육우 편: 제3회 벗을 사귀고 차를 연구하다

제3회 벗을 사귀고 차를 연구하다

당숙종(唐肅宗) 상원(上元) 원년(760년), 육우는 스승 추부자(鄒夫子)와 작별하고 화문산(火門山)을 내려 관중(關中)의 난민들과 함께 강남으로 갔다. 당시 19살의 육우는 나이는 어려도 가슴 속에 중국인들에게 차의 기원을 알려주고 제다법과 탕법, 음다법 등을 가르치고자 <다경(茶經)>을 쓰려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그가 강남으로 향한 것은 찻잎의 생산을 돌아보고 차선별의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기분파인 육우는 성격이 좋지 않았고 특히 자주 화를 냈다. 그럼에도 강남에 이른 그는 장원으로 과거시험에 급제한 명인 황보염(皇甫冉)과 망년지교를 맺어 그의 후원을 많이 받았으며 또 남조(南朝) 사령운(謝靈運)의 제10대 손이자 당시의 유명한 시승(詩僧)인 교연(皎然)과도 40년간에 걸쳐 우정을 다졌다.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에 기록된 교연의 유일한 시가 바로 <심육홍점불우(尋陸鴻漸不遇)>, ‘육유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이니 육우와 교연의 깊은 친분을 잘 알 수 있다.

옮긴 집이 성곽을 끼고 있으나(移家雖帶郭)

뽕나무 삼나무 사이 오솔길을 지나야 하네(野徑入桑麻)

근래 울타리 곁에 국화를 심었는데(近種籬邊菊)

가을이 왔건만 아직 꽃이 피지 않았구나(秋來未箸花)

문을 두드려도 개 짖는 소리조차 없어(叩門無犬吠)

떠나려다 옆집에 가서 물어보니(欲去問西家)

대답하는 말이 산에 갔는데(報道山中去)

늘 해가 져야 돌아온다고 하네(歸來每日斜).

강남에 머물며 조용히 살아가는 육우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이 시는 선가(禪家)의 일품으로 인정된다. 그때 육우는 벌써 유명한 산중달인이 되었다.

한 번은 지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에 참석한 한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이렇게 뽐냈다.

“당신들은 황금으로 만든 술잔을 보았소? 옥으로 만든 대접은? 못 봤지? 내가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것들을 보았는지 아시오? 그것은 내가 태자를 배알했었고 태자가 차린 잔치에 참석했기 때문이오. 하하하, 보아하니 넓은 세상을 본 사람이 많지 않구려!”

장원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높은 벼슬도 한 황보염이 무슨 세상을 보지 못했겠는가? 당시 무석(無錫)의 현위(縣尉)였던 그는 사실상 산중에 은둔한 상태였다. 황보염은 쓸데 없는 자랑을 펴놓는 속물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침묵하고 있는데 육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높은 목소리로 즉흥시를 읊었다.

황금으로 만든 주기도 부럽지 않고(不羨黃金)

백옥으로 만든 술잔도 부럽지 않다네(不羨白玉杯)

아침에 조회에 나가 정무를 보는 것도 부럽지 않고(不羨朝入省)

저녁에 어사대에 올라 세상을 보는 것도 부럽지 않네(不羨暮登臺)

단지 서강물만 부럽고 부러워라(千羨萬羨西江水)

한때 경릉성 기슭까지 흘러갔으니(曾向竟陵城下來)

시를 다 읊은 육우는 이렇게 모를 박았다.

“이 시는 <육선가(六羨歌)>라고 부르오. 부귀영화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나가시오. 가는 길이 다르면 함께 할 수 없소.”

그런데 그 속물은 자리를 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더 떠들었다.

“꺼지려면 당신이나 꺼져! 네가 뭔데? 어디서 굴러들어온 놈이 감히 여기 와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고상한 체 하는거야!”

