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8 12:07:48 출처:cri
편집:李仙玉

[장건 편-3] 성공한 두 번째 서역방문

(사진설명; 장건의 동상)

제3회 두 번째 서역방문에서 성공을 거두다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천고마비의 가을이었다. 한무제는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바라보았다. 끼룩끼룩 울어대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조금은 슬프게 들려왔다. 한무제는 전국의 병력을 집중해 흉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들려오는 기러기 울음소리에 한무제는 또 다시 장건을 기억에 떠올렸다.

“벌써 13년이 흘렀는데 장건은 살아 있을까? 그가 서역으로 사절로 떠나던 그 때도 기러기 떼가 남쪽으로 날아갔었는데 기러기는 해마다 고향으로 돌아오고 짐도 해마다 장건을 기다리고 있다. 기러기는 열세 번이나 날아 지나갔지만 한 번 간 장건은 어이하여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가? 에이. 만약 장건이 대월지국을 설득해서 동시에 출병한다면 양쪽에서 두 나라의 공격을 받은 흉노는 반드시 우왕좌왕할 것이다. 그러면 흉노를 멸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폐하께 아룁니다! 장건이 알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종의 목소리가 한무제의 생각을 깨는 바람에 한무제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누구라고? 누가 알현하겠다고?”

시종이 중복했다.

“장건이 알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역으로 갔던 장건이 돌아왔습니다!”

선실(宣室) 계단에 서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며 종무소식의 장건을 생각하던 한무제는 장건이 돌아왔다는 소리에 급히 말했다.

“빨리 들어오라 하라!”

그리고 자신도 빠른 걸음으로 대궐 문을 바라고 나아갔다.

장건은 대궐 문에 들어서자 마주 오는 한무제를 보고 급히 무릎을 꿇었다.

“폐하, 장건이 인사 올립니다!”

한무제가 급히 대답했다.

“어서 일어나시오. 들어가서 말합시다! 짐도 할말이 아주 많소.”

장건이 한무제를 따라 선실에 들어서자 한무제가 물었다.

“그대는 어이 거지꼴을 하고 있는게요? 수종들은 또 다 어디로 가고?”

“감부만 저를 호송해 장안으로 돌아오고 다른 수종들은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면서 장건은 지난 13년간의 일들을 한무제에게 보고했다.

“고생들이 많았소. 그러니 군신(軍臣) 선우가 죽고 흉노에 내란이 일어난 틈을 타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겨우 돌아왔다는 말이요?”

“그렇습니다. 또 흉노에게 잡힐 것을 우려해 돌아올 때는 타리무(塔里木) 분지의 남쪽, 곤륜산(崑崙山) 북쪽 산자락을 따라 사처(莎車)와 어전(於闐), 선선(鄯善)을 거쳐 서해(西海)의 강인(羌人)지역에 이르렀는데 그 곳도 흉노에게 강점당 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흉노에게 잡혀 1년 여간 억류되었다가 군신 선우가 죽고 그의 동생과 태자가 보위를 다투느라 우리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사막을 지나 겨우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감부가 물을 찾아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도 사막에서 목이 말라 죽었을 것입니다.”

“태자 어선(于單)은 우리에게 항복했으나 군신 선우의 동생인 좌곡려(左谷蠡) 왕이 스스로 선우라 자처하고 있는데 그는 군신 선우보다 더 흉악한 놈이오. 그의 좌현왕과 우현왕의 실력도 나쁘지 않고. 대월지국이 우리와 동맹을 맺으려 하지 않는다니 참으로 안타깝소.”

장건은 주머니에서 보배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말했다.

“비록 대월지국과의 동맹결성은 설득하지 못했지만 서역 각 나라들의 상황을 잘 파악해서 우리 한나라의 위력을 멀리 서역에까지 퍼뜨릴 수 있었습니다. 또 적지 않은 보배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칼을 만드는 알루미늄이고 이건 거여목 종자입니다…”

장건이 온갖 고생을 다 하며 큰 공을 세우고 감부도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한 한무제가 황명을 내렸다.

“장건을 태중(太中) 대부로 봉하고 당읍감부를 봉사군(奉使君)으로 봉해서 그들의 공을 표창한다.”

장건이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사은을 표하자 한문제가 또 입을 열었다.

“장 대부, 그대는 흉노의 상황을 잘 아니 이번에 위청(衛靑)과 같이 흉노 정벌에 동참하오. 무공을 세워야 제후로 책봉할 수 있지 안 그러면 서역에 사절로 다녀온 공이 아무리 커도 대부를 제후에 봉할 수 없소.”

