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5 09:31:41 출처:cri
편집:李仙玉

[반초 편-1] 첫 승전고를 올리다

(사진설명: 반초의 석상)

붓을 던지고 무장이 된 반초

그는 붓을 던지고 무장이 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투필종융(投筆從戎)’의 주인공이다. 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不入虎穴)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다(不得虎子)’는 사자성어도 그와 연관된다.

그가 바로 한(漢)나라 때 유명한 군사가이자 외교가인 반초(班超)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선비이자 부친과 형과 누이동생 모두가 유명한 사학자이고 문학자임에도 그는 변경에 뜻을 두어 붓을 던지고 무장이 되었다.

반초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외교적 지혜로 수십 년 동안 서역을 경영하여 서역의 50여개 도시국가가 한나라에 복속하고 실크로드가 원활하게 통하게 하는 큰 공을 세웠으며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붓을 던지고 무장이 된 반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지혜와 담략으로 첫 승전고를 올리다 

흉노라는 초원의 늑대는 한(漢)나라 라는 사자와 싸우기 위해 태어난 듯 했다. 서한 후반에 천하에 대란이 일어나자 서역에 남아 있던 흉노가 다시 머리를 들고 설치기 시작했다. 흉노는 자신에 속한 몇 개의 도시 국가들을 연합해 한선제(漢宣帝) 때에 설치한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를 공략했다. 그로써 한무제(漢武帝) 때 개척한 서역의 속지가 다시 흉노의 손에 들어갔다.

동한(東漢) 명제(明帝) 때에 이르러 흉노의 적수이자 서역의 보호신인 한 인물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서역을 지킨 그의 공적은 서역으로 오가는 통로를 개척한 장건(張騫)과 비견한다. 예지와 용감성으로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그가 바로 붓을 던지고 무장이 되어 제후에 봉해진 반초이다.

한나라 궁궐은 깊고 전각은 고요했다. 무료함에 빠진 한명제는 책을 읽으러 난대(蘭臺)에 갔다가 교서랑(校書郞) 반고(班固)를 만났다.

“지금 <한서(漢書)>를 편찬하고 계시지요?”

황제의 물음에 반고가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한서>를 써서 대한(大漢)의 미명을 널리 알리는 것이 돌아가신 부친의 소망이십니다. 소신이 오늘 황실의 문헌을 읽을 수 있는 것은 폐하께서 소신에게 주신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편안히 즐기기만 하고 매일 부지런히 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명제가 웃었다.

“교서랑이 이렇게 밤낮으로 일만 하시면 댁의 모친은 누가 돌보시오?”

“동생 반초가 효도하고 있습니다.”

반고의 말에 한명제는 무언가 생각난 듯 또 물었다.

“반초? 그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오?”

“방관부(幇官府)에서 필사를 하면서 모친을 봉양하고 있습니다.”

한명제가 또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반초는 뜻이 원대해서 붓을 던지면서 ‘대장부로 태어나 뛰어난 지략은 없다 해도 장건처럼 서역으로 가서 변경에서 큰 공을 세워야 하는데 어찌 매일 필사나 하고 있다는 말인가?’라고 탄식했다고 들었소.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이 웃자 그는 또 ‘속인(俗人)이 어찌 지사(志士)의 포부를 알겠는가!’라고 했다면서.”

반고가 놀라서 되물었다.

“폐하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짐의 부마 두고(竇固)에게서 들었소. 두씨 가문과 반씨 가문은 교분이 깊지 않소? 두고와 반초도 벗이고. 한 관상가가 반초에게 ‘선비이기는 하지만 장래에 큰 공을 세울 무장이 될 상’이라고 했다면서. 그것은 반초의 아래턱이 멀리 날아가는 제비와 같고 목은 고기를 먹는 호랑이와 같기 때문에 변경에서 큰 공을 세울 운명이라고 말이오.”

반고가 웃으며 대답했다.

“관상가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반초가 큰 뜻을 가지고 있다니 짐이 도우리다. 봉거도위(奉車都尉) 도고가 흉노정벌을 떠나는데 반초도 그와 함께 가게 하겠소!”

반고는 급히 무릎을 꿇고 사은(謝恩)을 표시했다.

집에 돌아온 반고가 이 소식을 반초에게 전하자 반초는 아주 기뻐했다.

“붓을 던지고 무장이 되다. 참으로 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오!”

반초의 말에 반고가 대꾸했다.

