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육우 문화원 일각)
제4회 <茶經>을 쓰고 茶神이 되다
교연 스님이 입적한 후 육우는 상저옹(桑苎翁)이라 자처하며 소계(苕溪) 기슭에 지은 초막에서 <다경(茶經)> 편찬에 몰두했다. 그때까지 육우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많은 자료는 모았으나 <다경>이라는 대작을 써내기는 쉽지만은 않았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육우는 황막한 벌판을 홀로 거닐며 큰 목소리로 시를 읊거나 미친 듯이 달렸으며 혹은 목놓아 울었다. 혹은 미친 듯, 혹은 멍청한 육우를 본 많은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경릉(竟陵)의 저 괴인(怪人)은 초(楚) 나라의 광인 접여(接與)가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닌가?”
당시 육우는 벌써 명성이 자자해서 호주(湖州)의 신임 자사(刺史) 이계경(李季卿)의 특별 초청을 받았다. 육우가 다구를 가지고 역관(驛館)에 도착하자 이자사가 입을 열었다.
“육우 군의 다도는 천하에 유명하다고 들었소. 여기 양자강(揚子江)의 남령수(南零水)도 심히 좋으니 두 절묘함이 만난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니겠소. 육우 군이 다도를 펼쳐 우리 함께 차를 마셔봄이 어떻겠소!”
이자사는 당장 배를 타고 가서 남령수 강물을 떠오라고 부하 군사에게 시켰다.
육우는 군사가 물을 길러 간 사이에 먼저 다구들을 정연하게 펼쳐놓았다. 좀 지나 병사가 물을 길어 왔다.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맛을 본 육우가 말했다.
“이 물은 양자강의 물이기는 하지만 남령수 구간에서 길어온 것이 아니라 강기슭에서 떠온 듯 합니다.”
“제가 배를 저어 남령까지 가서 물을 긷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군사의 말에 육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통을 들어 반 정도의 물을 쏟아 버리고 또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맛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물이야 말로 남령수입니다.”
깜짝 놀란 군사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남령에서 물을 길어가지고 오는데 배가 흔들려 물통의 물이 넘쳐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물이 모자랄 까봐 강기슭에서 물을 더 담았습니다. 그런데 육처사께서 이토록 신통하시니 감히 사실을 아룁니다.”
이자사와 그 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경이로운 눈빛으로 육우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자사가 물었다.
“육우 군이 본 강물 중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으시겠소?”
그 물음에 육우의 말문이 폭포수처럼 활짝 열렸다.
“여산(廬山) 강황곡(康王谷)의 폭포 물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무석(無錫) 혜산사(惠山寺) 샘물이 두 번째구요. 세 번째는 기주(蕲州)의 난계(蘭溪) 강물입니다. 그리고 협주(峽州)의 부채산 자락에 툭 튀어나온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서 아주 맑은 샘물이 흘러 나옵니다. 그 바위의 모양이 거북이와 같다고 해서 두꺼비 물이라고 부르는데 그 물이 네 번째입니다. 다섯 번째는 소주(蘇州) 호구사(虎丘寺)의 석천수(石泉水)이고 여섯 번째는 여산(廬山) 초현사(招賢寺)의 하방교(下方橋) 담수물, 일곱 번째는 양자강 남령수이며…”
육우가 손금 보듯 20개의 좋은 물을 하나씩 열거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물에 대한 육우의 높은 품평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육우는 끝내 차에 관한 중국 최초의 전문서인 <다경> 편찬을 마쳤다. 그에 따라 차나무를 재배하는 사람과 차를 팔고 사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다. 또 차는 당나라의 주된 수출상품이 되어 장안(長安)을 찾는 많은 서역의 나라들은 말로 차를 바꾸어가기 시작했다. 당나라 황제는 육우의 공이 크다고 여겨 그를 태자문학(太子文學)으로 임명했으며 그 뒤에는 또 태상사(太常寺) 태축(太祝)으로도 임명했으나 육우는 모두 거절했다.
조정이 주는 벼슬을 마다한 육우는 강남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다도를 널리 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육우는 절친 교연을 그리며 오흥(吳興)의 묘희사(妙喜寺)에 가서 주지스님에게 부탁했다.
“제가 죽으면 교연 스님과 이웃하게 해주십시오.”
육우는 또 교연의 무덤을 찾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경>이 이미 널리 알려져 서역에까지 전해졌다고 들었소. 그런데 그대와 안(顔) 자사(刺史) 생전에 <다경>을 보지 못했으니 참으로 아쉽소 그려…”
그날 저녁 묘희사에 머문 육우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종래로 본적이 없는 한 여인이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어머님이신가?”
그 순간 종래로 본적이 없는 부모를 생각한 육우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아픔을 느낀 육우의 두 눈에서 슬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육우는 더는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날이 밝아 묘희사의 스님이 식사를 하라고 육우를 부르러 가니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눈가에 눈물자국이 남아 있는 육우는 이 세상을 떠난 뒤었다.
묘희사 스님들은 육우의 부탁에 따라 그를 교연 스님의 옆에 묻었다. 생전의 두 망년지우는 죽어서도 함께 하늘 나라에서 산천을 노닐고 차를 마시며 시를 짓고 있을 것이다.
육우가 세상을 뜬 후 차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육우의 조각상을 공양하기 시작했다.
육우는 다업의 비조이자 다신(茶神)이 된 것이다.
번역/편집: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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