자신을 위해 애쓰는 황제의 마음을 안 장건은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리며 황은에 감사를 표시했다.

장건은 종래로 패전한 적이 없는 대장군 위청을 따라 흉노 정벌에 나서 승리를 거두고 과연 박망후(搏望侯)에 책봉되었다. 하지만 1년 후에 액운이 따라 다니는 이광(李廣) 장군을 따라 흉노출정을 갔다가 길을 잃어 제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지 못하는 바람에 서인(庶人)으로 전락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삼엄한 군법은 황제도 어길 수 없었다. 장건을 봐주려고 해도 마음 뿐인 한무제는 장건의 능력을 높이 사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장건을 중랑장(中郞將)에 봉한 후 오손국과 동맹을 맺어 함께 흉노에 맞서고자 하는 목적으로 그를 오손국에 파견했다.

장건은 3백 여명을 거느리고 후한 사례금과 풍성한 예물을 가지고 키 높은 산봉우리가 기복을 이룬 충령에 또 한 번 올랐다. 충령에 올라 저 멀리 바라보니 기복을 이룬 설산과 천군만마가 달리 듯 기세 좋게 흐르는 강물, 일망무제한 고비사막이 모두 그렇듯 낯설고 또 그렇듯 다정하게 안겨왔다. 장건은 저로 모르게 크게 외쳤다.

“서역이여, 내가 또 왔노라!”

하지만 장건은 자신의 체력이 딸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오손국에서 몇 개월간 머물고 중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는 몸소 가지 못해 대완국과 강거국, 대월지국, 대하국에는 부사절들을 파견해 선린관계를 맺음으로써 한나라의 명성을 중앙아시아, 나아가서 동유럽과 남유럽에까지 널리 떨치게 했다.

오손국 왕 곤막(昆莫)은 후한 사례금과 장건의 진정성에 감동되어 한나라와 협력해 흉노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오손국왕은 이런 조건을 제시했다.

“대한(大漢)의 공주는 모두 꽃처럼 아름답다고 들었소. 그리고 예전에 한나라 공주들이 흉노의 선우들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소. 한나라 폐하께서 우리와 협력하려 하시는데 나는 한나라의 공주를 왕후로 맞이하고 싶소. 폐하께서 나를 사위로 두시면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 되지 않겠소?”

장건이 단호하게 곤막의 말을 반박했다.

“폐하께서 공주 화친(和親)의 방법을 극히 싫어하시기에 흉노와 결사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대왕의 이 요구를 절대 받아 들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손국 왕은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나는 진정으로 대한과 협력하려 하는데, 두 나라가 화친한다 해서 나쁠 것이 무엇이오? 폐하께서 너무 체면을 보아주지 않으시는군.”

장건은 이렇게 생각했다.

“폐하께서 여자로 평화를 바꾸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둘째치고 공주가 장안에서 8천 9백 리나 떨어져 있는 이 오손국에 시집을 오면 그는 평생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부모도 만나지 못하지 않겠는가? 나부터도 이건 받아들일 수 없어.”

장건의 마음을 읽은 듯 오손국 왕이 웃으며 말했다.

“됐소. 이 일은 돌아가서 폐하께 말씀 드리시오. 폐하께서 생각을 바꾸실 것이오. 나는 한나라 공주가 반드시 우리 오손국으로 시집을 올 것이라 믿소.”

그 말에 장건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꿈이나 꾸어라. 폐하께서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니.”

중앙아시아 각 나라로 나갔던 부사절들이 육속 돌아왔다. 또 각 나라들의 사절들도 장안으로 가서 한나라 황제를 만나고자 부사절들과 함께 왔다. 두 번째 서역 방문에서 이토록 큰 외교적 성과를 거두자 장건은 너무 기뻤다! 유일한 유감이라면 오손국 왕이 한나라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겠다는 무리한 요구를 제출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장건의 마음은 줄곧 편안하지 못했다.

장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건은 이상하게 공주가 만약 오손국으로 시집을 가게 되면 이 머나먼 길에서 얼마나 슬플 것이며 오손국에 도착한 후에는 또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유목민의 나라에서 십여 년을 지낸 이 탐험가와 외교가는 어릴 때의 생활습관을 버리고 전혀 다른 이국의 풍속을 받아 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기원했다.

“폐하, 절대 오손국 왕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시면 아니 됩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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