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6 09:19:11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필승 편: 제2회 순탄치 않은 활자의 길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활자인쇄)

제2회 순탄치 않은 활자의 길

활자(活字)를 만들 들뜬 생각에 필승(畢昇)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튿날 저녁 영산인사(英山印社)에서 돌아오자 바람으로 왕씨의 집으로 갔다.

왕(王)씨 부자는 모두 필승의 생각에 관심을 가졌다. 왕소전이 말했다.

“도장을 새기는 것과 같은 거군. 아주 쉽소. 그런데 나무에 새긴 글자들을 어떻게 목판에 붙이겠소?”

필승이 대답했다.

“꼬마들도 거미줄로 매미를 잡는데 우리가 어찌 활자를 붙일 방법을 찾지 못하겠소? 어제 밤새 생각했는데 활자는 목판을 쓰지 말고 철판을 써야 하겠소. 송진 분말을 철판에 엷게 뿌린 다음 그 위에 식자(植字)하고 철판에 열을 가하면 송진이 녹으면서 활자가 철판에 들어 붙고 열이 식으면 단단하게 일체가 될 거요. 그러면 그 조판으로 인쇄를 하고 인쇄가 끝나면 다시 열을 가해서 활자를 떼어 낼 수 있지 않겠소?”

필승의 말을 왕씨가 받았다.

“좋은 방법이긴 하네. 하지만 글자를 중복해서 쓰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할 일이 없어서 굶어 죽는 건 아닌가?”

수심이 낀 왕씨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필승이 대답했다.

“일이 많이 줄어드니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아요? 예를 들어 식자하는 것도 일이잖아요?”

왕씨가 머리를 끄덕였다.

“식자는 각자보다 어렵지 않을 테니 할 수 있겠네.”

왕씨가 아들을 향해 말했다.

“활자 각자는 네가 도장을 새기는 것과 비슷하구나. 어떤 나무에 새기면 좋겠느냐?”

소전이 대답하기 전에 필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른 나무는 글자를 새기기 쉽지만 쉽게 부서질 거에요. 중복해서 쓸 거라면 단단한 나무에 새겨야 하지 않겠어요?”

소전이 필승의 말에 수긍했다.

“일리 있는 말이오. 하지만 나무가 너무 단단하면 글자를 새기기 힘드오.”

“칼만 들어간다면 나무는 단단할수록 좋을 것이오.”

“그럼 대추나무로 합시다! 대추나무는 단단하기도 하고 무늬도 곧고 쉽게 변형하지도 않소.”

아들의 말을 들은 왕씨가 배나무로 만든 목판을 가지고 와서 말했다.

“배나무는 대추나무와 경도(硬度)가 비슷하니 어느 나무가 더 좋을 지 우리 한 사람이 한 가지씩 새겨보자. 승(昇)은 한 문장을 찾아 글자를 쓰게. 나는 판각에 익숙하니 먼저 목판에 글자를 새긴 다음 잘라내겠네. 어떻나?”

소전이 왕씨의 말을 받았다.

“나는 도장을 새기는데 익숙하니 먼저 나무를 도장 크기로 모나게 자른 다음 글자를 하나씩 새기겠어요.”

필승은 왕씨네 두 부자의 말에 모두 일리가 있고 또 각자 한 번씩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동의했다.

“좋습니다. 그럼 당장 가서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집서(蘭亭集序)>를 가져올 테니 두 분이 반씩 새기죠.”

말을 마친 필승이 문장을 가지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왕씨가 필승을 불렀다.

“승, 이 일을 반드시 필 나리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네. 그가 비록 자네의 친척이지만 우리의 주인이니 이 일을 숨길 수 없네. 그가 찬성하지 않으면 우린 자네를 도울 수 없네. 잘못 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으니 하는 말이네!”

필승은 왕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저씨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바로 종숙을 찾아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그를 설득해서 그의 지원을 받겠습니다.”

필승은 즉시 종숙인 필대인을 찾아갔다. 필대인은 제거사천감(提擧司天監) 심괄(沈括)의 수하에서 벼슬을 하는 한편 가문에서 물려 받은 영산인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찾아 온 필승이 글씨도 잘 쓰고 인품도 좋은 것을 보고 각자(刻字)를 위한 글을 쓰며 영산인사를 대신 관리하게 했던 것이다. 필대인은 필승이 활자인쇄를 하겠다는 말을 듣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말한 것처럼 활자인쇄가 그렇게 쉽다면 사람들이 왜 지금까지 그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겠느냐? 많은 인재가 속출한 성세에도 활자인쇄를 발명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네가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는 거 아니냐?”

“아무튼 선인들이 생각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한 번 시도해볼 만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성공하면 인쇄의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처음에 문장은 모두 필사했는데 그 후에 누군가가 조판(彫版)인쇄를 발명하면서 인쇄속도가 필사보다 수십 배나 빨라졌습니다. 이 활자인쇄가 성공하면 조판인쇄에 비해 그 속도가 또 수십 배 빨라질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알았는데 왜 한 번 시도해 보지 않겠습니까? 숙부님. 우리는 영산인사의 일에 영향을 주지 않고 여가시간을 이용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시도해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필대인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심(沈)나리 저택에서 일하는 것이 너에게는 더 어울리겠다. 심나리도 기상천외한 생각을 잘 하느니라.”

“제가 어찌 그 높은 곳을 탐내겠습니까? 영산인사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필대인은 마음이 약해져서 필승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럼 여가시간을 이용해 해보거라! 영산인사에 조각공이 수십 명 있으니 절대 그들이 모르게 하고. 안 그러면 그들 마음이 들뜰라. 각자(刻字)는 일말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마음이 차분해야 글씨를 잘 쓸 수도 잘 새길 수도 있다.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종숙의 허락을 받은 필승은 급히 인사를 하고 <난정집서>를 가지러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구상은 좋았지만 실천은 어려웠다. 필승이 나무에 새긴 활자를 철판에 식자하고 열을 가하자 활자에 송진이 묻어 활자를 중복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활자에 묻은 송진을 제거하지 못해 활자의 의미를 잃은 것이었다. 또 나무의 밀도가 서로 달라 물과 만나면 목각활자의 변형으로 판면이 울퉁불퉁해져 인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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