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8 09:13:17 출처:cri
편집:李仙玉

[장형 편-3] 지진관측의기를 만들다

(사진설명: 동상으로 보는 지동의)

제3회 지진관측의기를 만들다

산이 무너지고 샘물이 솟아나며 바다에 파도가 높이 일었다. 사람들은 땅을 떠멘 지우(地牛)가 어깨를 바꾸어 땅을 멘다고 여겼으며 횡포한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학정으로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 천신(天神)이 노했다고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잘못하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려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참에 무당들은 요언을 퍼뜨리며 사람들을 공포에 잠기게 하고 천자(天子)를 협박하며 재물을 모았다.

수천 년 동안 중국에서 지진은 확실히 사회 불안정의 조짐으로 여겨졌거나 혹은 사회갈등 격화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때 장형이 최원에게 말했다.

“지동(地動), 땅이 움직이는 원인은 심히 복잡해서 관측하기 아주 어렵네. 땅이 움직이는 것은 지기(地氣), 즉 땅 기운의 변화와 연관된다고 생각하네. 땅 기운은 땅 속의 바람처럼 땅 속에 폭풍우가 오면 땅이 흔들리네.”

최원이 장형의 말을 받았다.

“그럼 자네 지동 관측 의기를 만들 수 없는가?”

“그러지 않아도 그런 의기를 만들려고 생각 중이네.”

“지동관측의기의 원리는 무엇인가?”

“몇 십 년 동안 나는 크고 작은 지동을 네 다섯 번은 보면서 집이 무너지는 것은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네. 만약 불안정 균형의 원리에 따라 관측의기를 만든다면 반드시 어느 방향에서 땅이 움직였는지 관측할 수 있을 것이네.”

얼마 지나지 않아 장형은 과연 세계 최초의 지진관측의기인 후풍지동의(候風地動儀)를 만들었다. 관측의기 명칭에 ‘후풍(候風)’이라는 두 글자를 붙인 것은 땅속의 폭풍으로 인해 땅이 움직인다고 여긴 장형의 이념을 형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구리로 된 지동의는 외관이 술 항아리와 비슷하다. 지름 8자의 항아리 위에는 뚜껑이 덮여있고 항아리 몸체의 여덟 방향에는 여덟 마리의 용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아래로 향한 용의 입에는 작은 구리 구슬이 물려 있고 용머리의 하단에는 위를 향해 입을 벌린 두꺼비가 하나씩 있다. 어느 방향에서 지진이 발생해서 지진파가 전해지면 그 방향을 향한 용의 입에 물려 있던 구슬이 하단의 두꺼비 입에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언제 어느 방향에서 지진이 발생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원래 지동의 내부 중심에는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기둥을 만들고 주변에 8개의 지렛대를 두었다. 지진이 발생해서 지진파가 전해지만 중심의 기둥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균형이 파괴된다. 기둥이 진원지 방향으로 기울면서 그 방향의 지렛대를 밀어내면 그 지렛대와 연결된 용이 구슬을 뱉어내고 그 용의 하단에 있던 두꺼비가 그 구슬을 받게 된다.

당시 후풍지동의는 도읍인 낙양(洛陽)의 황실 천문 관측관에 놓여졌다. 온 나라의 문무관원들이 호기심에 지동의를 보러 갔으나 누구도 이 의기가 지진을 관측한다고 믿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본 것만 믿었으니 아직 검증되지 않은 지진관측의기를 믿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138년, 2월 초사흘 날, 지동의 검증 기회가 도래했다. 그 날 지동의의 서북방향으로 엎드린 용의 입에서 구슬이 굴러 나와 두꺼비의 입에 떨어졌다. 하지만 낙양 지역에서는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지동의가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롱서(隴西)에서 지진이 발생해 피해가 심각하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해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사실 앞에서 마음속 깊이 장형에게 감복하면서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장형을 칭찬했다.

후풍지동의는 지진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언제 어디에서 지진이 발생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준다. 하물며 오늘날까지도 지진예측은 세계적인 난제로 남아 있다.

그로부터 조정은 지동의의 움직임에 따라 지진발생의 일자와 방향을 정확하게 기록할 것을 사관(史官)들에게 요구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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