육우가 모욕을 받고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그래. 내가 꺼진다. 너 같은 속물과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실려니 내 얼굴이 뜨겁다!”

속물에게 욕설을 퍼부은 육우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황보염도 급히 육우를 따라 나섰다.

문밖에 와서 황보염이 육우에게 말했다.

“육 선생은 참으로 범인이 아니시군 그려. <육선가>는 참으로 고상하고 우아한 대작이오. 내일 저녁 선생을 우리 집에 초대하오니 함께 술을 나누고 시를 지읍시다!”

“그럼 염치 없지만 명을 따르겠습니다. 내일 저녁 약속시간에 찾아가겠습니다!”

육우는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이튿날 오후 갑자기 광풍이 불고 소낙비가 쏟아져 황혼이 되자 홍수가 황보염 저택의 문 앞까지 들이닥쳤다. 황보염이 출렁이는 물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는데 육우가 무릎까지 오는 물 속을 걸어 저택 문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황보염은 급히 육우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육 선생은 참으로 신의를 지키는 군자이시군 그려. 이런 날씨에도 약속을 지키시다니!”

감동을 받은 황보염의 말에 육우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약속을 했으니 설령 하늘에서 칼 비가 내리고 호랑이가 길을 막는다 해도 그 약속을 저버릴 수 없지요!”

그로부터 황보염과 육우는 막역지우가 되었다.

육우는 호주(湖洲) 오흥(吳興)의 묘희사(妙喜寺)에서 시승(詩僧) 교연(皎然)을 알게 되었고 교연의 소개로 강남의 시인들인 유장경(劉長卿)과 장지화(張志和), 서예가 안진경(顔眞卿) 등을 만났다.

육우와 교연과의 친분은 날이 갈수록 두터워졌다. 어느 날 육우가 교연을 불렀다.

“사원의 옆에 다정(茶亭)을 지어 사람들에게 다도를 가르치고 싶소. 그리하여 차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 점차 풍속을 바꿈으로써 차로 술을 대신하게 하고 싶소.”

“그렇게 되면 참으로 공덕이 무량하겠네. 하지만 그러려면 안자사(顔刺史)의 후원이 있어야 하네.”

두 사람은 즉시 호주 자사 안진경을 찾아갔다. 육유의 뜻을 아는 안진경은 당장에서 부하들을 보내 다정을 짓게 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날, 교연은 다정에 <구일여육처사우음다(九日與陸處士羽飮茶)>, ‘구일 육우와 차를 마시며’라는 제목의 시를 적었다.

구일 산승의 암자엔(九日山僧院)

동쪽 울타리에 노란 국화 활짝 피었네(東籬菊也黃)

속인들은 흔히 국화를 술에 띄우지만(俗人多泛酒)

국화 향을 빌려다 차의 향을 더할 이는 누굴꼬(誰借助茶香)

차로 술을 대신하는 새로운 기풍을 형성하고자 하는 육우를 도와주기 위해 교연은 그야말로 고심했고 전력을 기울였다.

다도를 연구하는 과정에 육우는 좋은 차를 우리려면 좋은 찻잎과 좋은 물 두 가지가 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육우는 각지를 돌아보며 22가지 좋은 차를 발견했다. 그는 또 좋은 차 나무 육종도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육우는 생각을 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파였다. 좋은 차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그는 곧 강서(江西) 상요(上饶)로 가서 차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3년이 흐르자 육우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한 교연이 70살의 노구를 이끌고 먼 길을 걸어 육우를 찾아 강서로 가서 다시 호주 오흥으로 돌아올 것을 육우에게 권고했다.

육우는 교연의 우정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이 3년간 얻은 바가 많소. 좋은 차나무를 재배하는 경험을 얻었으니 이제 묘희사로 돌아갈 수 있소 그려.”

육우와 교연, 이 두 망년지우는 나란히 호주 오흥으로 돌아갔다.

(다음 회에 계속)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