“너는 책도 많이 읽고 말도 잘하니 난대에서 일하는 게 가장 어울릴 것이다. 그리고 폐하께서도 너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면 반드시 너를 좋아하실 것이다. 그러니 하필 변경에 가서 생사를 넘나들어야 하겠느냐? 하지만 폐하께서 너의 뜻을 따라 주시고 천자가 한 번 뱉은 말은 바꾸지 못하니 가서 네 뜻을 펼치거라! 모친은 나랑 누이가 있으니 안심하고 말이다.”

기원 73년, 반초는 대리사마(代理司馬)로 임명되어 흉노를 정벌하러 출정하는 봉거도위 두고를 따라 출새(出塞)했다. 두고는 이오(伊吾) 전투를 통해 반초의 재능을 보고 그가 능히 한 몫 맡을 수 있다고 판단해 그를 종사(從事) 곽순(郭恂)과 함께 서역으로 보냈다.

당시 총령(蔥嶺) 동쪽의 서역에는 도시국가들이 아주 많아 오아시스 하나에 수십 개의 나라가 모여 있었으며 이런 나라들은 전부 흉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반초 일행은 먼저 선선국(鄯善國)에 이르렀다. 선선국이란 변새시(邊塞詩)에 많이 나오는 누란(樓蘭)을 말한다. 선선국은 서한 초반에 누란으로 불리다가 한선제(漢宣帝) 때에 선선이라 개명했다. 선선국 왕은 한나라 사신일행을 만나자 아주 예의를 지키며 열정적으로 접대한 동시에 특별히 그들을 위해 연회도 마련해 쌍방 모두 아주 즐거웠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자 선선국 왕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한나라 사신들을 만나지도 않고 의전 담당들의 태도도 쌀쌀하게 변했으며 그 이유를 물어도 우물쭈물하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충 짐작한 반초가 일행에게 말했다.

“왕의 태도가 변한 걸 보니 분명 흉노의 사신이 도착했소. 그래서 그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오.”

반초는 의전담당이 오는 것을 보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흉노의 사신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담당은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반초가 정색한 얼굴로 외쳤다.

“빨리 말하시오!”

반초의 위엄에 그 담당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상황을 털어놓았다.

반초는 정보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사자를 억류한 다음 일행을 불러 술을 마셨다. 주흥이 일자 반초는 36명의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 서역으로 온 것은 공을 세우고 부귀를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맞습니까? 지금 흉노의 사신이 왔기 때문에 선선국 왕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만약 선선국 왕이 우리를 흉노에게 넘긴다면 우리는 이리의 밥이 되고 말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 위급한 시각에 우리는 반 사마님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不入虎穴)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습니다(不得虎子). 오늘 저녁 화공(火攻)으로 흉노사신을 소멸합시다. 선선국 왕은 흉노의 사신들이 다 죽으면 우리 대한에 복속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공하게 됩니다.”

누군가 말했다.

“먼저 곽 종사님과 상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곽 종사님은 문관이시라 두려움 때문에 정보를 흘릴까 걱정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웅이 되기는 고사하고 모두 헛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입을 모았다.

“반 사마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반초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흉노의 거처를 급습했다. 반초는 10명의 병사들에게 군고(軍鼓)를 가지고 건물 뒤에 몸을 숨겼다가 건물에서 불길이 일면 즉시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라고 분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입구의 양쪽에 매복시켰다. 반초가 불을 지르자 북소리와 함성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꿈속에 있던 흉노의 사신들은 놀라서 허둥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건물을 나오는 족족 입구를 지키고 있던 반초와 병사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30여명이 죽고 나머지 백 여명은 전부 불길에 휩싸여 목숨을 잃었다.

날이 밝자 반초는 상황을 곽순에게 알려주었다. 곽순은 놀라는 동시에 얼굴에 질투심도 비쳤다. 반초가 말했다.

“종사님께서 작전에 함께 참여하지는 않으셨지만 저는 이 공로를 혼자 독차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곽순은 얼굴에 희색을 드러냈다.

반초는 선선국 왕에게 흉노 사신의 수급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선선국 왕은 그 자리에서 혼절했고 선선국 국민들도 이 일을 알고 모두 놀라 마지 않았다. 반초는 이해득실을 따지고 또 선선국 왕을 달래주어 선선국 왕은 끝내 한나라 복속에 동의했으며 자신의 아들을 볼모로 낙양(洛陽)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두고는 반초가 36명으로 선선국을 복속시킨 공을 높이 평가하며 그 일을 조정에 보고했다. 반초가 중임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한명제는 두고에게 “반초를 군사마(軍司馬)로 승진시켜 계속 서역의 여러 나라들을 복속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나라가 서역에 대한 지배권을 잃은 지 수십 년 만에 반초가 다시 그 지배권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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