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7 09:22:30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필승 편: 제3회 성공한 활자와 접착제

(사진설명: 기름으로 보는 활자)

제3회 성공한 활자와 접착제

나무로 활자를 만드는 것도, 송진을 접착제로 하는 것도 모두 여의치 않자 필승(畢昇)은 고뇌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늘은 더없이 청명하고 태양은 찬란하기만 했으나 필승의 마음은 안개가 낀 듯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는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 옛날 도기가마에서 나온 불량품 도기가 쌓여 조성된 것이라고 전해지는 교외의 도구산(陶丘山) 자락에 이르렀다. 필승은 큰 나무아래에서 저 멀리 도기를 굽기 위한 흙을 파서 조성된 작은 호수를 바라보며 발치에 있는 도기조각을 집어 호수에 던졌다. 도기조각은 물고기처럼 수면을 날아 호심에 가라앉았다. 그러면서 필승의 마음도 점점 밝아져 푸른 하늘처럼 청명해졌다.

머리를 숙이고 채색의 도기조각을 만지던 필승은 갑자기 도기조각에 봄 ‘춘(春)’자가 새겨진 것을 보았다. 도기 장인의 이름인가? 아마 어느 도기 장인이 자신의 이름이 자신의 도기와 함께 영원히 전해지며 세상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필승의 머리 속에 섬광이 번쩍하며 그 순간 불꽃이 피어나기라도 하듯 지혜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래. 도기를 굽는 점토에 글자를 새겨서 건조시킨 후 불에 굽는 거야. 그렇게 만들어진 도자(陶字)는 물과 가까이 해도 변형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도기라면 접착제도 쉽게 제거해서 중복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필승은 보배라도 얻은 듯 그 도기조각을 꽉 잡고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왕씨의 도움이 필요 없어 필승은 혼자 교외에 가서 점토를 파다가 종이처럼 평평하게 편 다음 동전의 두께로 압축시켰다. 그리고 글을 쓴 종이를 그 위에 펴고 한 글자씩 새겼다. 연한 점토는 나무보다 조각하기가 훨씬 쉬웠다. 필승은 점토로 만든 활자를 건조시킨 후 불에 넣어 구워냈다. 그렇게 단단한 도자(陶字)가 만들어졌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도활자(陶活字)를 바라보는 필승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굳이 그의 마음을 형용한다면 금방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보는 듯 뿌듯하고 즐거웠다.

그날 저녁 필승은 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도활자를 만든 기쁨 때문이 아니라 이번에는 성공하지 못한 접착제 때문에 속을 앓았던 것이다. 도활자를 건조시키던 그 며칠 필승은 송진에 여러 가지 분말을 혼합해 접착제를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양초를 만드는 밀랍을 생각했다. 밀랍은 열을 만나면 부드러워지고 냉각시키면 단단해지기 때문이었다. 필승은 송진과 밀랍을 섞으면 가열 시 접착하고 냉각 시 탈락하는 기능이 송진보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험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필승은 실험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재를 추가해 한 번 더 실험했으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승은 깊은 생각에 빠진 채로 잠이 들었다.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죽어서 입관되고 아들이 그의 영구 앞에 무릎을 꿇고 교자(交子)를 한 장씩 태우고 있었다.

“망할 놈의 자식, 이 세상에 죽은 사람을 위해 돈을 태우는 효자가 있느냐?”

화가 난 필승은 이렇게 욕하면서 아들을 때리려고 관에서 나오려 했다. 그러자 몸이 움찔하면서 필승은 놀라서 잠에서 깼다.

당시 경제가 아주 발달하고 물자교류도 아주 활성화되어 금, 은, 동과 같은 통화로는 부족한 관계로 조정은 상업거래와 통화유통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중국의 문명사상 최초의 지폐인 교자(交子)를 인쇄·발행했다. 교자는 성도(成道)에서만 유통했으나 동경(東京)의 시장에서도 교자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죽은 사람을 위해 태우는 지전은 동전 모양으로 자른 종이였다.

필승은 꿈에 자신의 아들이 영구 앞에서 지전이 아닌 교자를 태우는 것을 보고 경악과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침대에 누운 채로 필승은 해몽하려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악몽은 해석이 되지 않았다.

“꼬끼오~”

수탉이 새벽을 알리자 필승은 놀라서 깨어나 또 접착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필승은 벌떡 침상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종이를 태운 재! 종이 재! 이 꿈은 접착제에 종이를 태운 재를 섞으면 효과가 더 좋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는 종이를 가져다가 꿈에서 아들이 하던 것처럼 한 장씩 태우며 여전히 생각에 빠졌다.

“종이 재로만 될까? 만약 정말로 교자를 태워야 된다면 어쩌지? 어디서 그 많은 돈을 가져오지?”

그런데 고맙게도 필승의 걱정과 달리 종이 재로 접착제 연구에 성공했다! 그는 종이 재를 송진과 밀랍에 섞어 철판에 펴고 그 위에 식자한 다음 열을 가했다. 열을 받은 접착제가 녹기 시작하자 필승은 철판 위에 널을 올려 힘을 가함으로써 모든 글자가 동일한 단면에 놓이게 했다. 활자가 성공했다. 그 뒤의 인쇄과정은 조판(彫版)인쇄와 같았다. 인쇄가 끝나자 필승은 철판에 다시 열을 가해 접착제가 녹은 후 철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도활자들이 스스로 탈락되었으며 활자에 접착제도 묻지 않아 중복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성공했다!”

필승은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올렸다. 하지만 그와 이 즐거움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종숙이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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